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 JTBC

 
'뭇 백성'이란 표현이 있다. 옛스러운 문투의 책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런 뭇 백성들은 역사 변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이들의 관점이나 목소리가 역사서에 기록되는 일은 많지 않다.
 
예로부터 한국에서는 재산과 학식과 관직을 평균 이상으로 보유한 사람들의 손으로 역사가 서술됐다. 조선시대 경우에는 '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선비로 살다가 과거시험에 급제한 사람'(A)의 붓끝에서 역사가 기록됐다. 왕실과 조정이 이들에게 사관의 직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선비로 살 필요도 없고 과거에 급제할 필요도 없었던 부유층(B)의 시각과, 재산도 없고 학식도 없고 관직도 없는 서민층의 시각은 역사서에 소개될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B부류는 '총명하지만 가난한 선비가 딸만 있는 부잣집에 장가갔다'는 류의 민담에 등장하는 부자들과, 정조 임금 때의 무신인 노상추의 일기에 나오는 '지방 출신 관료들에게 전셋집을 내주면서 갑질도 하고 보증금도 떼먹는 부자'들을 포함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재산이 '매우 매우' 많은 경우에는, 학력이나 관직을 별도로 획득하지 않아도 지배층 지위를 누리는 데 그다지 지장이 없었다.
 
A가 역사 기록을 담당하다 보니, 뭇 백성들과 B의 시각은 상대적으로 적게 담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역사서를 읽는 현대인들은 A의 눈으로만 과거를 볼 뿐, B나 못 백성들의 눈으로는 과거를 볼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서휘, 남선호, 한희재... 새 명의 뭇 백성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 JTBC


중반를 향해 달리고 있는 JTBC 금토 드라마 <나의 나라>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는 사극이다. '여말선초'로 표현되는 고려 말과 조선 초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여느 사극과 달리 이성계·정도전·이방원 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서휘(양세종 분), 남선호(우도환 분), 한희재(김설현 분)라는 세 명의 뭇 백성을 앞에 세우고 있다.
 
서휘는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분을 숨겨야 했던 아버지 때문에 힘든 성장기를 보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무시가 그의 곁을 늘 따라다녔다.
 
남선호는 유복한 관료 가문에서 출생했지만, 어머니가 노비라서 얼자의 설움을 겪었다. 양인(자유인) 출신의 두 번째 부인한테서 태어나는 서자와 달리, 남선호는 노비인 어머니한테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로 불러야 할지 주인 어르신으로 불러야 할지를 고민하면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희재는 일찍부터 부모의 손을 떠나 고급 요정에서 성장했다. 남자 손님들을 가까이하지는 않았지만, 남이 볼 때는 그곳 직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로 인한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며 살지 않을 수 없었다.
 
드라마는 이성계 쿠데타인 1388년 위화도 회군을 계기로 세 주인공이 권력층 주변에 접근하도록 설정해 놓았다. 세 사람이 직간접적으로 이성계 가문과 얽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이런 설정은 여말선초의 역사적 변화가 뭇 백성들의 시선에 어떻게 포착됐는지를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정치권과 거리가 먼 뭇 백성보다는, 뭇 백성의 마인드를 가진 상태에서 권력층에 근접한 사람의 눈을 빌린다면, 좀더 새로운 각도에서 당시의 역사 변화를 조명해내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존하는 역사 기록들은 A 그룹이 남긴 것이기 때문에, 서휘·남선호·한희재 같은 이의 눈에 당시의 역사변화가 어떻게 비쳐졌는지는 그런 기록들에서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지 않을 수 없다. 사료를 통해서는 쉽게 알 수 없는 그런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의 나라>는 좋은 시도를 갖고 출발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노비 계급에게 청신호로 여겨진 조선의 건국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 JTBC


그런데 1회당 1시간 10분 이상 되는 이 드라마가 총 9회 방송됐는데도, 아직까지는 좋은 시도에 걸맞은 좋은 결과물이 제대로 드러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아쉬움을 준다. 
 
오늘날 우리가 갖고 있는 조선왕조의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이지만, 1392년 건국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고려왕조에 대한 이성계의 배신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존재했지만, 이는 이전 시대에 기득권을 가졌던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할 뿐이다. 뭇 백성들의 관점과는 거리가 있다.
 
1392년 건국의 주역인 이성계·정도전과 함께하는, 또는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의 주역인 이방원과 함께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얼의 피가 흐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정도전부터가 그랬다. 그의 외할머니는 노비였다. 어머니가 노비이면 딸·아들도 노비였기 때문에, 정도전의 외할머니가 낳은 정도전의 어머니 역시 노비일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의 참모였던 하륜한테도 노비의 피가 흘렀다. 하륜의 경우에는, 외할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노비였다. 이방원의 밀명을 받고 개경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살해한 조영규한테도 노비의 피가 흘렀다. 어려서부터 불만을 품고 살았던 서얼 출신들이 훗날 서울로 불릴 한양에다가 새 나라를 세우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참고로, 서울의 어원과 관련해서는 '신라 서라벌에서 기원했다'는 견해가 다수설이다.
 
고려시대에는 서얼에 대한 차별이 그리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혈통을 중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고려시대 서얼도 어느 정도는 차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서얼이 대거 포진한 조선왕조 건국 주역들을 보면서, 서얼 출신 백성들은 희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서얼의 지위가 개선되는 것을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들은 서얼을 낳은 여성들이다. 그중에서 얼자를 낳은 노비 여성들은 조선 건국 즈음에 새로운 희망으로 부풀었을 것이다. 이런 여성들의 심정적 지원 속에서 조선이 건국됐다고 볼 수 있다.
 
고려가 무너진 요인 중 하나는, 노비 숫자가 너무 많아서 국가를 위해 병사로 복역하고 세금을 납부할 양인 숫자가 적었다는 점이다. 조선 건국 주역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조선이 세워진 뒤에는 노비의 권익이 이전 시기보다 많이 향상됐다. 그랬기 때문에 조선 건국이라는 사건은 인구의 절반 이상인 노비 계급한테 희망적인 청신호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비주류들이 조선 건국에 희망을 가졌던 까닭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의 한 장면 ⓒ JTBC


조선 건국의 주역들은 학벌에서도 밀리는 편이었다. 이들 중에서 국립 성균관 출신은 정도전과 남은 등 소수에 불과했다.
 
1388년 위화도 회군 때만 해도, 성균관 출신들이 이성계를 대거 지지했다. 그러나 이성계·정도전·조준이 과전법이라는 토지개혁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이들은 지지를 철회했다. 정몽주를 위시한 이들은 1392년에는 조선 건국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들은 조선 건국 뒤 중앙 정계와 거리를 두고 지방에서 경제적·사회적 실력을 축적했다. 그런 뒤 연산군의 아버지인 성종 임금이 있을 때인 1400년대 후반부터 중앙 정계를 노크했다. 이들이 영구 집권에 성공한 것은 1567년 선조 즉위 때였다. 조광조로 대표되는 이 그룹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사림파(유림파)다.
 
하지만 조선 건국 당시만 해도 성균관 출신들이 뒤로 밀리고 비(非)성균관 출신들이 대세를 이뤘다. 그랬기 때문에 학벌을 고민하는 선비나 관료들은 새로운 나라에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왕조에 기대감을 가졌을 사람들이 더 있다. 소수민족으로서 함경도 같은 변방이나 내륙의 향소부곡 같은 천민 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성계는 자기 가문이 전주 이씨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집은 여진족 구역인 함경도에 있었다. 적어도 4대 이상이 이곳에서 대대로 살던 중에 이성계가 태어났다. 그가 전주 이씨이든 아니든 그의 건국은 소수민족과 변경 주민들에게 희망이 될 만한 뉴스였다. 이 나라의 비주류들도 실력과 행운이 따른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줄 만한 일이었다.
 
이처럼 여말선초의 과도기 때는 신왕조에 희망을 가질 만한 이유가 많았다. 누가 봐도 조선왕조는 고려왕조보다 진보적이었다. 그래서 비주류들이 한번쯤 희망을 가질 만했다.
 
<나의 나라> 속의 서휘·남선호·한희재 조합이라면 그런 비주류들의 희망을 어느 정도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시대 비주류들의 희망이 아직까지는 드라마에 충분히 구현되지 않았다. 나머지 방영분에서는 어느 정도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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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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