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포스터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포스터 ⓒ 마노엔터테인먼트

 
<우먼 인 할리우드>는 권력을 가진 존재가 할리우드에서 그동안 여성을 어떻게 배척했는지 보여준다. 188편의 작품, 96명의 목소리가 담긴 할리우드 고용실태 및 기회 불균형 고발 리포트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권력 앞에 맞설 방법은 수치로 환산된 데이터였다. 여성 배우, 감독, 작가, 제작자의 인터뷰와 반박할 수 없는 수치를 제시하자 일단 말을 붙일 수 있었다. 수십 년 전부터 점점 견고해진 구조가 영원불멸하게 둘 수 없다고 생각한 할리우드 대표 인사들이 뭉쳤다.

권력은 거대하고, 강력하며, 조용하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집단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지만 유독 할리우드는 제자리 걸음이다. 남성 중심적인 제작 구조는 여성 영화인을 곳곳에서 가로막고 있었다. 여성 영화인이 충분히 경쟁력 있고 창의적인 인재라고 해도 말이다. 기회조차 없는 데 어떻게 재능을 펼칠까. 영화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한다.

공공연한 일이었지만 그간 아무도 문제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해봤자 들어주지도 않거나 오히려 문제제기 한 사람을 일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여성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여성 감독이 주목받아도, 다음 영화 투자를 받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거나 투자를 받지 못했다.

애니메이션에서부터 시작되는 가치관 형성의 걸림돌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 마노엔터테인먼트

 
미디어는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영화는 미디어에서 여성이 오랜 기간 주인공의 주변인으로 존재하거나, 성적 대상화 되거나, 주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영화, TV를 보며 가치관을 형성했다. 아이들은 미디어가 여성을 표현하는 법을 대부분 그대로 흡수해왔다.

특히 미디어 왕국의 성비 불균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받은 문제였다. 그러나 개선은 쉽지 않았고, 이에 지나 데이비스는 연구기관을 세워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영화에서 보여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제작자, 감독, 작가, 배우 등 할리우드의 주요 직업군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0% 이상이었다. 어린이가 보는 영화에도 남자 캐릭터가 여자 캐릭터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또한 주인공이 남자인 경우, 여자 주인공보다 화면에 2배 이상 더 오래 노출됐다.

할리우드의 공공연한 비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 마노엔터테인먼트

 
수치보다 더욱 와닿았던 것은 직접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증언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한 나탈리 포트만과 클로이 모레츠의 인터뷰가 특히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 데뷔한 두 사람은 촬영장에서 느낀 불합리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메릴 스트립, 샤론 스톤 등 톱스타 배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관객들도 잘 알 법한 스타 케이트 블란쳇, 산드라 오, 제시카 차스테인, 지나 데이비스도 직접 경험한 불평등을 고백한다. 배우에서 이제는 제작자로 더 잘 알려진 리즈 위더스푼도 숟가락을 얹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무성영화 시절에는 여성의 영향력이 두각을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음향 기술이 도입되고, 실내 촬영으로 전환되면서 영화 산업도 변화를 겪는다. 부유한 남성들이 제작사를 독차지하고 본격적인 지금의 할리우드 시스템이 갖춰진다.

<우먼 인 할리우드>의 전반부는 할리우드의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후반부는 이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에 대해 다룬다. 지나 데이비스는 연구소를 설립해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젠더 문제를 분석했다.

스웨덴의 한 영화관에서는 '벡델, 윌리스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에 A 마크를 달아 등급을 매겼다. 영화 성평등 지수를 보여주는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는 1985년 만화가 '엘리슨 벡델'이 만든 영화 성평등 테스트다.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등장하는지, 이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하는지, 여성들 대화 주제가 남성과 관련 없는 것인지가 테스트의 주요 조건이다. 엘렌 윌리스 테스트(Ellen Willis Test)는 캐릭터의 성별을 바꿔도 서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지를 따지는 테스트다.

영화에는 지나 데이비스 연구소의 데이터에 충격받아 이를 실천에 옮긴 사람도 나온다. 바로 월트 디즈니 컴퍼니 산하의 케이블 채널 'FX'의 CEO다. 그는 FX 제작 전반에 성비 불균형이 있음을 직시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다양한 창작자가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 다양한 문화를 전달할 수 있다는 고용 다양성을 실천했다. FX는 인종과 젠더를 구별 않고 콘텐츠를 만든 끝에 더 많은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어느 한 쪽의 노력보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 스틸컷 ⓒ 마노엔터테인먼트

 
끝으로 영화는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스토리텔링의 평등, 남성의 시각을 답습하는 대신 다른 시선과 다른 카메라가 필요하다. 늘 싸움 끝에 성공을 보여줘야 하는 일에 익숙한 생활에 메릴 스트립은 "21세기 기사도 정신을 가진 남성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바뀌기 힘든 구조에는 윗선인 남성의 발자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디어 또한 산업 구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비단 할리우드뿐만이 아니다. 업계 모두, 대한민국 영화계의 이야기일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왔던 이야기에 반기를 든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반쪽짜리 상아탑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다음 세대에 그대로 장애물을 물려줄 것인지 영화는 묻고 있다. 모두가 함께 움직일 때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우먼 인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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