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태극기에 쌓인 수많은 주검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에서 기릴만한 사람이라면 저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인가요? 태극기에 쌓인 수많은 주검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에서 기릴만한 사람이라면 저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인가요?
▲ 태극기에 쌓인 수많은 주검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에서 기릴만한 사람이라면 저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인가요? 태극기에 쌓인 수많은 주검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합천에서 기릴만한 사람이라면 저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한 사람이라는 말인가요?
ⓒ 5.18기념관 자료집에서

관련사진보기

말하지 말지어다 이 투쟁이 전혀 무익하다고
고역과 상처가 허사라고
적은 기진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다고
그리고 모든 것은 과거 그대로 계속 된다고.

만일 희망이 속기를 잘한다면 공포는 속이기를 잘할지 모른다
아마도 저기 연기 속에 숨어서
그대 동지들은 지금도 달아나는 이를 추적한다
그리고 오직 그대를 위해 터를 잡을지도 모른다.


영국시인 A. H. 플로우의 「이 투쟁이 무익하다 하지 말라」의 앞부분이다.
 
 광주 양동 시장 상인들이 시민군들을 위한 밥을 짓고 있다.양동시장은 5·18 민중항쟁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어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광주 양동 시장 상인들이 시민군들을 위한 밥을 짓고 있다.양동시장은 5·18 민중항쟁 사적 제19호로 지정되어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 5.18 기념재단

관련사진보기

 
광주 시민들의 투쟁이 무익한 투쟁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시내 도처에서 시산형해를 이루고, 중앙의 학살 지령자들과 현지의 하수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차분하게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5월 23일, 여섯째 날은 '해방 연력(年歷)'으로 치면 해방 2일째가 된다. 첫날에 비해 이날은 여러 면에서 질서가 잡혀가고 있었다. 역시 가장 큰 과제는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문제였다.

인구 80만 명의 작은 도시에서 갑자기 많은 부상자(대부분 중상자)가 밀려들다보니 치료할 의사와 의약품, 혈액이 크게 부족했다. 외지의 지원은 철저히 통제된 관계로 기대하기 어려웠다.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시민들과 의료진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시민들과 의료진
ⓒ 5.18 기념재단

관련사진보기

 
이날에도 시민들은 활기차게 움직였다.

"이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새벽 6시부터 남녀고교생 700여 명(여학생 50명)은 시내 전역의 청소작업에 앞장섰다. 이에 대해 수많은 시민들이 호응, 청소를 함께 했으며 대다수의 상가들도 문을 열기 시작했다." (주석 1)

이 시기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본다.

병원에서는 또 수백 명의 중상환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병원 인력과 의약품들의 부족으로 우선 급한 환자부터 대강대강 살펴보는 실정이었습니다. 특히 피가 부족하여 수술을 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던 관계로 헌혈자들이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비록 계엄군이 광주 외곽을 포위, 광주를 봉쇄하고 있었지만 무차별한 살상극을 감행한 계엄군을 몰아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였습니다. M1과 칼빈소총으로 무장한 시민군이 지나가면, 연도에 서 있던 시민들은 "시민군이야말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군대"로 생각하며, 박수갈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은 해방광주를 만끽했으며, 누구 하나 욕심을 부리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상부상조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음료수나 빵을 사서 혹은 김밥 등을 만들어 시민군의 차량에 계속 실어 주었습니다.

도청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궐기대회와 보고대회 등을 개최하였고, 23일부터는 매일 오후 2시 도청광장에서 '민주수호범시민궐기대회'를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계엄군의 만행을 성토하는 내용이 많았으나, 차츰 새질서 수립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였고, 여러 가지의 수습책이 제시되기도 하였습니다. 궐기대회를 끝낸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시가행진에 들어갔고, 또 주변을 청소하는 일도 잊지 않았습니다. (주석 2)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시민군들과 함께 나누었던 주먹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시민군들과 함께 나누었던 주먹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 5.18 기념재단

관련사진보기

 
이 시기 비화와 미담도 많았다.

나는 후배들과 함께 적십자병원으로 가서 총지휘관으로 활동하면서 병원 내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한 상황체크를 했다. 적십자병원은 부상자로 붐벼 입원실이 부족했다. 환자들은 신문이나 옷을 깔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우리는 간호원의 일을 도와주기로 하고 적십자병원에 있는 사망자의 인상착의, 옷 등을 기록하여 병원 벽에 붙였다.

또 사진이 접수되면 확인하여 벽에 부착했다. 영안실은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해 얼음주머니를 갖다놓았다. 그렇다고 썩는 냄새가 가신 것은 아니었다. 영안실에 있던 시체 중에는 머리 부분이 없는 시체도 있었다. (구술 : 정준) (주석 3)


시민들은 사거리마다 급조한 모금함에 〈부상자들을 위한 사랑의 모금함〉이라는 글씨를 써 붙이고 성금을 모으고 있었는데 비교적 좋은 반응을 보였다. 시민들은 1백 원짜리 동전, 1천 원짜리 지폐 등을 넣어주었다.

이날 오후에는 도청 뒤 학동 로터리에서 모금을 했던 한 시민이 "조금 전 8만3천2백80원을 모아 도청 시위지휘부에 전달했다."며 빈통을 들고 다시 모금하는 모습도 보였다. (주석 4)

젊은 여성 한명이 하얀 양말 수십 켤레를 가지고 와서 시신의 맨발에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신겨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여자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 하지 않았으나 알려진 바로는 술집 접대부였다고 한다. 그녀는 입관할 때 물을 떠다가 직접 시신의 얼굴들을 정성스레 씻어주기도 했다. (주석 5)


주석
1> 윤재걸, 앞의 책, 117쪽.
2> 「5ㆍ18 광주민중항쟁의 전개과정(슬라이드 대본)」, 『역사와 현장(1)』, 92~93쪽, 남풍, 1990.
3> 『광주5월항쟁전집』, 85쪽. 
4> 앞의 책, 87쪽.
5> 황석영 외, 앞의 책, 307~30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이 기자의 최신기사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