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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딱히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자격증 시험준비나 스펙을 쌓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것에 회의하고 있을 때 대학을 중퇴하고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이 사회를 탓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지난 7년간의 모습이 이 가을의 하늘같은 청명함을 주었습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딱히 자신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자격증 시험준비나 스펙을 쌓는 것에 시간을 들이는 것에 회의하고 있을 때 대학을 중퇴하고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청년이 사회를 탓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온 지난 7년간의 모습이 이 가을의 하늘같은 청명함을 주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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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2살에 취업을 했습니다.

회사에 들어간 지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조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체적으로 기가 센 사람들이 많은 패션 업계였지만 그의 성격 또한 까칠했습니다.

윗사람들은 그의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진심 원하는 것은 혁신보다 조직의 기존틀이 준수되기를 원했고 무엇보다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말에 순응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어리고 상사의 말꼬리를 잡는 그는 매일 싸움꾼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1년 반 만에 2개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래도 회사가 고마웠던 것은 자신이 기존 조직의 성향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해준 것이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택한 것은 막걸리를 제외한 각종 술과 음식을 제공하는 일종의 펍이었습니다. 책과 인터넷의 각종 정보들을 학습하고 그것을 자신의 스타일로 요약했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다하는 1인 펍이었기 때문에 안주를 비롯한 음식도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메뉴 구성과 조리, 플레이팅, 서빙 등을 홀로 했습니다. 게스트로펍(Gastropub)를 지향했습니다. 음식은 이태리, 중식, 한식 등 딱히 국적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3년쯤 뒤에 다시 한식당을 열었습니다. 펍은 오너십을 가지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서 교육하고 전권을 맡겼습니다. 한식당의 레시피 구성은 간단하지만 건강한 한 끼 만족을 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또한 1인 주방 시스템으로 경영콘셉트를 고수했습니다.

한식당이 자리 잡히자 다시 중식당을 열었습니다. 펍에서 매운 사천요리를 내면서 얻은 긍정적인 반응에서 용기를 얻었습니다. 한식당과 중식당은 다시 적임자를 뽑아 경영을 맡겼습니다.

그는 여전히 다른 장르에 대한 호기심을 억누르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내에서 일고 있는, 프랑스 요리의 본질에 타국의 특색을 가미한 네오 프렌치 퀴진에 주목했습니다.

내로라하는 기존 셰프들이 아시안 터치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네오 프렌치 레스토랑을 열고 와인을 페어링 시켰습니다. 더불어 꽃집을 콜라보로 풀어냈습니다.

이제 29살. 지난 7년은 오너 셰프로 가는 도전의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날선 비장한 시간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한 유희에 더 가까웠습니다.

"사람들은 요리사자격증이 있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전 누구에게 요리를 배운 적이 없어요. 스스로 공부하고 실험했습니다. 자격증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한때는 요리사자격증반에 등록하고 자격증을 따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뒤돌아 보면 그렇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그 요리사자격증이 오히려 제 상상력을 제한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의 사업장은 지방 구도심의 남루한 한 골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필요하면 즉시 제가 달려가서 터치할 수 있는 거리 내에 있어야 해서요."

그 거리는 이제 그가 바리에이션(변형)한 가게들이 클러스터를 이루게 되었고 트랜디한 젊은이들도 찾는 골목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무기력이 지배했던 골목은 새순을 내는 봄날처럼 눈록(嫩綠)의 표정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청년의 이야깁니다. 7년간 그의 홀로 여정을 하룻밤 사이에 모두 복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늦잠을 즐긴 그가 서재로 왔습니다.

"전 양식보다 한식이 더 좋고, 미식을 즐기기보다 생존식으로 충분해요. 한식을 간소화해서 1인 주방의 한식당을 열었다고 했는데 제게도 풍미가 있는 간편식을 제안해줄 수 있을까요?"
"나물을 넣고 함께 밥을 하는 거예요. 취나물이나 곤드레, 혹은 시래기 같은... 그 밥 위에 6분 정도 삶은 계란을 얻는 거예요. 반숙보다 덜 익어서 수란처럼 노른자위가 밥알 사이로 스며들 수 있게 해요. 그리고 양념장에 비벼드시면 좋아요. 양념장은 사계절 구할 수 있는 달래양념장이면 더 좋고요."

떠나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은 뭔가요?"
"지금 창고 같은 작은 골동품 가게를 가지고 있어요. 주로 닫혀 있지만... 그곳을 좀 더 매력적인 갤러리로 가꾸어 가는 거예요. 두어 번 전시를 열긴 했지만... 갤러리에 집중해보고 싶어요."

많은 청년들에게 안타까운 것은 낮은 허들 앞에서도 쉽게 좌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누구를 탓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이 이 가을의 하늘같은 청명함을 주었습니다.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 조직에 적응하지 못한 그가 택한 것은 학원이 아니라 그의 취향이었습니다. 자격증이나 스펙이 없는 것이 오히려 그를 힘을 뺀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는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공동화된 골목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인 J.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의 본질을 유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는 <호모루덴스 - 유희에서의 문화의 기원>에서 유희가 문화의 종속이 아니라, 유희가 곧 문화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장르를 쉽게 넘나드는 이 다양한 퍼포먼스의 능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천성'을 따랐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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