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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씨가 그림을 그린 <지슬>(서해문집)은 오멸 감독의 작품인 영화 <지슬 2>의 내용을 그래픽노블로 창작한 것이다. 이미 영화를 봤기 때문에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영화와 만화는 느낌이 다르다.

먼저, 김금숙의 그림은 거친 붓을 사용한 형식미에서 영화의 분위기를 강렬하게 강조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투쟁 가운데서 죄 없는 제주의 가난한 백성들이 총칼로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과정이 김금숙의 그림을 통해 필연적으로 융합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라 하기 어렵다.

예전에 어린이 잡지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에 '꼬갱이'를 연재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그 그림과 이 작품의 그림이 같은 작가의 것인줄은 몰랐다. 김금숙과 같은 작가가 한국 만화계에 등장한 것은 만화계의 축복이자, 독자에게는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고도 즐거운 소식이다.

작가 김금숙은 전라남도 고흥 출생인데,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집안 역시 한국 전쟁의 발톱이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깊은 듯하다. 아직까지는 작가의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진 않고 있는 듯하다.

그의 작품 가운데 '아버지의 노래'가 자전적 이야기지만, 아직 한국전쟁의 참담함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앞으로 작가의 집안 이야기가 창작 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면, 아마도 <지슬>과 같은 무겁지만 아름다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영화 <지슬 2>를 그래픽노블로 창작한 <지슬>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 '지슬'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 '지슬' 표지
▲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 "지슬"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노블 "지슬" 표지
ⓒ 김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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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은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를 뜻한다. 1947년 4.3항쟁이 시작되자 이승만 정권은 군대와 서북청년단을 제주도로 보내 이승만 정권에 저항하는 제주도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이 만화(원작 영화)는 정부군과 서북청년단이 토벌대로 나서면서 벌어지는 학살을 다루고 있다. 해안에서 5km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빨갱이'로 단정하고 사살하겠다는 것이 이승만 정권의 군대와 서북청년단의 포고 내용이었다.

중산간에 사는 주민들은 군대와 서북청년단을 피해 산간 깊숙이 숨어든다. 마을에 주둔한 토벌대는 주민들이 남기고 떠난 돼지를 잡고, 산으로 올라가던 젊은 여성을 잡아서 끌고온다. 토벌대 내부에서도 계급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다르다.

나이 어린 신병들은 토벌대의 잔혹함에 진저리를 치지만, 제주도민을 살육하는데 재미를 붙인 자들도 있다. 토벌대에 속한 두 명의 어린 병사들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들은 고참들에게 폭행을 당하면서도 자신들이 괴물이 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주민을 학살하는 토벌대에서 탈영한 군인은 주민과 함께 마을주민들이 숨어 있는 동굴로 들어온다. 탈영하면서 총을 맞은 군인을 치료하는 주민들. 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 토벌대에 잡히고, 그는 주민들이 숨어 있는 동굴 위치를 알려준다. 자기가 살려고 주민들을 팔아넘기는데, 결국 주민의 손에 죽는다.

토벌대는 동굴을 찾아 주민들을 죽이려는데, 주민들은 말린 고추를 태워 연기를 피우지만 토벌대는 동굴 안을 향해 총을 난사한다. 그래도 주민들 일부는 살아서 동굴을 탈출하고, 토벌대 내부에서는 살육을 즐기던 김상사를 신병이 가마솥에 가둬 태워죽인다. 동굴 안에서는 임신을 한 애기엄마가 혼자 남아 아기를 출산한다. 탈출했던 주민들도 결국 나중에 체포되어 모두 토벌대에게 사살당한다.

상상과 이미지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제주 4.3의 고통

이 만화는 영화 <지슬>과 깊은 관련이 있으니 가능하면 영화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영화와 이 그래픽노블의 다른 점은, 그래픽노블이 가진 힘이기도 하지만, 상상과 이미지의 확산에 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는 상상의 장면들과 이미지는 제주 4.3의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원작 소설이나 원작 영화를 그래픽노블로 재창작하는 것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 소설을 만화로 재창작하는 것은 활자의 상상력을 구체화, 사실화한다는 점에서 현실성을 높이고, 캐릭터와 배경, 사물을 익숙한 이미지로 만나게 되어, 독자는 활자를 읽고 상상하던 것을 시각으로 확인하게 된다.

이는 활자만으로 된 내용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한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독자와 그래픽노블 작가의 해석이 다를 때는 오히려 독자의 상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실망할 가능성도 있다.

영화는 약 2시간 동안, 초당 24프레임으로 끊임 없이 상영된다. 이것을 5초당 1프레임으로만 바꿔도 1분이면 12프레임, 1시간이면 720프레임, 2시간이면 1440프레임이 된다. 만화는 한 페이지에 1-8컷 정도를 나누는데, 평균 5컷으로 계산하면 300쪽 만화는 1500컷으로 연출할 수 있다.

영화의 프레임과 만화의 컷을 이렇게 비슷하게 만들어 놓고 보면, 영화의 내용은 거의 다 담을 수 있겠지만, 만화는 정지된 장면들의 모음이기 때문에 영화보다는 세부 묘사와 동작의 섬세함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래픽노블이 영화보다 좋은 점 몇 가지가 있다. 만화는 영화에서 중요하게 보이는 장면을 이미지화 할 수 있다. 영화는 끊임 없이 장면이 흘러가지만, 만화는 수 많은 장면들 가운데, 중요한 장면을 이미지화하면서, 한컷, 한컷의 상징성을 만들어간다. 

이 작품의 표지는 영화포스터와 같은 이미지로 보이지만, 영화포스터의 사실적 이미지와는 또다른 울림을 준다. 군인이 아무 죄 없는 주민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은 민족의 분단과 분열, 이념으로 갈린 내전과 학살을 상징한다.

영화는 사실에 가까운 표현을 통해 그때의 비극 상황을 재연하지만, 만화는 생략과 과장을 통해 영화에서 볼 수 없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픽노블 작가의 그림은 그 자체로 회화 작품이고, 폭력과 공포, 죽음을 드러내는 거친 붓선과 먹의 농담으로 제주도 민중이 겪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제주4.3을 펜선이 아닌, 붓과 먹으로 그렸다는 것도 이 작품이 주목받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수묵화는 조선시대를 관통하는 회화였으며, 그림은 물론 글도 붓과 먹으로 썼다. 화가들은 일상의 풍경을 담은 세속화를 많이 남겼고, 조선의 민중은 수묵화를 퍽 친근하게 여기고 있다. 수묵화는 조선(한국) 민중에게 친숙하고 낯익은 표현도구이며, 우리의 정서와 감성을 오롯이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제주4.3의 희생자 대부분은 제주 민중이고, 이들은 이념 전쟁에서 억울하고 참혹하게 죽는다. 제주 민중을 수만 명 학살한 서북청년단과 경찰, 군인은 공산주의자를 제거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북한에서 쫓겨내려 온 기독교도들 가운데 극우주의자들이 복수를 위해 결성한 단체(서북청년단)를 통해 이념적 복수를 제주 민중을 향해 저지른 것이다.

작가 김금숙은 이들 우익이 저지른 학살 만행의 참혹함을 수묵화로 표현하고, 그 표현 기법은 그래픽노블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뛰어난 방식이다. 수묵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서도 역사적 사건을 그린 그래픽노블이 많겠지만, 이렇게 내용은 참혹해도 형식은 아름다운 수묵화 그래픽노블은 찾아보기 어렵다.

참혹한 내용을 아름다운 형식으로 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희생자와 그 가족인 제주민중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고, 그것을 그래픽노블이라는 이미지 작업을 통해 기억하는 것을 기껍게 생각할 것이다. 

참혹한 짓을 저지른 것은 가해자인 서북청년단, 경찰, 군인이고, 제주민중은 피해자였다. 참혹함과 반인륜, 반지성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무엇보다 희생자와 그 가족의 아픔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작가 김금숙의 작품은 형식미에 있어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다.

덧붙이는 글 | 그래픽노블의 리뷰/평론을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멸 (원작), 김금숙 (그림), 서해문집(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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