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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구 둔산동 녹원아파트 경비실 11곳 중 5곳에 전기 300W를 생산하는 태양광발전패널이 설치돼 있다.
 서구 둔산동 녹원아파트 경비실 11곳 중 5곳에 전기 300W를 생산하는 태양광발전패널이 설치돼 있다.
ⓒ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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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폭염이 이어지자 연일 뉴스에서는 '살인적인 더위를 조심하라'는 일기예보를 띄워댔다. '살인 더위.' 엄밀히 따지면 모두에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폭염은 사회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이들의 삶에 위협을 가한다.

폭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일하고 있던 이들 중에는 아파트 경비원들 또한 있었다. 더 정확히는 '더위' 그리고 '무관심' 속 열악한 근무 환경이었다. 연일 최고 기온은 높아지지만 경비원들은 선풍기 한 대로 폭염에 대처해야 했다.    

폭염을 당장 막아서지는 못하더라도 무관심의 굴레를 끊어내자고 두 팔 걷고 나선 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서구 둔산동 녹원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다. 주민이 한목소리로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해 지난 7월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됐다. 그뿐만 아니다. 경비원이 주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전기세 걱정 없이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경비실 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것. 이 과정에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 의제를 수면 위로 띄우고, 주민의 의견을 모으는 역할을 했던 녹원아파트 주민 황유미(38)씨를 지난 18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녹원아파트 주민 황유미 씨.
 녹원아파트 주민 황유미 씨.
ⓒ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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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에어컨'에 담긴 우여곡절


서구 둔산동 녹원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된 건 지난 7월 중순. 경비실 11곳 중 다섯 군데에는 300W 전기를 생산하는 태양광발전패널도 설치돼 있다. 당시 주민이 직접 나서 경비실에 '착한 에어컨'을 설치했다는 소식은 많은 언론에도 뜨거운 '기삿거리'였다. "경비원도 우리의 가족"으로 여기는 주민의 착한 마음을 부각하며 '미담' 다루듯 나오는 기사도 있었지만,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본질은 아니었다.

'경비실 에어컨 설치의 건'을 주민들이 요구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더운 어느 날, 입주자 대표회의 공고문에 '경비실 에어컨 설치의 건'을 논의한다는 내용이 붙었다. 평소 그 의제에 관심 갖던 주민들은 입주자대표회의에 참가했고,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결과는 '부결'이었다.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겠다는 아파트의 입장을 주민들은 통보받았다. 입주자대표가 아닌 일반 주민은 회의에 '참관'하여 말할 권리만 있을 뿐, 그 의제를 '결정'하는 권리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 찜통 경비실에서 무더위를 무작정 견디라는 얘기인 거냐 싶었죠.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유미씨는 이렇게 말했다. 유미씨를 비롯한 주민 몇 명이 관리사무소로 찾아가 이의제기를 했다. 입주자 대표에게 모든 권한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일반 주민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서명 운동'이었다.
 
"회의 안건을 재상정하기 위해서는 주민 10% 이상의 동의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입주자대표회의까지는 일주일도 안 남았던 상태였어요. 저를 비롯한 엄마들이 돌아다니면서 서명을 받으러도 다니고, 남편은 현수막 펼치고 테이블 깔아서 서명을 받기도 했어요."

 
 서명운동 당시 모습.
 서명운동 당시 모습.
ⓒ 황유미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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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라고 해야 할까, '당연히'라고 해야 할까. 주민의 호응은 높았다. 이틀 만에 150명이 넘는 주민이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서명했다. 전체 주민 수가 1200명, 10%를 충분히 넘는 수였다. 동의 서명은 제출됐고 입주자대표회의는 다시 열렸다.

다시 열린 입주자대표회의에서는 '우리 집도 에어컨이 없는데 무슨 경비실에 에어컨이냐' 하는 목소리도 있었고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다, 당장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두 이견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대신 회의에선 '새로운 의결 절차'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제안이었다.

"오히려 좋았어요. 설치되든 안 되든 간에, 일단은 소수의 입주자대표가 아니라 일반 주민이 어떤 사안을 결정하는 경험이 생기는 거잖아요. 물론 결정에 대한 책임도 주민이 지는 거고요."

이틀 동안 주민투표가 열렸다. 결과는 찬성 98%. 당시 엘리베이터 공사 기간이어서 경비실로 직접 가서 투표용지를 넣어야 하는 번거로운 상황이었지만, 주민 참여도도 높았다. 약 1200명 중 600명 이상이 참여했다. 결과와는 별개로 절반이 넘는 주민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표'를 행사했다.

뜨거운 관심 속 남겨진 '과제'

녹원아파트의 소식은 SNS를 시작으로 지역 언론에 일파만파 전해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고민은 남아 있었다.

"에어컨 설치 서명을 받을 때 주위 아파트를 돈 적이 있었어요. 그때 들은 얘기가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어도 경비원분들이 주민 눈치가 보여서 잘 못 튼다는 거였어요. 전기료가 많이 나올까 봐요. 에어컨 설치가 다가 아니었던 거죠."
 

어떻게 하면 에어컨을 부담 갖지 않고 사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정보가 경비실에 태양광 패널 설치하는 것을 지원하는 서울시의 정책이었다.
 
 서울시 아파트 경비실 태양광패널 설치 지원 정책 포스터
 서울시 아파트 경비실 태양광패널 설치 지원 정책 포스터
ⓒ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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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대전충남녹색연합과 함께 서구에서 태양광 패널 설치를 지원받는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그러나 '예산이 책정되어 있지 않아 어렵다'는 결론이 돌아왔다. 그때 고안해낸 방법이 시민들로부터 펀딩을 받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지역시민단체, 지역 시민분들의 도움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게 됐지만, 지자체에 대한 의구심은 남아 있어요. 예산 집행 절차상 한계도 있겠지만 지자체가 실행 의지가 정말 있는 것일까 하고요. 그전부터 태양광 패널 설치에 대해 홍보하는 방식만 보더라도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아파트 복도에 붙어있는 안내문 '종이 한 장'이었으니까요."

나아가 그는 이번 사례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대전시에서 아파트 경비실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시범사업을 해보겠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게 꼭 '실현'되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아파트 경비원분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일하셔야 하니까요."
   
이번 경험으로 유미씨의 눈은 더욱 밝아진 듯했다.

"에어컨과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서 들었던 얘기가 하나 있어요. 나라 전력수급의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전기를 끊는 곳이 어딘가 생각해보면, 아파트 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많은 세대의 전력 사용을 한꺼번에 끊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기후 위기'가 더 체감됐어요."

더위를 견디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고 사용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에어컨을 가동하기 위한 전력을 '어떤 방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더 지속 가능한 방식인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경비실 내부에 있는 전력 계량기
 경비실 내부에 있는 전력 계량기
ⓒ 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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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경비실에 태양광패널이 설치돼 있지만 전력 계량기는 경비실 안에 놓여 있어요. 태양광패널로 전기가 얼마나 생산되는지 주민들이 쉽게 접하진 못하고 있다는 말이죠. 에어컨 설치가 전부가 아니었듯이, 태양광패널 역시 '설치'가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지속해서 관심을 두고 주민과 같이 공감하고 활동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을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그의 고민은 한결같다. 어떻게 하면 모두가 안전하고 쾌적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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