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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확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국 모든 대학교의 요구사항이었다. 5.18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직전 대학교수가 앞서고 대학생들이 뒤따르는 평화시위 모습이다
 "신현확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국 모든 대학교의 요구사항이었다. 5.18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직전 대학교수가 앞서고 대학생들이 뒤따르는 평화시위 모습이다
ⓒ 5.18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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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세력에 의해 국무총리(서리)가 된 박충훈은 22일 저녁 9시 TV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담화문을 발표했다.

광주에서 계엄군의 만행과 시민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시민들을 불순분자로 매도하고 협박하는, 신군부의 꼭두각시 놀음이었다. 그나마 은행 약탈 등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광주시내는 군 병력도 경찰도 없는 치안부재 상태다. 일부 외지에서 침투한 불순분자들이 관공서를 습격ㆍ방화하고, 무기를 탈취하여 군인들에게 발포하여 희생자가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은 정부의 명령 때문에 발포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사태는 시청 직원이 사무를 보고 전기 수도가 공급되며 은행 약탈 등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호전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계엄군이 양손에 진압봉을 받쳐들고 시위군중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계엄군이 양손에 진압봉을 받쳐들고 시위군중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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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을 내세워 허당한 담화문을 발표케 하고, 전두환은 막후에서 엄청난 음모를 진행하고 있었다.

22일 신라호텔에 중앙언론사 경영진을 불러 "군이 광주외곽을 포위하고 고립화함으로써 목포 등지에서 유입 인원을 차단하고 있고 광주비행장에 무전 연락실을 설치하여 현지 상황을 수시 보고받고 있다"고 설명하고, 협박성 발언을 늘어 놓았다.

그리고 나서 "광주 시내 철물상회가 주요 약탈대상이 되고 있다"면서 "폭도들이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합세를 강요하고 통반장을 협박" 한다거나 혹은 "있는 놈 때려잡자"는 구호까지 등장했다는 등 광주 현지 사정과는 질적으로 동떨어진 '유언비어'를 언급했다.

전두환은 한걸음 더 나아가 "공수단 복장 괴한이 10대 트럭에 분승하여 무등산으로 올라가며 '드디어 호남군인들 일어나 경상도 군인 죽이려 궐기했다'고 선동하면서 이들이 해안을 통해 월북 기도할 가능성이 있어 해군이 해상봉쇄 중" 이라고 말했다.

특히 "무장폭도가 광주교도소를 공격 중"이라거나 "무전 감청 결과 동혁당 지령으로 '교도소 폭파시켜라'는 내용이 계속 타전"되고 있다며 왜곡된 정보를 언론기관장들에게 흘렸다. 또한 "김대중 깡패 조직 4개파가 현지 데모에 합세"하여 활동 중이라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군이 시가전 각오한 일대 작전을 준비 중"인데 "작전할 경우 2시간 내 진압할 자신 있다. 군은 결심한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면서 '24일'을 기해 광주 시가전을 각오하고 대작전을 펴겠다며 유혈진압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전두환은 언론사 간부, 경영진에게 "(광주사태에 임용자) 동조 내지 묵인하는 행동을 한다면 일찍이 보지 못할 조치를 취할 각오가 돼 있다"고 협박했다. (주석 11)

전두환이 오만방자하게 다시 유혈사태를 공언하면서 대규모 병력을 광주에 투입하는 전략을 세우는 데는 미국의 책임이 컸다. 22일 낮(워싱턴 시간) 국무성의 호딩카터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한국의 남쪽에 위치한 광주에서 발생한 민간인 투쟁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태와 관련되는 모든 당사자에게 최대한의 자제와 대화를 통해서 평화적인 사태수습 방안을 모색하도록 촉구하는 바이다. 불안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가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태로운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

평온이 되찾아지면 우리는 모든 당사자들이 최규하 대통령이 밝힌대로 정치발전 일정을 다시 시작하는 길을 찾도록 촉구할 것이다. 미국정부는 현재의 한국사태를 이용하려는 어떠한 외부의 기도에 대해서도 미국은 한ㆍ미 상호 방위조약 의무에 의거, 강력히 대처할 것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이같은 성명을 발표한 몇 시간 후 미국은 백악관에서 고위정책조정회의(PRC)를 열어 한국사태에 대한 종합대책을 검토했다. 이 회의는 머스키 국무장관 주재 아래, 브레진스키 대통령 안보담당 특별보좌관, 브라운국방장관, 터어CIA 국장, 훌부르크 국무성태평양 및 동남아시아 담당차관보, '아마코스트' 국무성 아시아ㆍ태평양 담당부차관보, 플래트 국방성 아시아ㆍ태평양 담당부찬관보 등 한반도 정책결정에 관련 있는 미행정부의 주요 관리들이 참석, 약 1시간 15분 동안 계속되었다. (주석 12)


미국 관리들은 회의 결과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필리핀 수빅만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코넬시호와 E3A조기경보통제기 2대를 한국해역으로 급파했다.
 
위컴  1980년대 초 한국 주둔 미8군 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
▲ 위컴  1980년대 초 한국 주둔 미8군 사령관이었던 존 위컴 대장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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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같은 날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 존 워컴대장은 글라이스틴대사와 합의하에 전두환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신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 병력의 일부를 광주지역으로 이동시키는 데 동의했다. 제20사단 소속 4개연대였다.

미국이 이때에만이라도 군병력 이동을 막았다면 도청의 참혹한 살육전은 제지되었을 것이다.

20사단 병력 이동 승인과 관련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은 뒷날 「미국 이해의 특별한 표적」이란 논문에서 아전인수식의 기술을 하고 있다.

한국 군부는 광주지역의 통치권 회복을 위한 긴급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20보병사단이 서울지역에서 광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을 미군사령부에 요청했다. 20사단은 서울의 계엄군이었고, 불필요한 사상자를 내지 않도록 특별히 교육받은 부대였기 때문에 20사단의 투입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미군사령관은 나와 함께 20사단을 점검한 후 이 요청에 동의하였으며 나는 우리의 결정을 워싱턴에 즉각 보고했다. 우리가 20사단의 이동을 허락한 것은 반대할 구실이 없어서였다기보다는 협상이 실패할 경우, 광주일원의 통치권을 회복할 필요성을 인정하였기 때문이고, 또한 그 경우 특전단이 재투입되는 것을 미리 배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석 13)


주석
11> 「전두환 CIA부장 서리의 발언」, 5ㆍ18 민주유공자유족회 엮음, 『5ㆍ18성명서』1권, 5ㆍ18기념재단, 여기서는 황석영 외, 앞의 책, 298~300쪽, 재인용.
12> 이상우, 『군부와 광주와 반미』, 94쪽, 청사, 1988.
13> 앞의 책, 103쪽, 재인용.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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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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