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 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은 대학교에 합격했을 때, 사법고시 1차에 합격했을 때이다.

불행 고속도로는 고시 2차 불합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모 아니면 도라는 고시에 도전했다가 도도 아니고 그냥 빽도다.

일단 공부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시험을 치러 면접을 보러 왔다 갔다 하길 몇 달 반복하고 돈도 시간도 체력도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뭐라도 해야지 싶어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자원봉사활동을 몇 달 하면서 취업을 못 해 불안했던 것도 잊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나의 반려자가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가족이 생겼지만 정작 나는 없었다. 살만 쪄서 예전 옷이 작아졌다. 이제 남편 옷이 내 옷이요, 아이들이 먹다 남긴 식은 밥이 내 식사가 되었다.

공공기관 채용정보를 모두 볼 수 있는 잡알리오(job.alio.go.kr)에서 대한법률구조공단 육아휴직대체인력 1명을 구한다는 채용공고를 보고 '이건 내 자린데?'라고 생각했다. 지방대라도 국립대고 학부 시절 법을 전공하며 학점도 좋았다. 워드프로세서 1급, 한국사 1급 자격증도 있다. 이미 붙은 것 마냥 '이제 아이들을 6시까지 어디에 맡기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남편 옷만 입고 살다보니 당장 면접용으로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 급하게 장롱 문을 열고 결혼 전에 입던 이미 작아진 옷에 내 몸을 꾸깃꾸깃 대충 우겨 넣고 서류를 챙겨 공단 사무실로 찾아갔다.

"중간에 관두지 않고 계약기간 끝까지 다닐 사람 구합니다." 담당자가 말한다.
"끝까지 다니겠습니다!"

행복한 고민은 산산조각이 났다. 서류에서 탈락했다. 면접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결혼과 육아로 몇 년을 집에서만 보냈지만 그래도 아직 제법 쓸 만한 인재라 생각했다. 적어도 계약직은 쉽게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는데 정규직도 아니고 계약직 서류 탈락이라니!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정신을 차렸다. 지금 스펙만 가지고는 어디도 갈 수 없단 생각에 불안했다. 경력단절여성이 많다던데 나는 단절된 경력도 없는 나이만 경력인 신입이다. 뭐라도 해야 했다.

마침 집에 정보처리기사 책이 있어 한 달 동안 공부를 했다. 필기는 기출문제만 보면 합격점수는 나온다. 다행히 올해 3월 시험에 통과했다.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감이 생겼다.

실기는 기출 문제만으로 붙을 수 없다. 올해 3번 다 떨어졌다. 알고리즘을 정복하고 내년엔 반드시 붙으리라!

9월부터 빅데이터 활용 콘텐츠 크리에이터 양성 과정에 참여했다. 11월 22일 금요일까지 약 3달 동안 월, 화, 목, 금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남편의 독박 벌이에 한 푼이라도 아껴보려고 내 옷은 살 생각도 못했다. 미용실도 가지 않고 궁상맞게 혼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내 머리를 잘랐다.

"내가 돈 줄게! 옷도 좀 사 입고 그래." 엄마가 속상해하며 말했다.
"네!" 건성으로 대답만 하고 그냥 평소대로 입고 다녔다.

그랬던 내가 자발적으로 내 옷을 사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외출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밖에 나와 보니 내 옷이 필요했다.

오! 그런데 빅데이터 교육이 정말 재밌다. 상상 이상으로 좋다. 육아와 함께 하기 힘들면 그만 둘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의욕 넘치던 20대의 나로 돌아간 듯하다.
 
내가 만든 88권의 육아 일기 책
 내가 만든 88권의 육아 일기 책
ⓒ 김현영

관련사진보기

 
글쓰기가 제일 좋다. 평소에 사진 찍는 것과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서 아이들을 키우며 육아 일기 비슷한 책을 88권 만들었다.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게 즐겁다. 그동안 재능이 없어 일기만 쓸 수 있다 생각했다.

방송작가 선생님이 첫 수업 시간에 "우리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연습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 글은 선택받은 자만이 쓰는 특별한 거 아니었나?

"이건 관점이 잘못됐고, 이건 구조가 잘못됐고, 이건 표현이 좋고..."

작가 선생님은 직접 우리가 쓴 글을 고쳐준다. 내 글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것이 처음엔 부끄러웠다. 평가를 받는다는 게 마치 벌거벗고 혼자 앞에 서 있는 것 같아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못하는 걸 전문가에게 보여주고 잘못된 걸 지적받을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조언을 받고 글을 다시 써보니 내 글이 점점 더 좋아지는 걸 보며 힘을 얻는다.

도전하다 보니 '내 인생의 스틸 사진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숲 캠프에 다녀와 쓴 글이 <오마이뉴스>에 실리는 성과도 냈다. 원고료 15000원. 내 평생 처음으로 글로 번 돈이다. 6만 원의 원고료를 주는 최고 등급인 오름까지 써 봐야겠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고시 불합격은 인생 실패라 생각했다. 이번 생은 망한 줄 알았다. 다른 이들의 인생은 다 좋아보였다. 특히 공무원이 된 친구를 부러워했다. 지금은 공무원이 된 친구가 인생을 즐기는 나를 보며 부럽다고 한다.

지금처럼 내가 소중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요즘 내 삶이 정말 소중하고 내가 소중하다. 계속 집에만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나를 센터에서 찾았다. 아니, 아직도 나를 찾고 있다. 매일이 정말 소중해 내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나에겐 내가 있다.

태그:#경력단절여성, #전업주부, #작가, #꿈, #글쓰기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심장이 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