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성인지 감수성' 강조한 대법원
 사건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는 법원에서도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이입되어 폭력은 지속하고 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10월 28일 의정부지법 형사1부(오원찬 부장판사)는 버스에서 레깅스를 입은 여성을 '몰래 촬영'한 남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지난해 피해 여성을 휴대전화로 8초간 몰래 촬영하다 적발되었다.
 
앞서 원심은 촬영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판단, 유죄로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달랐다.
 
재판부는 "레깅스는 운동복을 넘어 일상복으로 활용되고 있다. 피해자 역시 이 같은 옷차림으로 대중교통에 탑승해 이동했다"면서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무죄로 선고한 판단 근거를 보면 촬영된 피해자의 신체 부위가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지와 노출 정도였다. 재판부가 말하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부위란 무엇일까?
 
어디 이런 황당한 판결이 이뿐이겠는가. 10월 20일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술을 마시던 중 여성인 부하직원의 손을 주무르고, 상대의 거부 의사에도 손을 놓지 않은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접촉한 신체 부위는 손으로서 그 자체만으로 성적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로 보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피해자의 다른 신체 부위를 쓰다듬거나 성적 언동을 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않은 점을 보면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적절한 행위'로 평가될 여지는 크지만 피해자가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느꼈을 리 없다고 판단했다.
 
이 두 판결을 보면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피해경험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갖게 했는가'가 공통 관심사였던 것 같다. 마치 재판부가 피해경험자에 이입되어 '이 정도면 성적 수치심은 느끼지 않아'라고 대신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재판부가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피해경험자가 원치 않는 '불법 촬영'과 '신체 접촉'을 당했다는 것이다. 노출의 정도가 아니라 '불법 촬영'을 했다는 그 자체가 문제이고 범죄라는 것이다. 또한 손을 만졌을 뿐이고 다른 신체 부위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이해해줄 문제가 아니라 동의하지 않은 신체적 폭력이 가해진 사건임을 인식해야 한다.

'불법'과 '폭력'의 문제가 여성에게 가해진 '불법 촬영'과 '성폭력'이 될 때 '비대칭적인 성별 관계'가 하나도 고려되지 못한, 이상하고 너그러운 판결을 만나는 것에 지긋지긋함을 느낀다. 사건이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찾는 법원에서도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이입되어 폭력은 지속하고 있다.
 
"성인지감수성이란 젠더에 기반 해서 배제와 차별이 일어나게 되는 사회적·문화적 요인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 권김현영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중에서 
 
법원은 법적 근거에 기반하여 성인지적 관점을 지녀야함에도 이 원칙들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슨 옷을 입었든 간에 '불법 촬영'이 왜 문제인지 또 왜 계속 발생하는지, 손을 강제로 만지는 것이 왜 폭력인지, 피해경험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여부를 차치하고 이 행위 자체가 발생할 수 있었던 구조적 배경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법원은 계속해서 가해자에 편에 서서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갖고 싶다고 그냥 얻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안일한 태도로는 피해경험자를 고립시키고 가해자 중심주의적 사례들을 만들기만 할 뿐 성평등한 지금, 여기를 만들 수 없다.
 
원치 않는 폭력에 놓인 피해경험자가 성적 수치심, 모욕감을 느꼈는지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의적인 해석으로 판단된다면 더는 공감일 수 없다. 위와 같은 법원의 판결은 또 다른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 다른 피해경험자를 만들어내고 결국은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해자에 대한 무죄 판결이 아니다. 투쟁하며 새로이 쓰이고 있는 '오늘'에 함께 나아갈 수 있는, 성폭력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진 사법부의 제대로 된 판결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페미니스트 활동가입니다.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