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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전후 시위를 벌이고 유인물을 배포해 옥살이를 했던 정해동(61)씨가 22일 재심 끝에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5.18민주화운동 전후 시위를 벌이고 유인물을 배포해 옥살이를 했던 정해동(61)씨가 22일 재심 끝에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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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이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할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주문, 피고인은 무죄."

39년 전 대학 3학년이던 청년은 회갑이 지난 중년이 돼 있었다. 1980년 8월 8일 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은 정해동(61)씨는 1만4320일이 지나서야 무죄를 인정받았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전국진)는 22일 5.18민주화운동을 전후로 시위를 벌이고 유인물을 배포했다가 포고령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던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 부장판사는 "(정씨의 행위는) 12.12군사반란과 5.18민주화운동 전후의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반대하는 일련의 행위"라며 "이는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행위로 형법 20조에 따른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두환 등의 1979년 12.12군사반란 이후 1980년 5월 18일 비상계엄 확대선포를 시작으로 1981년 비상계엄 해제에 이르기까지 행한 일련의 행위가 내란죄로서 헌정질서 파괴범죄에 해당한다고 선언했다"라며 "(이와) 다른 평가나 법리, 역사적 해석이 허용될 수 없음은 너무나 명백하다"라고 강조했다.

전 부장판사는 주문을 읽기 전 "이 판결이 피고인의 명예를 회복하고 상처를 치유할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에 피고인석에 서 있던 정씨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군사정권 하 법원의 과오... 인권 최후의 보루 돼주길"

정씨는 1980년 5월 2일, 15일, 19일 전북대와 전주역 앞 오거리 등에서 "비상계엄 해제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노동3권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광주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5월 23일, 24일 전주 일대에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호소의 글', '전두환의 광주살육작전' 등의 제목의 유인물을 배포했다.

함께 시위를 벌이고 유인물을 배포했던 동료들이 경찰에 잡혀가자 정씨는 야간열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 부산으로 몸을 피했다. 하지만 5월 28일 부산 동래구 길거리에서 불심검문에 걸려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전주경찰서로 이송된 정씨는 곧장 보안대로 끌려가 극심한 폭행과 가혹행위에 시달렸다. 이날 무죄 선고 직후 만난 정씨는 "때리니까 맞을 수밖에 없긴 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맞고 버텼는지..."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오자마자 일단 지하실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조사도 하지 않고 그냥 두들겨 패더라고요. '빨갱이 새X야', '넌 이제 죽었다' 하면서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 팔뚝 이런 데를 몇 시간 동안 두들기고, 조금 조사하는 척 하다가 또 두들기고. 별로 조사할 의지가 없어 보였어요. 속된 말로 반쯤 죽여 놓고 시작하는 거죠. '너는 늦게 잡혀서 다행인 줄 알아, 앞에 잡힌 놈들 다 맞아 죽었어' 이러는데 '이러다 정말 맞아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안대에서 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온 전주경찰서에서도 폭행 수사가 이어졌다. 정씨는 "경찰들이 '너 같은 놈 하나 죽어도 요새는 소리소문도 안 난다'고 협박하며 대걸레나 야구방망이로 때렸다"라며 "자기들이 원하는 답이 빨리 안 나오면 그렇게 폭행이 이뤄졌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정씨는 35사단 헌병대 영창을 거쳐 광주 상무대 영창으로 옮겨졌다. 상무대에서 역시 폭행, 가혹행위가 계속됐고, 8월 8일 전교사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와 상고 모두 각각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돼 1981년 3월 31일 형이 최종 확정됐다.

정씨는 지난 8월 6일 대법원 판결 후 38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정씨의) 범죄사실은 그 시기와 동기, 목적, 대상, 사용수단, 결과 등을 종합해볼 때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이자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정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고, 이날 무죄 판결을 내렸다.

정씨는 "그 시대에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그때의 행위가 개인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제대로 평가받은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라며 "정의로운 행동이나 뜻 때문에 개인의 삶에 폭력이 가해지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5.18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판사들이 법을 지키지 않은 군사정권 하 여러 과오들이 있지 않나"라며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 법치를 지키는 법원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실 광주에서 목숨을 잃고 더 큰 고초를 겪은 분들에 비하면 우리가 겪은 일은 별 것 아닐 수 있다"라며 "그때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때문에 고생했단 이야기를 감히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여전히 5.18 영령들에게 부끄러운 마음으로 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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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선악의 저편을 바라봅니다. extremes8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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