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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지난봄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무시하려 했으나 뒷번호가 낯설지 않아서 받아보니 예전에 같은 직장에 다니던 후배(남, 50세)였다. 그는 불쑥 전화해 미안하다면서도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사람들은 영업 부탁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내 목소리가 주춤했나 보다.

후배는 "불편한 부탁이 아니에요"라고 운을 떼더니 몇 년 전 나와 내 친구 식당에 갔던 기억을 꺼냈다. 친구(남, 54세)는 강남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규모도 제법 컸고 무척 성황을 이룬 식당이었다. 그 친구가 강남뿐 아니라 서울 근교 도시에서도 식당 여러 개를 운영했다.
 
"그 친구분이 프랜차이즈 본사 차린다고 하지 않았나요?"


친구는 식당 여럿을 성공시키곤 자기만의 프랜차이즈를 열고 싶어 했다. 메뉴와 입지 선정은 물론 식자재 조달부터 마케팅까지 자신 있어 했다. 후배는 식당을 열 계획인데 그 친구가 생각나서 연락한 거였다. 그는 식당 운영 경험이 많은 멘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말 나온 김에 친구 식당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 식당은 다른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난해 송년회 모임도 그곳에서 했는데 불과 몇 달 만에 간판은 물론 주인도 바뀐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동창들로부터 다양한 소문을 들었다. 식당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거나 부동산 임대 연장이 안 됐다는, 혹은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이 실패했다는. 그 어떤 소문이 진실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2018년에 프랜차이즈 식당 2만3천여개가 창업했고, 1만4천여개가 폐업했다.
▲ 자영업 창업, 달아오를 것이냐 식을 것이냐 2018년에 프랜차이즈 식당 2만3천여개가 창업했고, 1만4천여개가 폐업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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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후배는 지난 초여름 식당을 열었다. 개업 초기에 가본 식당은 빈자리 없이 활기가 넘쳤다. 식당 사장이 된 후배도 흥분된 듯 얼굴이 상기가 됐다.

하지만 얼마 전에 들른 후배 식당은 분위기가 싹 달라져 있었다. 목요일 저녁, 한창 술손님이 많을 시간인데도 빈자리가 많았다. 홀에는 후배 부인 혼자 있었고 주방에선 후배가 조리하고 있었다. 주방장은 물론 다른 직원도 보이질 않았다.

"개업 초 몇 주간 손님이 반짝하더니 점점 줄어드네요."

매출이 줄어드니 직원부터 줄일 수밖에 없었다고. 몇 달 동안 휴일도 없이 일한 후배 부부는 표정이 없어 보였다. 후배는 약 20년을 크고 작은 회사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사에서 눈치가 보였다고 한다. 다른 회사로 옮기려고 알아보았지만 자리도 없었고. 식당은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지였다.

이왕 자영업을 할 거라면

"음식이 맛있고 서비스만 잘 하면 되는 줄 아는데 식당 운영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요. 외식업 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주변 경쟁자들 흐름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하죠."

중견 프랜차이즈 회사 임원인 A(남, 49세)의 말이다. 그는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유명 보쌈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도시락 체인, 분식업 체인을 거쳐 지금은 회전 초밥 프랜차이즈 회사에서 일한다. 20년 경력의 프랜차이즈 전문가답게 대학에서 강의도 한다.

"다들 자신감으로 시작해요. 전국에 80만 개가 넘는 식당이 있는데 그들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요. 입지와 메뉴는 물론 그 규모에 걸맞게 경영과 마케팅도 뒷받침돼야 하죠. 프랜차이즈 본사는 개인 자영업자가 갖지 못하는 그런 시스템을 제공합니다."

A는 주변에서 무모하게 식당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고 했다. 특히 다른 선택지가 없을 때 마지막 방편으로 식당을 선택하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다고. 이런 경우는 자금에도 한계가 있어서 영세하게 (식당이 들어서면 안 되는 곳에서) 시작하거나 이곳저곳에서 (나중에 감당하지도 못할 정도로) 돈을 빌리게 된다고 한다.

"식당 운영은 흐름이에요. 한 달을 예로 들어 보죠. 첫 주 매출로는 임대료를, 둘째 주에는 인건비를, 셋째 주에는 재료비를 벌어야 하죠. 그렇게 감당해야 마지막 주 매출이 식당 사장님들이 가져가는 수입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저기서 끌어들인 돈까지 갚아야 한다면요? 나중에는 임대료 내려고, 인건비 주려고, 그리고 세금과 이자 내려고 장사하는 모양이 되는 거죠."

준비도 없이 깊게 알아보지도 않고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기고 변수는 악순환으로 다달이 쌓여간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A는 식당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프랜차이즈부터 경험해보라 권한다고 했다. 자기 가게를 직접 여는 것보다 초기비용이 많이 들기는 하지만 다양한 변수와 위험을 피해갈 수 있는 비용으로 생각하라며.
 
 모든 프랜차이즈 사업자 현황을 볼 수 있는 사이트다.
▲ 공정거래위원회  모든 프랜차이즈 사업자 현황을 볼 수 있는 사이트다.
ⓒ 공정거래위원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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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나쁜 프랜차이즈를 피하는 방법도 알려줬다.

"먼저 본사 직영점이 많은 프랜차이즈를 알아보세요. 그 직영점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도 관찰하고요."

A는 직영점 없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많다고 했다. 직영점도 없이 가맹점 확장만 신경 쓰는 곳이라면 조금 위험하다고. 그런 곳은 무리한 마케팅 비용이나 인테리어 변경 등을 요구하면서 본사 수익만 신경 쓰는 곳으로 보면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 사이트의 '가맹사업홈페이지' 메뉴를 클릭해 '정보공개서'를 살펴보라고 강조했다. 허가된 모든 프랜차이즈 본사의 3년 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중 매출 추이와 가맹점 증감 현황, 그리고 직영점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보라고 했다. 특히 직영점 비중이 어떻게 되는지, 가맹 점포가 늘어나는 추세인지 줄어드는 추세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직영점이 없거나 가맹점이 줄어드는 추세라면 그 프랜차이즈는 위험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A가 말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2019년 10월 28일 오전 9시 현재, 대한민국에는 6천 개 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있다. 그중 외식업체는 4600여 개다.

프랜차이즈 외식업종 현황도 들여다보았다. 2018년 말 기준 전체 브랜드 수는 4560개, 가맹점 수는 11만6361개, 직영점 수는 6천 개였다. 신규 가맹점 2만3239개가 새로 열었고 1만4457개가 문을 닫았다.
 
2018년에 치킨 프랜차이즈 3천여개가 창업했고, 3천여개가 폐업했다.
▲ 치킨 매장 2018년에 치킨 프랜차이즈 3천여개가 창업했고, 3천여개가 폐업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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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치킨 가게는 3280개가 새로 열었고 3100개가 폐업을 했다. 2018년에는 새로 여는 만큼 문 닫는 곳이 많았다. 지난해에만 그랬을까. 굳이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식당은 물론 자영업을 한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현실

"여유 자금 없이 시작하면 살아남기 힘든 게 식당이고 자영업이에요."

지난 20년간 외식업을 들여다본 A의 말을 종합하면 자영업도 규모의 경제라는 거였다. 식당뿐 아니라 규모 작게 밑천 없이 시작하는 장사는 성공하지 못할 확률이 그만큼 높다고 했다.

문제는 젊건 나이 들었건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현실이다.

정부는 사실상 청년 취업률 통계를 위해, 중장년 경제활동인구 통계를 위해서 창업을 권장한다. 온갖 (원래 있었지만 이름만 바꾼) 지원정책이 나오고 창업은 (벤처 창업을 기대하지만) 자영업 창업으로 집중된다. 그러나 그 모든 유인책은 나중에 (갚아야 하는) 화살이 되어 자영업자에게로 날아오고야 만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는 세상이 주인공에게 술을 마시게 했는데 지금 세상은 사람들에게 자영업을 권하는 모습이다. 눈앞의 통계에만 매몰되지 않고 실제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내 인생의 하프타임, #자영업 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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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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