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부모의 끼와 재능을 자손들이 그대로 물려받아 대를 이어 활약하는 모습은 체육계나 연예계 등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부자 국가대표로 유명한 축구의 차범근-차두리, 야구의 이종범-이정후 부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농구처럼 타고난 신체 조건이 중요한 스포츠에서는 2세대들이 선천적으로 키와 운동능력이라는 부모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인지 한국농구에서도 최근 '농구인 2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9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뽑힌 고려대 김진영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9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에 뽑힌 고려대 김진영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일 열린 2019 KBL 국내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김유택 전 중앙대 감독의 아들인 김진영이 전체 3순위로 서울 삼성에 지명된 것이 화제를 모았다. 김유택 전 감독은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자동차의 '무적함대' 시절을 이끌었던 주역이자, 한국농구 역대 센터 계보에 꼽히는 스타플레이어였다. KBL 출범 당시는 현역 시절 말년으로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지만 챔피언결정전 원년 우승과 초대 식스맨상을 수상하는 등 프로에서도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김유택의 선수 시절 공식 프로필은 197cm에 86kg으로, 센터로서는 무척 마른 체형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근성과 기술로서 극복해냈다. 아들 김진영의 포지션은 아버지와 달리 가드지만, 키 193cm에 65kg으로 마른 체형과 외모가 아버지를 빼닮았다. 가드로서는 엄청난 장신에 대학 최고의 스피드와 운동능력을 갖춰 런앤건에 최적화된 선수로 꼽힌다. 김진영의 소속팀 감독이 된 이상민 삼성 감독이 역대 최고의 포인트가드 출신이자 가드 중심의 빠른 농구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김진영의 성장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진영에 앞서 김유택의 또 다른 아들이자 김진영의 이복형에 해당하는 최진수가 역시 고양 오리온에서 활약중이라 김진영이 데뷔하면 '형제 대결'도 볼수 있게 된다. 장신포워드인 최진수는 오리온의 주전급 선수로 활약하며 2016년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경험하는 등 농구인 2세로서 프로무대에서 자리잡은 케이스다. 하지만 청소년 시절 이미 국가대표에 발탁되었고 한국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디비전1에 소속되었을만큼 주목을 받았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평가도 늘 공존하는 선수다.

같은 날 드래프트 전체 9순위로 인천 전자랜드에 뽑힌 연세대 출신 포워드 양재혁은 양원준 전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사무총장과 이화여대 농구선수 출신 이경희씨의 아들이기도 하다. 연세대 선배인 양희종(안양 KGC 인삼공사)을 연상시키는 투쟁심과 허슬플레이가 돋보이는 수비형 포워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한 공격력과 애매한 사이즈는 약점으로 꼽힌다. 포워드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유도훈 감독의 조련이 기대된다.

현재 '부자 프로농구 선수'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역시 허재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그 아들 허웅(원주 DB)-허훈(부산 kt) 형제다. '농구대통령'으로 유명한 허 감독은 선수 시절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농구의 전설이었고, 선수와 감독으로서 모두 프로 무대 정상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전주 KCC 시절에 허웅이 데뷔하며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부자 대결'이 성사되기도 했다. 허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역임하던 시절에는 허웅과 허훈이 모두 대표팀에 승선하여 세 부자가 동반으로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두 선수 모두 소속팀에서 확고한 주전급이자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농구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거론되는 부친의 명성에는 아무래도 미치지 못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허웅은 슈팅가드로 정확한 3점이 주특기이고, 허훈은 포인트가드로서 단단한 체구와 승부근성이 아버지를 빼닮았다. 다만 신체조건이나 기술적 능력은 모두 현역 시절의 허재 감독에 비하면 떨어진다. 이로 인하여 아시안게임 당시에는 허웅-허훈의 대표팀 발탁에 관해 특혜 논란이 일기도 했으며, 이는 결국 아시안게임의 부진과 맞물려 허재 감독이 불명예 사퇴하는 결정적 빌미가 되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직접 지명한 사례도 있다. 2005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동광 당시 안양 KT&G(현 KGC 인삼공사) 감독은 2라운드에서 고려대 출신의 가드이자 친아들이었던 김지훈을 지명했다. 그러나 김지훈은 프로무대에서 잦은 부상과 부족한 기량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2014년 드래프트에서는 당시 전주 KCC 사령탑이던 허재 감독이 역시 친아들 허웅을 지명할 기회가 있었으나, 여론의 부담을 의식한 듯 김지후를 4순위로 선발하며 부자가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는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전주 KCC의 레전드 하승진과 울산 현대모비스의 이종현도 모두 농구인 2세 출신이다. 하승진의 부친 하동기씨는 70년대 농구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이종현의 아버지 이준호씨는 중앙대와 실업팀 기아자동차에서 센터로 활약했다. 프로화가 이루어지기 한참전에 활약했던 세대였고 선수로서의 족적도 크지 않았지만 2세대에 이르러 오히려 더 크게 성공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승진은 한국농구 최초의 NBA리거, 역대 최장신센터라는 화려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잦은 부상과 기본기 부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해야 했다. 이종현도 매년 계속되는 부상으로 프로무대에서 아직까지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여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여자농구의 박지수(청주 KB스타즈)는 농구인 2세 중 가장 성공한 선수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박지수의 부친은 박상관 전 감독은 실업/프로 삼성에서 센터로 활약했으며 은퇴후 명지대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형적인 수비형 센터로서 선수 시절 명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특히 박상관 감독은 1995년 농구대잔치 때 서장훈에게 그 악명높은 '엘보우 어택'으로 치명적인 목부상을 안긴 전력 때문에 농구팬들에게는 지금까지도 안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박지수의 선수로서의 위상은 이미 부친의 현역 시절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불과 17세에 최연소 성인 국가대표 선발을 비롯하여 2018-19시즌 KB스타즈의 우승과 통합 MVP 수상, WNBA(미국여자프로농구) 진출에 이르기까지, 아직 스무살에 불과한 나이에 벌써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자 미래의 '레전드'로 착실하게 성장중이다.

몇 년 전에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대선배인 서장훈과도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며 선대의 악연을 씻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농구인 2세의 한계를 뛰어넘는 모범적인 청출어람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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