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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 물가에 둥그렇게 모여 고개를 주억거리는 말들 모습. 상대방에게 그늘을 만들어 서로 열기를 식히기 위함이다.
 무더운 여름날 물가에 둥그렇게 모여 고개를 주억거리는 말들 모습. 상대방에게 그늘을 만들어 서로 열기를 식히기 위함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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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평균 고도 1580m에 달하는 높은 지대다. 따라서 추운 날씨가 오래 지속되고 강수량이 적어 농사짓기가 힘든 지형이다. 하지만 광활한 초원이 펼쳐져 가축을 기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몽골인들이 유목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최선의 방안일지도 모른다.

사진으로만 보신 분들은 몽골 초원에 펼쳐진 풀밭이 한국 풀밭처럼 풀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코이카의 지원으로 몽골 초원에 나무심기 활동을 하는 푸른아시아 몽골지부장 신기호 신부가 전한 말이다.

"1960~1970대 유목민들을 만나 말을 들어보면 옛날에는 풀이 말의 복부까지 닿았었는데 지금은 말의 발목까지밖에 자라지 못한다고 해요."

초원을 가득 메운 염소와 양들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풀뿌리만 남을 때까지 뜯어먹고 다른 양에게 빼앗길까봐 얼른 자리를 옮겨 남아있는 풀을 뜯어 먹는다. 물도 없고 듬성듬성한 초원. 달리 생각하면 유목 생활을 택했기에 몽골 초원이 이만큼이나 보존되지 않았을까?

북반구 건냉지역에 속한 몽골 날씨는 겨울은 매우 춥고 여름은 덥다. 연평균 강수량은 230mm정도이다. 따라서 몽골 자연환경은 척박하다. 양떼를 몰고가는 유목민들을 바라보며 평화로운 광경을 상상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목 자체가 혹독한 자연환경과 거친 들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투쟁 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몽골 유목민들은 초지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계절마다 정기적으로 이동하며 생활한다. 이들이 이동해 생활하는 공간을 영지라 한다면 계절별 영지는 다음과 같다.

▲ 봄 영지(하워르짜) ▲ 여름 영지(조스랑) ▲ 가을 영지(나마르짜) ▲ 겨울 영지(어월쩌)

유목민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조드'
  
몇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유목민 게르. 뒤편에 돌을 둥글게 쌓은 가축 우리가 보인다. 겨울이 되면 가축을 데리고  바람과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몇시간 동안 길을 잃고 헤매다 만난 유목민 게르. 뒤편에 돌을 둥글게 쌓은 가축 우리가 보인다. 겨울이 되면 가축을 데리고 바람과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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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기상이변은 '조드'이다. '조드'는 초원에 몰아닥친 극심한 가뭄과 한파를 의미한다. 2010년 몽골에 조드가 닥쳐와 1032만 마리의 동물이 얼어 죽기도 했다.

유목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봄과 겨울이다. 봄은 동물에게 탄생의 계절이다. 따라서 유목민들이 이동하는 봄 영지는 가축이 새끼를 낳아 성장하기 좋은 곳으로 물과 초지가 풍부한 곳에 자리잡는다. 한편, 겨울 영지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구릉 중간쯤에 돌이 둥글게 놓여 있거나 가축우리가 지어져 있는 곳으로 바람을 피하거나 눈이 덜 쌓이는 남사면을 택한다.

필자가 몽골을 방문한 시기가 6월의 여름인지라 15~40도의 초원에서 살아가는 뭇 생명들이 몽골의 척박한 환경을 이기며 살아가는 지혜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뜨거운 여름날 말들이 물가에 있는 나무밑에 동그랗게 서서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서로 열기를 식혀주기 위한 말들의 공생법이다.
 뜨거운 여름날 말들이 물가에 있는 나무밑에 동그랗게 서서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서로 열기를 식혀주기 위한 말들의 공생법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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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탄 차량이 한여름에 몽골 초원을 달릴 때 한 무리의 말들이 물가에 둥그렇게 서서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 보았다. 말들의 이상한 행동을 눈여겨 본 필자가 몽골운전수 저리거에게 물어보니 상대편 말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몽골 초원을 달리다 보면 도로를 가로지르는 양떼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도로를 횡단하도록 기다려야 하지만 때론 경적을 울려 양들이 비켜나도록 한 후 달린다.
  
유목민들은 가축들에게 풀을 먹이러 나갈 때 염소와 양을 함께 섞어 이동한다. 양은 한 자리에 머물며 풀뿌리까지 먹어버리는 습성이 있고 염소는 이동하는 버릇이 있다. 리더를 따라 이동하는 양들은 선두에선 리더 염소를 따라 이동한다. 풀을 보호하기 위한 유목민들의 지혜이다.
 유목민들은 가축들에게 풀을 먹이러 나갈 때 염소와 양을 함께 섞어 이동한다. 양은 한 자리에 머물며 풀뿌리까지 먹어버리는 습성이 있고 염소는 이동하는 버릇이 있다. 리더를 따라 이동하는 양들은 선두에선 리더 염소를 따라 이동한다. 풀을 보호하기 위한 유목민들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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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와 양들이 함께 모여 초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염소와 양들이 함께 모여 초원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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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우고 그들을 자세히 보면 양들 속에 뿔을 가진 염소들이 보인다. 그들은 서로 사이좋게 풀을 뜯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유목민들은 종족이 다른 두 종류의 가축을 한군데 섞어 기를까?

이유는 그들의 식생 습관에 있었다. 양은 한곳에 머물러 풀뿌리까지 먹어버린다. 반면에 염소는 풀뿌리까지는 먹지 않고 이동하는 습관이 있다. 양들은 리더가 움직이면 따라서 움직인다. 해서 유목민들은 풀을 보호하기 위해 염소를 섞어 기른다.

입에 철판 물고 있는 송아지... 대체 왜

몽골 최고의 성산인 볼칸산을 가던 중 이상한 모습을 한 송아지가 보였다. 입 주위에 뭔가를 달고 있었다. 운전하던 저리거에게 물었다.
  
제법 큰 송아지 입에 양철판이 달려있었다. 어미소에게서 젖을 떼려는 유목민들의 지혜이다. 양철판이 달려 있어 어미젖을 빨지 못해 풀을 뜯어먹어야 한다.
 제법 큰 송아지 입에 양철판이 달려있었다. 어미소에게서 젖을 떼려는 유목민들의 지혜이다. 양철판이 달려 있어 어미젖을 빨지 못해 풀을 뜯어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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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거! 송아지 입 주위에 이상하게 달린 저거 뭐야?"
"아! 저거요? 어린 송아지가 어느 정도 크면 젖을 떼야 하잖아요. 혼자 풀을 뜯을 수 있을 정도로 컸는데 계속 젖을 먹으면 유유 생산에 지장이 있잖아요. 그래서 송아지가 젖을 빨지 못하도록 양철판을 달아놓은 거예요."

   
세계 유일의 야생마를 보호하는 호스타이 국립공원엘 돌아보던 중 신기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가축들이 풀을 다 뜯어먹어 버려 초원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군데군데 남아 있는 풀이래야 5㎝쯤밖에 안 되어 보였다. 그런데 한 곳에 50㎝도 넘어보이는 풀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독초인 할가이 모습. 가축들이 풀을 거의 다 뜯어먹어버려 초원에 풀이 없었지만 독초인 할가이들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할가이에 한번 쏘이면 벌에 쏘인것처럼 아프다.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지혜이다.
 독초인 할가이 모습. 가축들이 풀을 거의 다 뜯어먹어버려 초원에 풀이 없었지만 독초인 할가이들은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할가이에 한번 쏘이면 벌에 쏘인것처럼 아프다. 초원에서 살아남기 위한 식물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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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는 초원을 뛰놀며 풀뜯는 가축도 많다. 다른 곳에는 풀이 없는데 왜 저기만 풀이 무성할까?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독초인 할가이 때문이었다. 잎이 우리의 쑥과 비슷한 모습을 한 할가이는 줄기와 잎에 가시가 촘촘히 박혀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펴다 할가이에 쏘였다. 벌에 쏘인 듯 몇 시간 동안이나 쑥쑥 아렸었다.

몽골인들은 할가이에 쏘이면 어린아이의 오줌을 받아 쏘인 자리에 바른다고 한다. 오줌이 일종의 암모니아수 역할을 하는가 보다. 어린 할가이 새순은 몽골인들의 주식인 호쇼르에 넣어 먹기도 한다.

대초원에 사는 유목민들의 집은 게르다. 끝없는 평원 위에 하얀 팽이를 엎어놓은 것처럼 생긴 몇 채 안 되는 유목민들을 위해 헌신하는 동물 가족이 있다. 때론 주인의 지시를 받아 양떼를 몰기도 하고 때론 사나운 늑대로부터 가축을 지키는 수호자 역할도 한다. 주인과 가축들을 지키는 개다.
  
그래서일까? 낯선 사람이 초원에 서 있는 게르를 방문할 때 제일 첫 번째 조심해야 할 것은 사나운 개다. 필자 일행이 탄 차가 초원에 있는 게르 옆을 지날 때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짖거나 차 옆까지 뛰어오르는 개를 몇 번 마주쳤다. 그럴 때면 나를 보호해주는 차가 고맙기까지 했다.

낯선 사람이 게르를 방문할 때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있다. " 너허이 허르(Nokhoi Khori)"이다. '너허이 허르'는 게르 주인에게 "개를 붙잡으세요"라는 부탁이지만 우리말의 "계세요?"라는 의미도 된다.

수태차에 담긴 지혜

올랑곰을 떠나 타왕복드를 향해 가다 이름도 모르는 호수 옆에서 1박을 끝낸 필자는 아침 일찍 인근에 보이는 게르를 향해 다가갔다. "너허이 허르". 게르 안에서 아주머니가 나왔다. "샌배노!"(몽골식 인사)라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반갑게 여기며 게르 안으로 들어오란다.

자고 있던 남편이 일어나 인사를 하는데 이불 속에 있던 아기가 기침을 한다. 난로에 불을 지피며 수태차를 준비하던 아주머니가 유목민 주식 중 하나인 '어름'에 설탕을 넣어 한 그릇 줬다. 아주머니 가족은 어제밤 게르 인근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한 이방인을 알고 있었다.

손짓 발짓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아이를 위해 감기약을 주겠다는 표시를 하기 위해 손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 소리를 내며 같이 가자고 했다. 순간 잠시 망설이던 아주머니가 필자를 따라나섰다.
 
아침 일찍 텐트에서 일어나 유목민이 사는 게르에 찾아가 "너어히 허르", 즉, "개를 붙잡으세요!" 라고 했더니 친절한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오라며 준 유목민 양식 '어름'이다.
 아침 일찍 텐트에서 일어나 유목민이 사는 게르에 찾아가 "너어히 허르", 즉, "개를 붙잡으세요!" 라고 했더니 친절한 아주머니가 안으로 들어오라며 준 유목민 양식 "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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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까지 따라온 그녀에게 저리거가 감기약 복용법을 설명해주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눈치다. 대초원에서 식구라곤 부부밖에 없는데 감기약 사러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게르의 안주인은 밖에서 돌아오는 남편에게 따뜻한 수태차를 대접하는 게 몽골 전통이다. 수태차는 우유로 만든 차로 가축의 젖에 잎차를 넣어 몽골 사람들이 사계절 즐겨 마시는 차다. 몽골인들은 기름진 음식을 주식으로 하기에 물 대신 뜨거운 수태차를 마신다.

동물들에게 시달리고 험한 바깥 날씨로 굳어진 남편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배려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 돌아와서도 식구들을 동물 다루듯이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험난한 초원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한 뭇 생명들의 지혜를 보며 고개가 숙여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몽골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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