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 롯데컬쳐웍스

 
'아는 이야기를 하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자'.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연출인 김도영 감독의 생각은 간결하고 분명했다. 100만 독자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해당 작품이 개봉하고 약 180만 관객(11월1일 기준)이 들었다. 젠더 갈등 등 원작 소설에 얽힌 여러 이슈를 무던히 뚫고 지나온 결과다. 어쩌면 과한 힘을 주지 않고, 감독의 다짐대로 아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해 온 덕이 아닐까.

2012년 그의 단편 <가정방문>부터 <자유연기>까지. 여성이 서사의 중심에 등장한다. 아직 상업영화를 경험한 적이 없는 그지만 제작사는 <자유연기>를 보고 그에게 < 82년생 김지영 >을 맡기기로 했다고 한다. 육아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자유연기>는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관객상, 제17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사회 시스템과 관습"

"<자유연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서 찍은 건데 관객분들의 공감을 받자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떤 부분이 마음을 흔들었을까. 제 삶을 돌아보는 계기기도 했다. 그러다 마침 < 82년생 김지영 >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상업영화 데뷔작이 될 텐데 크게 고민했지만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다. 

원작 소설은 <자유연기>를 준비할 때 누군가 추천해줘서 읽게 됐다. 그리고 작년(2018년) 9월에 영화 시나리오 초고를 접하게 됐다. 저로선 책에서 받았던 공감과 생각, 그 담담한 어투가 주는 힘을 각색하면서 많이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회적 의제 역시 어떻게든 가족 서사에 확장하고 싶었다. 초고는 좀 더 따뜻한 가족 영화에 가까웠거든. 

영화 작업하며 원작을 두 번째 읽었는데 좀 더 객관적으로 떨어져 읽으려 했다. 대사 하나하나 너무 고민하며 썼는데 어느 순간 선명해질 때가 있더라. 원작자인 조남주 작가가 팟캐스티에서 '우린 모두 식초에 담긴 오이같다'고 한 말을 들었다. 지영이네 가족이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 문화나 관습의 틀 안에 있잖나. 오이가 아무리 싱싱해도 식초에 담겨 있으면 피클이 되듯 말이다."

 
 영화 < 82년생 김지영 > 스틸 컷

영화 < 82년생 김지영 > 스틸 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김도영 감독은 "어쩌면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건 사회 시스템과 문화가 아닐까 생각했다"며 "보통의 영화 서사는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악당)가 있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영화 작업에서 가장 고민했고 결국 우리 사회 풍경을 안타고니스트로 잡았다"고 말했다. < 82년생 김지영 > 곳곳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선, 무심코 던지는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주 날카롭게 폐부를 찌르는 영화가 되지 못한다 해도 저로선 그런 마음을 갖고 만들었다. 보시는 분들 경험치에 따라 아마 인물들 해석도 다를 것이고 공감도 또한 다를 것이다. 상업영화 틀 안에서 제작되기에 최대한 문턱을 낮추려 했다. 사실 원작에선 여러 풍경을 제시하고 있잖나. 제가 던지고 싶었던 사회적 의제는 몰카 문제라든가, 독박육아, 유리천장 등이었다. 또 원작과 달리 영화에선 지영씨가 아직 자기의 병을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병이 진행되는 설정인데 그 안에 이런 이야기를 넣으려 고민했다.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지영씨가 동선이 그리 다양하지 않다. 저도 (두 아들을) 키워보니 그렇더라. 집에 있거나 외출하더라도 북카페나 친정에 가는 게 전부다. 경력 단절 말고도 (독박 육아를 하며)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잖나. 동네 아줌마들의 이야기, 직장 동료와 과거 상사와 이야기에서 그런 면을 바라보고, 하고 싶었다."


배우에게 들어가는 열쇠

연출자이기 전 김도영 감독은 대학로 무대에서 오래 연기해 온 배우 출신이기도 했다.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욕창> <살아남은 아이> 등에서 주요한 역할로 출연했다. 그래서인지 < 82년생 김지영 > 출연 배우인 정유미와 공유는 입을 모아 "배우의 마음을 알고 현장에서 어느 것 하나 가둬두지 않았다"며 김도영 감독에 대해 말해왔다.

젠더 갈등 이슈가 한창일 때 두 주연 배우는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김도영 감독은 "오히려 저보다 두 배우는 생각보다 담대했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고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저로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배우라 이미지가 중요한데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할 만한 이야기라며 출연해주셔서 저로선 너무 감사했지. 정말 단역분들까지도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갖고 참여하셨다. 그래서인지 혼자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 힘으로 지금까지 오게 됐지. 정유미씨도 공유씨도 정말 좋은 배우다.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감동이었다. (극중 김지영 엄마 역할의) 김미경 선생님도 제가 배우 출신이라 그런지 연출자 머리에선 상상도 못 했던 연기를 해주셨다. 정말로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보다 현장에서 더 좋았고, 큰 에너지를 얻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연출한 김도영 감독. ⓒ 롯데컬쳐웍스


이 대목에서 김도영 감독은 영화에 등장한 많은 새로운 얼굴을 언급했다. 모두 감독이 무대 연기를 하며 알아 왔거나 눈여겨본 좋은 배우들이었다. 영화감독의 덕목 중 하나가 '새로운 얼굴의 발견'이라면 김도영 감독은 < 82년생 김지영 >을 통해 마음껏 펼쳐냈다. 검증되고 유명한 배우로만 채우지 않겠다는 뚝심이기도 하다. 

"제가 배우 출신이라 연기에 민감한 것도 있고, 배우였을 때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 이번에 참여해주셨다. 그런 순간 너무 짜릿하더라. 연출의 언어와 배우의 언어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배우가 확 꽃이 필 때 감정의 전염을 저도 많이 경험했다. 연출자로서 그걸 아는 게 장점이 될 거라 생각했다. 배우는 해당 장면에서 살아남기 위해, 설득력 있게 하기 위해 모든 걸 던지는 존재라고 믿는다.

다만 배우마다 들어가는 열쇠가 다르다. 영화 공부할 때 책에서 본 말이다(웃음). 감독은 열쇠를 하나씩 넣어보는 거지. 다행히 전 여러 열쇠를 가진 셈이었고.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이 있어야 하겠지만 배우는 자신의 몸이 악기면서 자신이 연주자잖나. 자신들도 어떤 지점에서 통할지를 알고 있지. 그래서 감독이라면 배우에게 '여기서 울어주세요'라고 하기 보단 그 결과까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본다. 전 연출이니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말고, 아는 것에만 집중하자 싶었다. 수많은 좋은 스태프들이 절 돕고 있으니 배우와 그 순간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 장편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김도영 감독은 "나와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이후에도 자신이 알고 겪어 온 이야기부터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형제도 다 여성 형제였고, 그 안에서 관객과 나눌 이야기가 아직 많다"며 그는 "저뿐 아닌 여러 감독님이 여성과 아동 서사를 하고 있는데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제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이후에 다른 쪽에도 서보면 좋겠지만 일단 지금 머릿속엔 자라오면서 겪은 많은 일들과 친구들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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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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