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안양 KGC의 경기.
KGC 브라운이 슛을 하고 있다. 2019.10.30

30일 울산 동천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와 안양 KGC의 경기. KGC 브라운이 슛을 하고 있다. 2019.10.30 ⓒ 연합뉴스

 
'디펜딩 챔피언' 울산 현대모비스는 올 시즌에도 강력한 우승후보 1순위로 꼽혔다. 지난 시즌 우승의 주역들이 대부분 건재한 가운데, 프로농구 역대 최다인 6회의 우승을 이끈 유재학 감독의 노련한 지도력까지, 별다른 약점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모비스의 올 시즌 행보는 영 순탄치 않다. 개막 3연패로 시작부터 기대를 벗어난 역주행을 했지만 18일 안양 KGC 인삼공사를 잡고 연패를 탈출한 이후 3연승을 내달리며 정상궤도로 돌아오는 듯 했다. 하지만 25일 원주 DB전부터 또다시 시즌 두 번째 3연패 늪에 빠졌다. 30일에는 모비스의 시즌 첫 승 제물이었던 인삼공사와의 두 번째 대결에서 고비를 이겨내지 못하고 또 다시 무너지며 시즌 전적 3승 6패로 중하위권인 7위에 머물렀다. KBL 역대 최고의 '왕조'로 꼽혔던 모비스답지않은 롤러코스터 행보다.

모비스가 1라운드에서 3승에 그친 것은 2016-2017시즌 이후 3년 만이다. 당시의 모비스는 뒷심을 발휘하며 정규 리그를 4위로 마쳤다. 하지만 그때보다 지금의 사정이 더 좋지 않다. 모비스가 6강 플레이오프에 만족할 정도가 아니라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팀이기에 더 심각하게 느낄만한 분위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비스의 최근 연패는 저조한 득점력과 함께 '4쿼터의 부진'이 결정적이었다. 모비스의 올 시즌 팀 평균득점은 70.1점으로 최하위 창원 LG(68.2점)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라건아 외에는 두 자릿수 평균 득점을 올리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

특히 모비스가 승부처인 4쿼터에 올린 누적 득점은 총 137점(평균 15.2점)으로 10개 구단 중 최하위다. 최근 3연패 기간만 놓고봐도 모비스는 4쿼터에서 상대 팀을 리드한 적이 한번도 없다. 이 기간 4쿼터 득실 마진은 -28점(42득점-70실점)이나 된다. 30일 인삼공사에서도 3쿼터까지는 57-59로 거의 대등했으나 4쿼터에서 겨우 9점을 올리는 데 그쳤고 실점은 18점이나 내주는 '더블 스코어'로 막판에 허무하게 무너졌다. 실책은 17개로 인삼공사의 9개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는데 특히 인삼공사 변준형에게만 가로채기를 5개나 당한 게 뼈아팠다.

유재학 감독을 비롯하여 라건아, 양동근, 함지훈 등 큰 경기와 우승 경험이 풍부한 해결사들이 넘쳐나는 모비스가 이토록 뒷심이 약해졌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은 체력 문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양동근, 함지훈, 오용준 등 모비스의 베테랑들은 대부분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겼다. 전성기를 넘긴 함지훈(9.3점)과 양동근(9.2점)이 여전히 팀 내 2, 3순위 공격 옵션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모비스 공격 루트의 다양성이 부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대성과 김상규는 부상에서 겨우 돌아와 아직 컨디션이 완전하지 않다.

라건아는 비시즌 국가대표 차출로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고 올 시즌도 공수에서 너무 많은 부담을 안고 있다. 어려울 때 한 방씩 터뜨리며 분위기를 전환해주던 문태종도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주전들의 체력이 떨어지다보니 정작 중요한 4쿼터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쉬운 슛을 놓치거나 어이없는 실책으로 경기 흐름을 내주는 경우가 잦아졌다.

사실 모비스의 노쇠화에 대한 우려는 이미 3~4년 전부터 거론된 불안 요소였다. KBL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유재학 감독도 주전들의 체력 안배 실패와 과도한 혹사 논란 면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는 지도자다. 다만 그동안 전성기의 양동근처럼 비정상적일 정도로 체력과 내구성이 뛰어난 선수들과 팀의 호성적 덕분에 크게 문제처럼 불거지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모비스도 언제까지 거스를 수 없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모비스의 주전급 중 라건아를 제외하면 경기당 30분 이상을 소화할만한 체력을 갖춘 거의 없어 보인다.

유재학 감독은 최근 서명진-배수용-자코리 윌리엄스같은 벤치 멤버들의 출전 시간을 늘리거나 선발로 기용하는 등 변칙적인 용병술을 종종 구사하고 있다. 이제는 주전들을 오래 뛰게 하고 싶어도 그럴 상황이 안 되다보니, 체력 안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책이다. 하지만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높아진 올 시즌 KBL에서 모비스의 국내 선수층은 별로 두터운 편이 아니다. 식스맨들의 출전 시간을 늘리면 초반부터 점수 차가 벌어져서 따라가기 급급한 모양새가 된다. 그렇다고 주전들을 일찍 투입하면 체력이 떨어져서 정작 중요한 4쿼터에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라건아의 위력도 예전같지 않다. 물론 '더블-더블 머신'답게 시즌 기록상으로는 21.6점, 15.1리바운드로 여전히 우수하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자밀 워니(SK), 브랜든 브라운(인삼공사)처럼 라건아를 상대로도 크게 밀리지 않는 외국인 선수들이 늘어나며 이전 시즌처럼 라건아 혼자 활약한다고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특히 지난 시즌 전주 KCC 시절부터 라건아의 천적으로 등장한 브라운은 30일 맞대결에서도 30점 17리바운드로 15점에 그친 라건아를 압도했다. 라건아가 최근 심판 판정에 불만을 자주 드러내거나 경기가 안 풀리면 팔꿈치를 위험하게 쓰는 등,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플레이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도 모비스로서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아직 시즌 초반이고 다른 팀에 비하면 그동안 모비스의 경기 일정은 오히려 무난한 편이었다는 사실이다. 모비스의 11월은 20일간 총 9경기나 치르는 강행군이 예정되어 있다. 백투백(이틀 연속) 경기 2회를 포함하여 4일간 3경기를 치르는 타이트한 일정만 2차례나 잡혀있다. 가뜩이나 체력 문제가 심각한 모비스가 '지옥의 11월'을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까. 선수들의 분발도 필요하지만 결국 유재학 감독의 전술적 역량이 다시 시험대에 오르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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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모비스 유재학 라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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