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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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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10월 항쟁은 전문 시위꾼이 분위기를 몰고 화려한 무대와 치밀한 기획을 통해 억지로 만들어낸 가짜 광장, 가짜 민심이 아니었습니다.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우리 아버지, 집회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우리 어머니, 아이들 키우느라 정신없는 젊은 부부,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하루하루가 바쁜 학생들, 이 모두가 바로 광화문 10월 항쟁의 주인공입니다. 이것은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저항입니다."

2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광화문 10월 항쟁'이란 표현을 썼다. 그는 황교안 대표와 함께 광화문광장 집회에 참석해본 사람이다. 그런 그가 현장 분위기를 위와 같이 표현했다. 서초동이나 여의도 분위기를 광화문 분위기로 바꿔 놓은 듯하다.

표면적으로는 '조국 구속'을 위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검찰개혁 반대'를 위한 것인 최근의 광화문 집회들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등에 의해 주도됐다. 홍준표·이재오·오세훈 같은 정치인들도 연단에 섰지만, 주도한 쪽은 기독교 목회자들이다.

10월 광화문 집회에서는 목사들이 연설, 아니 설교를 했다. 다 함께 눈 감고 기도하는 시간도 있었다. 교회 예배 때나 볼 수 있는 헌금함도 광장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지난 5월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전광훈 목사는 "우리 성도들이 선교비든지 건축 헌금이든지 무슨 헌금이든지 저에게 주는 것에 대해서는 저한테 일임하도록 우리 교회 정관이 그렇게 돼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헌금 용처를 묻지 말라며 담을 쳐놓는 그가 광화문에서도 헌금을 거뒀던 것이다.

조광조가 조선왕조를 개혁하던 1517년 가을, 독일 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써 붙였다. 그중 제28조에서 그는 "돈이 헌금함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과 탐욕이 증가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라고 경고했다.

전광훈 목사의 재량에 맡겨지는 광화문의 헌금 역시 '이득과 탐욕을 증가'시키는 것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광화문 집회가 어머니·아버지와 젊은 부부 및 학생들의 순수한 정치집회였다면, '무슨 헌금이든지 저한테 일임된다'는 전광훈 목사가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헌금을 거두는 장면이 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치적 고비마다 보수진영 편에 선 한국 기독교
   
 10월 3일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연설하는 전광훈 목사.
 10월 3일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연설하는 전광훈 목사.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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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집회 성격은 청중 동원의 주체에서도 드러난다. 10월 3일 집회 홍보 포스터에 따르면, 집회를 성사시킨 이들의 직함은 크게 두 부류다. 하나는 무슨 무슨 지역 대표라는 모호한 직함들이고, 또 하나는 무슨 무슨 기독교 단체 대표라는 구체적 직함들이다. 후자의 직함으로는 한국교회연합 대표, 한기총 증경대표, 침례교 대표, 성결교 대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측 대표, 예장 개혁측 대표, 예장 통합측 대표 등이 언급됐다.

이는 광화문 집회의 청중 동원이 주로 목사들에 의해 이뤄졌으며, 참가자 상당수도 신자들임을 보여준다. 이 집회를 '광화문 10월 항쟁'으로 부르건 '광화문 10월 부흥회'로 부르건 간에, 나경원 원내대표 말과 달리 상당 부분 기독교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집회에서는 한국 기독교의 위기를 알려주는 적신호가 더욱 두드러졌다. 그간 한국 기독교 지도부는 정치적 고비마다 보수진영 편에 서는 방법으로 교세 확장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왔다. 일례로, 5·18 광주항쟁이 있었던 1980년에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전두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주저 없이 표시했다.

그해 8월 6일 아침 서울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 기도회' 때, 한경직·조경록 목사를 비롯한 23명은 전두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기꺼이 기도를 올렸다.

이 날짜 <동아일보> 1면 톱기사에 따르면, 정진경 서울신촌성결교회 목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 위기의 시대에 전두환 같은 인물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나님에게 기도했던 것이다.

기독교 극우 집회가 계속될수록
 
 전두환을 위한 기도회를 보도한 1980년 8월 6일 자 <동아일보>
 전두환을 위한 기도회를 보도한 1980년 8월 6일 자 <동아일보>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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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마다 보수진영에 편향되는 모습은 8·15 해방과 한국전쟁(6·25 전쟁) 이후의 냉전질서 확립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한국 기독교는 공산주의 방어를 명분으로 냉전을 확대하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요구에 부응하는 한편, 전쟁을 계기로 사회에 확산된 반공 정서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상당수 교회에서 '반공 교육'에 가까운 설교들이 있었던 것은 기독교가 냉전 상황을 교세 확대에 활용했음을 반영한다.

2011년에 <신종교> 제25집에 실린 '한국전쟁이 신종교 형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양편승 선문대 교수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 개신교의 신념 체계가 사탄론과 종말론, 선민의식과 결합되면서, 반공담론 자체가 구원론의 일부로 발전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한국 기독교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보수진영의 편을 들고 반공이념 확산에 가담하는 방법으로 세계적 규모의 교세 확대를 일궈냈다. 그런데 그런 방식이 앞으로는 교세 확대보다는 교세 위축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근 3년간의 경험이 잘 증명하듯이, 기독교 내 극우파가 참여한 이른바 '태극기 집회'는 촛불 집회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태극기 집회에 아무리 많은 인원이 모여도, 국민 대다수는 촛불 집회 쪽에 정통성을 부여했다. 또 태극기 집회에서 나오는 반공 구호는 더는 국민들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

이는 기독교 극우 집회가 계속될수록 교회에 대한 관심이 저하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교세 위축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10월 항쟁'이라고 부른 최근의 광화문 집회는 한국 기독교가 그런 운명을 걸을 가능성이 없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마르틴 루터가 다시 태어난다면
 
 1878년 독일의 대표적인 역사화가 율리우스 휘브너가 그린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문에 95개 반박문을 붙이는 마르틴 루터'
 1878년 독일의 대표적인 역사화가 율리우스 휘브너가 그린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문에 95개 반박문을 붙이는 마르틴 루터"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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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대에 역행하는 개신교의 '10월 항쟁'은 '돈이 헌금함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이득과 탐욕이 증가한다'고 경고한 마르틴 루터의 '10월 항쟁'과도 대비된다. 그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날은 10월 31일(그레고리역 11월 10일)이다. 루터가 교황과 가톨릭 지도부에 맞서 항쟁한 것은 순수한 종교개혁을 위한 일인 동시에, 의도했든 안 했든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변혁의 흐름을 타는 진보적 선택이었다.

16세기 유럽에서는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주도하는 가운데 봉건영주들이 농노를 부리면서 농업을 하는 양상이 대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 맞서 '절대군주'로 불리는 중앙집권적 군주들과 '부르주아'로 불리는 상공업자들이 그 같은 기성 권위에 도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루터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함으로써 절대군주와 부르주아의 편에 섰다.

이처럼 떠오르는 신흥 세력의 편에 서는 것이었기에, 루터의 개혁은 자기 시대뿐 아니라 후세에도 오랫동안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그것이 종교적 진리를 위한 일이었다는 점뿐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는 세력과 함께하는 진보적인 일이었다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에 반해, 최근의 한국 기독교는 시대의 대세에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 이제 더는 실효성 없는 냉전적 반공 담론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지금 추세로 볼 때 이것이 기독교의 인기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만약 마르틴 루터가 다시 태어난다면, 그도 촛불의 편에 서서 자기 신앙을 재정립하려 할지 모른다. 그도 서초동이나 여의도에서 10월 항쟁을 벌일지 모른다. 하지만 마르틴 루터의 성공 비결을 외면하는 전광훈 목사는 한국 기독교를 교세 위축의 길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 그로 인해 한국 기독교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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