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천신만고 끝에 삼성화재를 꺾고 선두 자리를 지켰다.

박기원 감독이 이끄는 대한항공 점보스는 10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19-2020 V리그 남자부 2라운드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7-25, 25-18, 21-25, 19-25, 15-11)로 승리했다. 첫 두 세트를 따낸 후 3,4세트를 내주며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을 벌인 대한항공은 삼성화재의 거센 추격을 뿌리치고 승점 2점을 따내며 2위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15점)와의 승점 차이를 2점으로 벌렸다(승점 17점).

대한항공은 득점 1위(200점)를 달리고 있는 외국인선수 안드레스 비예나가 서브득점 4개를 포함해 29득점으로 공격을 이끌었고 손현종과 정지석도 34득점을 합작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대한항공은 무릎 상태가 좋지 못한 곽승석 대신 주전 윙스파이커로 출전한 이적생 손현종이 대한항공 이적 후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새 팀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박희상-김학민-정지석 배출한 '윙스파이커 맛집(?)' 대한항공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정지석은 대한항공이 발굴한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MVP 정지석은 대한항공이 발굴한 최고의 히트상품이다. ⓒ 한국배구연맹

 
대한항공은 실업배구 시절부터 좋은 윙스파이커를 많이 배출한 팀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 중반 '배구도사'로 불리던 윙스파이커 박희상은 1999년 원맨팀에 가까웠던 대한항공을 슈퍼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하지만 당시 대한항공의 결승 상대는 김세진과 신진식이 같은 팀에서 활약하던 삼성화재였다). 여자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를 첫 통합우승으로 이끈 김종민 감독 역시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에서 활약했던 왼쪽 공격수다. 

2005년 프로 출범 후 대한항공의 왼쪽 라인은 더욱 강해졌다. V리그 초기 드래프트 상위 지명권을 독식한 대한항공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한양대의 신영수, 2006-2007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경희대의 거포 김학민(KB손해보험 스타즈)을 지명했다. 신영수와 김학민은 2007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한선수, 진상헌과 함께 대한항공의 첫 번째 도약기를 이끌었다(물론 대한항공은 당시에도 챔프전에서 삼성화재를 만나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08년 우리캐피탈 드림식스(현 우리카드 위비)가 창단하면서 신인 지명권이 신생팀 우리캐피탈에게 몰렸지만 대한항공은 2010-2011 시즌 드래프트에서 곽승석을 지명하는 행운을 누렸다. 공수를 두루 겸비한 곽승석은 2011-2012 시즌과 2013-2014 시즌 두 번이나 수비상을 수상하며 2010년대 송희채(삼성화재)와 함께 V리그를 대표하는 '살림꾼'으로 자리 잡았다.

박철우(삼성화재) 이후 최고의 고졸스타이자 현존하는 V리그 남자부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인 정지석 역시 대한항공이 키워낸 윙스파이커 자원이다. 2013-2014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6순위(전체 13순위)로 대한항공에 지명된 정지석은 꾸준한 성장을 통해 세 시즌 만에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36경기에서 548득점을 올린 2018-2019 시즌에는 대한항공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MVP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대한항공이 자랑하는 왼쪽 공격수들의 특징은 모두 대한항공에서 성인배구를 시작한 '자체 생산 스타들'이라는 점이다. 대한항공은 한선수 세터에게 6억 8000만 원, 정지석에게 5억 8000만 원의 고액 연봉을 안길 정도로 투자에 소홀한 팀이 아니지만 큰 돈을 들여 왼쪽 공격수를 영입한 적은 없다. 그만큼 우수한 아마추어 유망주들을 고르고 팀에 맞는 선수로 키워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경계 허술한 틈을 타 이적 후 최다 17득점 폭발
 
 대한항공이 이례적으로 외부 영입한 윙스파이커 손현종은 시즌 개막 후 8경기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한항공이 이례적으로 외부 영입한 윙스파이커 손현종은 시즌 개막 후 8경기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 한국배구연맹

 
이처럼 왼쪽 공격수를 자체적으로 키워내던 대한항공이 지난 4월 FA 시장에서 KB손해보험의 손현종을 영입했을 때는 배구팬들 사이에서도 의아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손현종은 정지석과 곽승석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주전 레프트 라인의 자리를 위협할 정도로 높은 기량과 실적을 가진 선수도 아니고 1992년생으로 1988년생 곽승석의 장기적인 대체자가 될 수 있을 만큼 어린 선수도 아니기 때문이다.

손현종은 197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윙스파이커지만 KB손해보험 시절부터 불안한 서브리시브 때문에 약점이 뚜렷하던 선수였다. 실제로 손현종은 인하대 시절까지 주로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했지만 프로 입단 후 외국인 선수 토마스 패트릭 에드가와 포지션이 겹쳐 윙스파이커로 변신을 단행했다. 특히 2016-2017 시즌에는 오른쪽 새끼 발가락 피로골절로 수술을 받으며 한 시즌을 통째로 쉬기도 했다.

대한항공에 합류한 손현종은 이번 시즌 정지석과 곽승석의 백업으로 활약하고 있지만 1라운드 7경기에서 15세트를 소화하며 고작 7득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수비가 좋은 것도 아니라 후위에서 주전들에게 한숨을 돌릴 시간을 줄 수도 없고 과거 김학민이나 신영수가 그랬던 것처럼 전위에서 '조커'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후보 선수에 불과했던 손현종은 10일 삼성화재전에서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곽승석이 무릎 통증으로 주전 출전이 힘들게 되자 박기원 감독은 손현종을 주전으로 투입했고 한선수 세터는 상대 수비에게 경계를 덜 받은 손현종을 적극 활용했다. 실제로 손현종은 대한항공의 간판스타인 정지석보다 더 많은 20.91%의 공격 점유율을 기록하며 56.52%의 성공률로 13득점을 올렸다. 여기에 서브득점 4개를 보태면서 대한항공 이적 후 가장 많은 17득점을 기록하며 대한항공의 4연승에 크게 기여했다.

주전 정지석과 곽승석의 자리를 넘보기엔 아직 단점이 많지만 대한항공 선수단에서 손현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레프트 백업 1순위인 손현종이 없다면 대한항공에 레프트 포지션은 아직 프로 데뷔조차 하지 못한 3라운드 6순위(전체18순위) 출신의 루키 정태현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현종이 가끔씩 선발 출전하는 경기에서 이 정도의 존재감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손현종은 '우승후보' 대한항공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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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19-2020 V리그 대한항공 점보스 손현종 윙스파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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