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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아래'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년 그룹입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한국 사회에 공론화한 '미안해요 베트남' 20년을 맞이하여 <연꽃아래의 진실은 아직 '확인 중'>이라는 기획 연재를 진행합니다. 본 기사는 1편 <살아있는 학살 증거, 대한민국은 '유죄'다(http://omn.kr/1lez0)>와 이어집니다. - 기자말

"아, 몸서리쳐지는 한국군!"

1999년 5월 6일, 한 기사가 한국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 처음 수면 위로 떠 오른 순간이었다. 당시 베트남 호찌민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구수정 상임이사의 기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구수정 상임이사를 다시 만났다.

2년 전, 연꽃아래가 처음 한베평화재단 구수정 상임이사를 인터뷰한 이후 많은 일이 있었다.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민평화법정과 꽝남성 학살 50주기를 맞아 진행된 '만(10000) 일의 전쟁, 만 인의 희생, 만인의 연대, 만만만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그 사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4.3 평화상을 받았고, 대한민국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중심에 구수정 상임이사가 있었다. 

지난 9월 24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 한베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녀는 여전히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 제기에 앞장서고 있었다. 지금은 "미안해요 베트남" 20주년 기념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 중…'의 준비로 바쁘다.

11월 4일부터 21일까지 성동문화회관 소월아트홀에서 진행되는 '확인 중…' 전시회는 실제 피해자들의 유품 및 공식적인 국가 기록을 전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구수정 이사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한 학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가를 알리고 싶다"며 "전쟁의 상처까지도 전시관에 기록해서 역사에 남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쁜 와중에도 얼굴이 밝아 보인다.
▲ 서울 성동구 옥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구수정 이사. 바쁜 와중에도 얼굴이 밝아 보인다.
ⓒ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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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릴 수 없는 상처는 기억해야 한다

- 2년 전 연꽃아래와 인터뷰 이후 시민평화법정이 진행되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원고석에 앉은 두 탄 아주머니의 최후 발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퐁니 마을의 탄아주머니는 '피해자들을 기억해 달라'라고, 하미 마을의 탄아주머니는 '하미 마을에 갇혀있는 비문을 이제는 열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발언이 기억이 남고, 항상 마음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단지 50년 전의 한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꼭 기억해야 하는 역사라고 준엄하게 얘기하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는 복구하거나 복원할 수 없는 상처라 생각해요. 배상을 한다거나 사과를 한다고 해도 죽은 사람들이 살아올 수 없는 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 전시회 이름이 '확인 중…'인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 사회에서 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문제가 처음 공론화된 것이 1999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한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확인해준 적이 없어요. 아직도 우리에게 베트남 학살은 의혹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확인 중'의 문제인 것이죠. 그렇지만, 어떠한 문제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없었던 문제라 말하기는 어렵지요."

이번 아카이빙 기록전 '확인 중…'은 그녀에게 깊은 의미를 가진다. 그녀는 "우리는 그들의 상처와 역사를 보상할 수 없다. 베트남은 복구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상처를 역사에 남겨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새겨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 한국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다.

썩지 못한 주민등록증, 그리움이 어린 빛바랜 그림

'확인 중…'에서는 20년간 베트남 민간인 학살 조사 과정에서 모은 다양한 증거물들이 공개된다. 그중에는 "한국 측에 나와 있는 자료를 모두 확인해봤지만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는 국방부 답변에 완전히 반대되는 베트남 정부의 보고서도 있다.

"베트남은 한국과 다르게 정부 차원에서 한국군의 학살에 대해 공식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 공식 자료들, 보고서 형태의 자료들이 아무에게도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또 이번 전시회에서 공을 들여서 수집한 것은 피해자들의 유품이었다. 구수정 이사는 "피해자들 수십 명에게 연락해야 하나의 수집물이 나올까 말까 했기에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라고 말했다.

"유족들 입장에서는 유일한 유품이었으니까요. 유가족들에게도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한국에 베트남 민간인 학살을 알리고 싶었기에, 그들에게 남겨진 것들을 그녀에게 내주었다. 

- 무덤 이장 과정에서 발견된 증거들도 있다고요.
"학살 당시에는 한국군이 지키고 있어서, 유가족들은 피해자들의 장례를 치르기보다 가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땅을 깊게 팔 시간도 없이 대충 파서, 거적데기에 둘둘 말거나 옷 입은 모습 그대로 집단 가매장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살이 끝나고 30년 정도가 흘러서야 가매장한 무덤을 다시 무덤으로 이장할 수 있었지요.

학살 이후 3~40년 이후 가매장한 무덤을 다시 파냈을 때 유골은 이미 다 썩어서 뼈 몇 덩이만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주민등록증이 유골 위에 놓여있는 경우도 있었지요. 뼈와 살이 다 사라진 후에 어머니가 주머니에 넣어놨던 주민등록증만 남은 거죠.

어떤 분은 가족 여섯 명이 있던 가매장된 무덤을 이장하려고 파보니, 한국군의 탄알이 5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유족분이 그 탄알을 한국군 학살의 증거로 보관해 오셨던 거예요. '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 증거가 이 학살의 증거를 밝히는 데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를 해주면서 내어주셨죠.

- 특별히 마음 아픈 수집물이 있다면요.
"응 우옌 니엠이라는 할아버지가 빈호아 학살에서 아내를 잃으셨는데, 매우 사랑하셨나봐요. 이 할아버지가 잡기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 안에 당시에 쓴 시와 그림, 글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 할아버지가 얼마나 할머니를 사랑했는지 나와 있어요. 할아버지는 부인의 죽음 이후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하셨어요.

당신의 부인의 죽음이 안타깝고, 다시 볼 수 없어서 너무나 그리웠던 할아버지가 재단을 만들었는데, 재단에 올릴 부인의 사진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할아버지가 직접 초상화를 그렸어요. 초상화에서는 한자로 맨 위에 현처라고 쓰여 있어요. 어진 아내. 초상화를 직접 할아버지가 그리시고, 맨 마지막에는 남조선 학살 병오년 몇 월 며칠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 위에 현처라고 쓰신 마음과 맨 마지막에 남조선 학살이라고 쓴 할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사진 한 장 없어서 직접 그려서 올려놓은 마음이 어떨까, 할아버지는 매일 이 재단에 기도를 하며 어떤 기도를 했을까... 그 일기장과 그림. 할아버지의 비통함, 그 슬픔이 너무 잘 느껴지는 유품이었어요."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중··· 의 포스터.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기록전: 확인중··· 의 포스터.
ⓒ 한베평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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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없는 역사 문제... 기록은 유일한 해결책

- 전시회 구성에서 우려되는 것이 있었다면요?
"대부분의 문헌이 베트남어로 되어있어요. 이런 문헌들 아래 자료 해제를 넣겠지만, 사람들이 문헌을 접하면서 얼마나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해석하고 설명하기보다는, 하나의 학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필요한가, 그것을 펼쳐 보여주는 방식으로 문헌을 보여주려고 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베트남 공식 자료라고 산처럼 쌓아놓는다 해도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않을 것 같아서... 베트남어 자료이지만 펼쳐 보이는 것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수집해서 여기까지 왔는가를 보여주려고 합니다."

- 20년 뒤 한베평화재단의 모습은 어떨 것 같나요.
"
베트남 전쟁 기록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년보다 더 빠르면 좋겠죠. 5년에서 10년 이내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 삽이 지금의 기록전일 것이라고 보고요. 베트남전쟁 기록관을 만들어서 잊지 않고 전쟁의 상처까지 전시관에 기록해서 역사에 남기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이번 아카이빙 기록전이 첫 시작이죠. 아마 10년 안에 베트남 전쟁 기록관을 건립해서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 미래세대에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최선의 일이 될 것입니다."

구수정 이사는 "역사 문제에는 해결이 없다"고 말했다. 50년이 지나도, 100년이 지나도, 역사 문제에 완벽한 해결은 없을 것이라고. 섣부른 해결과 섣부른 화해를 논하기보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구수정 이사가 바라는 점일지도 모른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섣부른 화해와 해결을 논하는 것은 피해자의 삶에 와닿지 않았다. 20년 세월 동안 구수정 이사는 가해자의 시선을 내려놓고 피해자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녀는 과거사를 기록하는 일이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태그:#연꽃아래, #베트남 학살, #미안해요 베트남, #구수정, #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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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의 시각에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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