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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침 일찍 프라하의 메트로를 타고 비셰흐라드(Vyšehrad)역에서 내렸다. 10분 조금 넘게 걸어가면 우리의 목적지 비셰흐라드가 나온다고 한다. 비셰흐라드는 프라하 구시가지에서 3km 정도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 프라하의 발상지이다.

며칠 전까지 춥고 바람이 불었다는 날씨는 화창하게 개어 청명한 하늘이 우리를 반겨준다. 아무래도 날씨는 여행의 분위기를 결정지어주는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맑은 날씨 속에 우리가 산책하기 딱 좋은 숲길이 그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 없었다. 아침 공기는 깨끗하고 상쾌했다. 이런 맑은 기분은 아침 일찍 일어나 몸을 움직인데 대한 훌륭한 보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셰흐라드 역사지구까지 걸어가는 길은 한적하고 편안한 공원 같은 분위기이다. 체코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역사적 장소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묘한 신비감이 몰려왔다.

비셰흐라드 성 안으로 들어가는 레오폴드 문(Leopold Gate)을 지나자 프라하 시내에서는 보기 힘든 건축양식의 예배당이 눈에 들어왔다. 비셰흐라드에서 가장 오래된 이 건축물은 11세기에 세워진 성 마르틴의 예배당(Rotunda of St. Martin)이다. 이 원형 건축물의 직경이 6.5m나 되어서 프라하에서 가장 큰 원형 건축물로도 꼽히고 있다.
 
슬라브족 건국신화 체코의 건국신화는 레흐, 체흐, 루스 3형제로부터 시작된다.
▲ 슬라브족 건국신화 체코의 건국신화는 레흐, 체흐, 루스 3형제로부터 시작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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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에 우뚝 솟은 요새 안으로 들어서니 건국 신화가 펼쳐지기에 제격인 듯한 풍경이 눈 앞에 나타났다. 나는 체코의 건국신화를 떠올려 보았다.  

"체코의 건국신화는 레흐(Lech), 체흐(Čech), 루스(Rus) 3형제로부터 시작되지. 자신들의 영지가 너무 작아 새로운 땅을 찾아나선 3형제는 유럽을 떠돌며 살다가 각각 자리를 잡고 나라의 기반을 닦았다고 전해지고 있어. 첫째 아들인 레흐가 가장 먼저 폴란드 땅에 나라를 세웠고, 남쪽으로 간 체흐는 체코를, 동쪽으로 간 루스는 러시아를 세웠지."

"체흐의 나라는 아들 크로크(Krok) 대에 이르러 부족의 세를 넓혀가기 시작하였지. 크로크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셋째 딸이 가장 영민하였나 봐.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었던 셋째 딸 리브셰(Libuse)가 나라를 이어받게 되었지. 그리고 셋째 딸 리브셰 여왕의 예언에 의해 블타바(Vltava) 강변에 성이 세워졌어. 그래서 리브셰는 사실상 보헤미아 왕가의 선조이고, 체코는 건국 당시부터 여성 인재에 차별이 없었던 거지."

 
비셰흐라드 공원묘지 체코의 명사들이 묻혀 있는 이 곳은 19세기 후반에 조성되었다.
▲ 비셰흐라드 공원묘지 체코의 명사들이 묻혀 있는 이 곳은 19세기 후반에 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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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체코의 역사가 시작된, 건국신화의 터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체코를 대표하는 국민영웅들이 묻혀있는 비셰흐라드 공원묘지(Vysehrad Cemetery)였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rich Smetana),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 알폰소 무하(Alfons Mucha) 등 체코의 명사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19세기 후반에 조성된 공원묘지는 비셰흐라드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었다.

묘지를 거닐어 보면, 모든 묘의 모습이 다 달라서 묘지마다 개성이 느껴지는게 돋보인다. 비셰흐라드 공원묘지에 잠든 체코 출신의 예술가 중 가장 대표적인 이는 바로 드보르작이다. 그가 작곡한 슬라브 무곡은 내가 학생 때에 진정으로 사랑하던 곡이었다. 음악사 시간에 들었던 그의 활기차고 열광적인 보헤미안의 무곡은 나를 유려한 체코 음악의 세계로 이끌었었다.
 
드보르작 묘지. 그가 작곡한 슬라브 무곡은 활기차고 열광적이다.
▲ 드보르작 묘지. 그가 작곡한 슬라브 무곡은 활기차고 열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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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당시 들었던 슬라브 무곡의 선율을 회상하며 눈을 감아보았다. 눈 앞에는 먼 한국의 수업시간에서나 만나볼 수 있었던 그의 묘지가 있었다. 죽을 때까지 동심을 잃지 않은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는 드보르작의 묘지를 보며 위대한 예술가도 한 줌의 흙으로 남는다는 사실에 묘한 애잔함이 느껴진다.

공원묘지를 둘러보고 있으면 강대국 오스트리아의 오랜 지배 속에서도 지켜진 체코의 문화적 힘이 느껴진다. 1500년대까지 슬라브족의 전통 왕조를 유지하던 체코는 이후 400년 동안이나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지배를 받는 동안에도 그들은 체코의 문화와 언어를 끈질기게 지켜냈다. 이러한 체코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에 공헌한 것이 이 공원묘지에 잠든 600인의 체코 예술가들이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 비셰흐라드의 중심에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 비셰흐라드의 중심에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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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아름다운 정원같은 묘지의 작은 문을 나오자 두 개의 첨탑이 돋보이는 검은 성당이 눈 앞을 가로막았다. 비셰흐라드의 역사적인 건축물인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Basilica of St. Peter and St. Paul)이다. 무려 11세기에 지어진 성당이었으나 화재로 전소된 후, 19세기 후반에 네오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된 성당이다.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산화된 대성당은 마치 흑색을 칠해놓은 듯이 까맣다. 성당의 복원 당시에 만들어진, 쌍둥이 같이 똑같이 생긴 첨탑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를 의미하고 있다. 성당 전면의 첨탑 사이를 보면 그리스도 옆에서 성경과 열쇠를 들고 있는 조각상이 바로 성 베드로이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조각상 아래에 화려한 황금빛 원색으로 장식된 모자이크화에는 키릴(St. Cyril)과 성 메소디우스(St. Methodius)가 담겨 있다. 그리스 출신의 이들 형제는 현재 러시아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키릴 문자를 만든 선교사들이다.

이 키릴 문자는 여러 슬라브 민족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슬라브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성당 외부의 전면에 유독 눈에 띄게 원색으로 장식된 모자이크화를 봉헌한 것만 보아도 체코인들이 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대성당 파사드의 아치형 정문 위에는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수염이 치렁치렁한 열두 제자들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이다. 열두 제자의 아래에는 날개 달린 천사가 우뚝 서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천사의 왼쪽에는 풍요로운 천국이 묘사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는 괴수들 사이에서 괴로움을 표현한 지옥이 묘사되어 있다. 하느님과 천사를 바라보던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이 이 아름다운 조각상에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마치 그 당시 정신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성당 뒤편 공원 잔디밭에는 여러 개의 조각상이 있는데, 원래 프라하의 팔라츠키(Palacky) 다리 위에 있던 조각상들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파손이 되어 수리를 하면서 이 공원에 옮겨진 조각상들이다. 체코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이들 석상들을 둘러보다 보니 세개의 기둥이 원뿔 형태로 세워진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성당'의 신부님이 어느 날 악마와 내기를 하였는데, 신부님이 설교하는 동안 악마가 이탈리아 성모 마리아 성당의 기둥을 이 성당으로 옮겨오면 악마가 이기는 내기였다. 그런데 이를 안 성 베드로가 악마를 세번이나 방해해서 악마는 내기에서 지고 말았고, 화가 난 악마는 가지고 왔던 기둥 3개를 이 공원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허구의 전설이지만 주체적으로 문화유산을 건립해 온 체코인들의 자존심이 느껴지는 전설이다.
 
비셰흐라드 전망 굽이치며 돌아가는 블타바 강과 주황색 지붕들이 너무나 예쁘다.
▲ 비셰흐라드 전망 굽이치며 돌아가는 블타바 강과 주황색 지붕들이 너무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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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지나자 성곽을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가 펼쳐지고 있었다. 체코의 역사 초기에 요새 역할을 하였던 이곳에는 도저히 허물 수 없을 것 같은 높이의 성곽이 높은 언덕을 감싸며 돌아가고 있었다. '높은 성'이라는 뜻의 비셰흐라드 이름처럼, 발 아래에는 굽이치며 돌아가는 블타바(Vltava) 강과 너무나 예쁜 주황색 지붕들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블록 단위로 가지런히 늘어선 주택가의 모습은 한적하기만 했다.
 
블타바 강 비셰흐라드를 지나 프라하 도심까지 유유히 흘러간다.
▲ 블타바 강 비셰흐라드를 지나 프라하 도심까지 유유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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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상보다 훨씬 장대한 전망을 즐기며 아내와 함께 성곽을 따라 산책로를 걸었다. 이른 아침이고 프라하 외곽이어서 가끔 산책하는 사람들만 눈에 띄었다. 강변에서 올라온 아침의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체코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이 비셰흐라드 언덕은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곳이다.

아내와 비셰흐라드를 나서면서 다시 드보르작의 묘를 찾아보았다. 공원묘지에 다시 입장하니, 큰 묘들 사이에서 드보르작 묘를 찾기가 잠시 헷갈렸다. 그의 흉상 아래에는 누군가가 바친 꽃다발이 가을 햇살에 바짝 말라 있었다.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던 도시에 와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의 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못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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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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