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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건복씨 모습.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건복씨 모습.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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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을 하던 그 눈빛을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 먹고살려면 우리는 그 눈빛을 참고 일해야 한다."

재가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건복씨가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힘겹게 입을 떼며 밝힌 말이다.

그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면서 "성희롱을 당했는데 '네가 어떻게 하고 다니길래, 옷차림과 말투가 그게 뭐냐고' 비난을 한다. 요양보호사들은 뭐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보호자에게 말하면 불편해 해 잘린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몸으로 체득한' 대안을 제시했다.

"옛날부터 성희롱을 하던 사람들은 지금도 한다. 오히려 요양보호사가 계속 바뀌니 성희롱 스킬이 늘어난다. 상습적인 성희롱 성추행 이용자에게는 요양보호사를 2인1조로 배치해야 한다. 또 성희롱 피해 신고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이씨는 이날 자신의 발표 말미에 "이용자들은 요양보호사들을 부를 때 '야', '너', '어이', '아줌마', '네까짓 게 뭔데' 등의 막말을 일상적으로 한다"면서 "요양보호사들이 1년 이상 근속하는 비율이 채 20%도 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나. 정부는 요양보호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재가요양보호사는 요양등급을 받은 이용자의 개별가정을 직접 방문해 일대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이다. 이용자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보통은 최저임금을 받는 초단시간 비정규직 일자리로 평가받고 있다. 대부분 50대 이상의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활동한다.

"사각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준다"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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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는 재가요양보호사를 비롯해 도시가스 검침원, 정수기 등 설치·수리 현장 기사 등이 참여해 자신들의 피해 사례를 증언했다.

도시가스 검침원으로 일하는 공순옥씨는 "집을 직접 방문하는 일이다 보니 대부분 낮에 직장에 가거나 부재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밤 열두시에 오라는 고객도 있다"면서 "방문하면 옷을 벗고 있거나 팬티만 입고 있는 경우도 너무 많다. 성희롱과 성추행에 노출돼 있다"라고 밝혔다.

공씨는 이런 사례로 "오피스텔 점검을 약속하고 갔더니 포르노를 크게 틀어 놓고 내 반응을 살피는 사람도 있고, 점검하던 중 '힘드시죠'하면서 엉덩이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면서 "점검원이 방문하면 막말을 삼가고 노출을 삼가달라"라고 당부했다.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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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노동자들의 고충은 여성노동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웅진코웨이 기사 이승훈씨는 "공기청정기를 수리할 때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진행한다. 미세먼지를 매일 마시고 있다. 문제는 회사에서 그 어떤 교육도 시켜주지 않는다. 교육받은 게 없어서 그냥 일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를 비롯해 방문설치 기사들은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돼 본사와 노사관계가 아닌 개별적인 자영업자로 등록돼 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 사고가 나도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씨는 이 부분도 강조했다.

"지난 8월 29일 포항에서 동료 기사에게 일어난 일이다. 식당 정수기를 설치하러 갔다. 기사들은 건마다 1만 원 조금 넘게 받는다. 그런데 작업 중에 펄펄 끓는 기름이 떨어졌다. 기사는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 썼다. 포항 병원에 갔는데 치료가 안 된다. 결국 대구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전신 2도에서 3도 화상이다. 아직도 입원 중이다. 누가 책임을 지나?"
 

"10명 중 9명 모욕적인 비난 경험"

이날 증언 대회 후 현장에선 방문서비스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앞서 민주노총은 지난 9월 11일부터 27일까지 방문서비스노동자 747명을 대상으로 2주간 조사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안전보건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 10명 중 9명에 해당하는 92.2%가 '고객에게 모욕적인 비난이나 고함, 욕설을 경험했다'라고 밝혔다. '고객으로부터 성적인 신체 접촉이나 성희롱을 당한 적 있다'라고 답한 비율도 응답자의 35.1%에 달했다. '구타 등 폭행을 당한 적 있다'라는 응답도 15.1%에 달했다.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6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방문서비스노동자 감정노동, 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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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명백한 폭력 사건의 가해자인 고객이 충분한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는 이유는 사실상 회사에서 책임을 회피하고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회사가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하고 있는가, 조치가 있다면 실효가 있느냐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 전문의는 "폭력 및 과중한 업무강도, 산재사고 등이 모두 감정노동 파트에서 다뤄지는 게 문제"라면서 "이 사안들은 감정노동의 문제가 아니라 고객에 의한 폭력이다. 관련법에 의해 가해자는 충분히 제재를 받고, 피해자는 충분히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현장에 토론자로 참여한 김동욱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장은 "오늘 방문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면서 "방문노동자들 방문할 때 최소한의 예의를 정립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캠페인 등을 진행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문노동자의 위험상황 발생과 관련해 '업무중지' 내용을 업무 가이드에 담겠다. 매뉴얼에 담고 작업을 거부했다 해서 불이익 가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김 과장이 말한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26조 작업중지 내용으로 '권리로서의 작업중지'를 뜻한다. 하지만 요양보호사와 검침원 등 방문서비스노동자에게까지는 아직 적용되진 않고 있다.

태그:#국회, #방문노동자, #감정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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