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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시민군들과 함께 나누었던 주먹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양동시장과 대인시장의 상인들이 시민군들과 함께 나누었던 주먹밥은 단순한 밥이 아니었다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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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대책위원회나 시민들은 더 이상의 유혈사태를 막고자 노력했지만 신군부의 속셈은 달랐다.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면서 번번히 독재자의 손을 들어주는 미국은 신뢰할 수 없는 동맹국이었다.

"존 위컴 주한연합사령관은 그의 작전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을 군중 진압에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한국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 또한 오끼나와에 있는 조기경보기와 필리핀 수빅 만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긴급 출동시키기로 결정하는 등 광주항쟁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주석 4)

역사상의 많은 '해방구'는 불안했다. 더러 따옴표를 제거하는 진정한 해방이 되기도 했지만, 곧 반동(기득권) 세력에 밀려 혹독한 희생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존 위컴의 행위를 알 길이 없는 광주 시민들은 우선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불안한 해방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80년 5월 당시 시민군의 모습
 80년 5월 당시 시민군의 모습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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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민들은 항쟁의 지휘체계 구축과 자체방어에 힘을 모았다.

그동안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이재의(24세), 안길정(23세) 등이 오전부터 도청에 들어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옆 사무실에서 진행되는 시민수습대책위원회 구성을 위한 회합을 지켜보며 별도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섰다. 우선 이들은 도청 상황실 전화로 외곽지역 방어를 담당한 시민군들과의 연락체계를 확립하였다.

대학생 2명을 순찰차량에 배치하여 각 외곽지역을 돌면서, 계엄군의 움직임에 변화가 있을 때에는 그 지역 주민들이 즉각 도청 상황실에 알려주도록 전화번호와 연락방법을 일러주고 매 시간마다 연락을 취할 수 있게 했다.

오전 중에 순찰차량이 한 바퀴 돌고 온 뒤부터 각 지역에서 상황보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도청 상황실에서도 지역방어의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석 5)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시민들과 의료진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시민들과 의료진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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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질서가 유지되었다. 가끔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렸으나 시민들의 오발탄으로 밝혀졌다. 도청 수습위원회에 총기를 반납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내의 평온 상태와는 달리 각급 병원에는 총상과 칼에 찔린 부상자들이 넘쳐나고 의사와 의료품 부족으로 제대로 치료가 안 되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곳곳에서 시신을 확인한 유족들의 통곡소리가 메아리쳤다. 광주는 외곽에 포진한 계엄군에 의해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었다. 그렇지만 지난 며칠 사이에 시민군들에 의해 전남지역 여러 곳에서 무기고가 털리고 그 과정에서 불상사가 생겼다. 전남 일원에서 신군부 반란군을 쫓아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지방의 가족은 자식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광주로 오다가 계엄군에 참변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생전의 윤상원 열사와 영혼의 부부가 된 박기순 열사
 생전의 윤상원 열사와 영혼의 부부가 된 박기순 열사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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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여전히 '광주의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민들의 손으로 몇 종류의 유인물이 발간되어 소식을 알렸다. 특히 『투사회보』는 지속적으로 발행되었다.

'대학의 소리'팀과 '들불야학'팀은 5월 20일 광천동의 들불야학에서 합류하여 윤상원의 지도를 받아 『투사회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합심해서 발간키로 했다. 노동자(야학생)와 대학생(강학담당)들로 구성된 『투사회보』팀 10명은 차량임무규정, 투쟁대상을 정한 구호, 보급문제, 시체운반 등에 관한 사항을 집중적으로 담기로 했다.

5월 21일 첫 호가 나온 『투사회보』는 5월 25일 8호까지 발간하다 그 다음 횟수는 계속 9호로 사용하면서 제목을 『민주시민회보』로 변경, 발간하였으나 마지막 호인 10호는 미처 배포되기 전 계엄군에 의해 압수되었다고 한다. 당시 제작에 참여한 주요 인물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문안작성조 - 윤상원(27ㆍ전대 정외과 졸, 양동신협직원 광천동 '들불'야학 창립ㆍ본명 윤재원), 전용호(22ㆍ전대 경제과 3년)
▲ 필경조 - 박용준(20ㆍYWCA 신협이사ㆍ사망)
▲ 등사조 - 김성섭(?ㆍ'들불' 야학생), 나명관, 윤순호 등.
▲ 종이보급조 - 김경국(20ㆍ전대 중문과 2년, 강학)
▲ 배포조 - 나명관(18ㆍ공원 야학생), 윤순호(22ㆍ공원 야학생) 등. (주석 6)

 
 5.18 항쟁 기간중 유일하게 진실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
 5.18 항쟁 기간중 유일하게 진실한 언론 역할을 했던 <투사회보>
ⓒ 5.18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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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자로 배포된 『투사회보』 제2호는 다음과 같다.

민주투사들이여! 더욱 힘을 내자!!
승리의 날은 오고야 만다.

광주 시민의 민주 봉기의 함성은 전국적으로 메아리쳐 각지에서 민주의 성전에 동참해 오고 있다. 21일에는 장성에서 화순에서 나주에서 다수의 차량과 무기가 반입되었다. 전주에서는 도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제 승리의 날은 머지않았다. 승리의 날까지 전시민이 단결하여 싸우자! 이기자! 민주의 만세를 부르자!

 ㆍKBS 방송국을 접수하여 방송을 통해 각지에 이 참상을 알리자.
 ㆍ외곽도로 차단(서울 목포 화순 송정 남평 기타)
 ㆍ차량임무분담을 표시하자(지휘부, 연락부, 보급, 구급, 기타)
 ㆍ인근 지역에 나가 투사를 규합하자.
 ㆍ전시민은 지역방어와 보급품을 제공하자.

- 21일 소식 -
   1. 오후 6시경 공수부대 금남로에서 조대로 이동
   2. 오후 7시경 공원 주위 시민들이 무장완료, 중심지역 무장 조편성 근무 완료
   3. 오후 8시경 무등경기장에서 무기 지역별 공급과 조편성 실시완료
   4. 오후 23시 공수부대 180명 정도 매곡동 부근(31사단)에 투입. (주석 7)


주석
4> 『5월광주항쟁전집』, 77쪽.
5> 김영택, 앞의 책과 같음.
6> 윤재걸, 앞의 책, 117쪽.
7> 『광주5월민중항쟁자료총서(2)』, 3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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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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