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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공동대표(왼쪽))과 권은숙 활동가(오른쪽)
 김정덕 공동대표(왼쪽))과 권은숙 활동가(오른쪽)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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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치에 관심있어'라는 말은 한국사회에서 익숙치 않은 말입니다. 종교와 정치는 가족끼리도 이야기해서는 안되는 주제라고 하지요. 그런 대한민국에서 "나 정치해!"라고 선언한 '정치하는엄마들' 김정덕 공동대표(이하 정덕)와 권은숙 활동가(이하 은숙)를 만나보았습니다. 

- 정치하는엄마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정덕: "현재 공식사이트 오픈 준비 중입니다. 정치하는엄마들 (네이버) 카페와 페이스북 그룹과 더불어 각 활동기구별로 텔레그램 등 온라인 공간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카페는 공식 회원, 비회원 모두에게 열려 있지만 실질적인 활동은 공식회원으로 가입하신 뒤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참여회원은 회비는 내지 않아도 단체소식을 받거나 각종 행사 및 지역모임에 참여할 수 있고요. 월회비를 내는 권리회원은 단체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돕고, 총회 의결권과 선출직 운영위원 선거권/ 피선거권을 갖습니다. 작년 사립유치원비리 공론화 때 많은 분들이 가입하셨어요.

정관을 아우르는 '모두가 엄마다'라는 말은 '사회적 모성'을 더 강화시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저출생 현상을 저출산이라 표현하며 생물학적·개별적 여성의 문제로만 접근해왔던 한계를 뛰어넘어 개별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적 돌봄을 강화하는 등 구조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누구나 회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

- 엄마만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군요.
정덕: "그럼요. 회원 중에 아빠도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고 비혼인 회원도 있어요. 유치원3법이 많은 관심을 받은 것이 육아가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 지금 대표체제는 어떻게 되어 있나요?
정덕: "공동대표 2인, 상근하는 사무국장과 활동가가 있어요. 그 외에는 회원들의 자발적으로 활동기구와 준비모임을 이루며 활동하고 있어요."

- 두 분은 정치하는엄마들 단체 창립부터 같이 하셨나요?
은숙: "저는 작년 부천지역 정치하는엄마들 책모임이 만들어졌었는데 그때 가입하고 함께 하고 있어요."

정덕: "저는 2017년 6월 열렸던 창립총회에서부터 함께 했습니다. 창립총회 전, 전 공동대표였던 장하나 활동가가 한겨레에 '엄마정치'라는 칼럼을 썼어요. 엄마가 되면서 겪게 되는 사회부조리나 입지를 바꾸려면 엄마들이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칼럼 말미에 '우리 이제 만납시다'라고 썼는데, 그걸 보고 2017년 4월 4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고 두 달 만에 창립총회를 하였습니다."

- 다양한 지역의 회원들이 계신데 지역모임이 활성화 되어 있나요?
정덕: "지역모임이 활성화 된 곳들이 있어요. 부천이 잘 되는 곳 중 하나입니다. 그 외에 서울 북동부 모임, 경기북서부나 울산, 인천 등에서도 모임이 활발히 진행되는 곳들이 있어요."

- 부천 문화다양성조례 대응에 함께 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때 상황이 어떻게 되었었나요?
은숙: "제가 정치하는엄마들 말고도 지역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문화다양성조례가 부천에서 몇 년 전부터 전국 최초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정권도 바뀌고 부천시의회 28석 중 20석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인 상황이었어요. 몇 년동안 논의도 하였고 의석상황도 좋으니 상정을 했는데 본회의 아침에 의원총회를 하더니 결국 철회되었습니다.

철회의 배경은 혐오세력의 극렬한 반대였죠. 제가 문화다양성조례 대응에 함께 할 때는 정치하는엄마들로 들어간 것은 아니고 다른 단체로 함께 하였었는데, 정치하는엄마들에서도 제가 이런 활동하는 것을 알고 있어서 문화다양성조례 이후 민주시민교육조례, 인권조례 대응 등에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로 참여하였습니다."

- 문화다양성조례는 어떤 조항 때문에 반대가 심했는지
은숙: "'성'이죠. '성'을 '성별'로 하라는 요구를 하였고 '성적지향'도 본래는 들어가 있었는데 반대가 너무 심하니 빼자고 이야기되었어요. '성'도 '성별'로 바꾸었는데 결국은 철회되었죠. 문화다양성조례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부천에서 매년 문화다양성축제가 열리거든요. 그런데 이 축제에 성소수자 관련 부스는 없었기 때문에 제가 활동하는 시민단체에서 그 부스를 맡겠다고해서 처음으로 성소수자 부스가 운영이 되었어요.

다른 단체에서는 행사장 바닥에 무지개를 설치하기도 하였고 성중립화장실이 운영이 되었죠. 그런데 그것을 본 혐오세력이 사진을 찍어가서는 '문화다양성조례, 인권조례, 민주시민교육조례는 동성애합법화를 위한 한 세트이다'라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항의하여 결국 본회의날 문화다양성조례가 철회되고 이어서 인권조례와 민주시민교육조례는 상임위에서 부결되었어요."

- 이후 대응은요?
은숙: "문화다양성조례는 주민발의를 목표로 진행하게 될 것 같아요. 인권조례와 민주시민교육조례는 연대단체들과 함께 발의방법과 시기에 대하여 논의해보고 있어요."

- 지역의 인권조례 등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이 철회되거나 후퇴되는 양상과 매우 비슷하네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아이와 엄마에 대한 혐오의 분위기가 심각하게 느껴져요. 실제 엄마들이 느끼는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은숙: "아이가 둘인데 큰아이가 발달장애가 있어요. 처음에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어려웠는데 인식을 바꾸고 공부도 많이 하였어요. 아이도 더디지만 성장하면서 지금은 어디를 가든 일부러라도 같이 다니고 있어요. '이균도'라는 성인이 된 발달장애 당사자가 있는데 그 분 아버지의 페이스북과 책을 보면서 '본인도 힘들텐데 왜 계속 이야기를 하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에 장애인, 비장애인이 서로에 대하여 많이 들어야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또 아이가 밖으로 나가는 것, 버스와 지하철 타는 것을 좋아해요. 사회성이 좋고 사람을 좋아해서 사람들도 처음에는 발달장애가 있는 것을 모르다가 대화를 많이 하고 학습적인 활동을 하다보면 조금씩 알아차리게 되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사회적 약자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째를 낳고 나서 정당에 가입하고 조금씩 활동을 시작하게 됬어요.

맘충, 이런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런데 더 슬픈 것은 엄마인 당사자들도 그런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었어요."

정덕: "사람들이 아이에게 엄격한 건 아이를 많이 만나보지 못한 것도 큰 것 같아요.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맘충이라 부르고 혐오하며 아이를 단도리 할 수 있을까요? 엄마가 되었을 때는 그런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82년생 김지영> 책을 보면서 이게 정말 심각한 말이라는 것을 실감했어요.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는 프레임으로도 작용하면서 단어가 더 이슈가 된 것도 같아요.

물론 몰상식하거나 폐를 끼치는 사람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사람은 어떤 분야이든 존재하는데 엄마라는 대상으로 혐오의 말이 작동되는 건 매우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한 아이들이 그런 단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것도 충격적이구요. 노키즈존도 문제입니다. 그렇게 써있으면 알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안 가면 된다며 피할 수 있는 선택지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명백한 아동혐오입니다."

- 사실 가장 약한 존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취하는 것이다. 정말 폐 끼치는 사람을 막기 위함이라면 노아재존이 시급하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정덕: "어떤 존재가 혐오가 될 수는 없어요. 조용한 곳이 필요하다면 누구나 조용할 수 있도록 '콰이어트존(Quiet zone)'을 만들어야지 노키즈존을 만드는 방식은 옳지 않아요. 아이들에게 노키즈존에 대한 생각을 묻는 방송을 본 적이 있어요. 아이들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묻더라구요.

이런 환경에서 큰 아이들이 훗날 노인들을 배제하거나 노아재존 같은걸 만들어 누군가를 배제시킨다면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그렇게 대했잖아요. 사회에 만연한 혐오는 이런 식의 배제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만들고 있어요. 혐오발언들은 지금까지 본인들이 마주해온 사회에요.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보아온 세상은 무엇일까요.

세월호가 가라앉았을 때, 아이를 임신 중이었요. 6년이 지나고 2000일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했잖아요. 그때 그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나를 걱정한 어떤 사람은 '그런 거 그만보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아이 생각만 해'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가 뱃속에서 듣고 있다면 귀를 막고 싶었어요. 저렇게 쓰러져가는 아이들을 구하지도 못하는 세상인데, 좋은 것 먹고 좋은 것만 주면서 키운 아이들이 저렇게 죽어가는데, 이걸 외면하고 내 아이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 아이가 온전히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나온다면 어떻게 키워야 하지? 하는 생각과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저 배가 가라앉기까지 세상엔 많은 문제가 있었고 나도 그것을 방관한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그런 사회에서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따뜻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청년이라 불리는 시기에 놓치고 산 것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금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바뀌지 않을 거에요.

엄마 한 사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없습니다. '모두가 엄마다'라는 말처럼 모두가 내 일처럼 동참한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그 얘기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관심한 사람들은 잘 모르죠. 그 문제가 삶에 닿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되는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 정치하는엄마들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실까요?

정덕: "여러 가지 활동 중에 맥도날드 사건에 함께 했었어요. 맥도날드는 정말 국제적인 대기업이죠. 피해아이는 신장의 90%가 망가졌어요. 신장이식을 하지 않는다면 매일 투석을 받아야 해요. 3년 전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언론에 나온 그때 잠깐이 전부이고 해결된 것은 없어요. 피해아이의 엄마가 찾아왔었어요. 보상도 전혀 받지 못하였고 소송은 아직도 진행중이죠. 아이가 혈압이 높아서 고혈압약을 3가지씩 먹어야 하는데 그로 인해 털이 많이 나고 반 친구들이 놀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학교 가는 그 시간이 유일한 외출이기에 학교를 가고 싶어한대요. 엄마는 날마다 자책을 해요. 햄버거병 관련 인터넷 기사 댓글은 햄버거를 먹인 엄마를 탓하고 있었어요. 햄버거를 잘못 만든 기업이 아니라 햄버거를 사준 엄마를 탓하는 거에요. 밥 안 먹이고 햄버거를 먹였다고. 밥 먹고 간식으로 먹은 거라는 해명까지 해야 했어요. 피해자일지라도 '엄마'라는 존재에 씌워진 공고한 모성신화는 절대적인 희생을 강요합니다."

- 스쿨미투 관련한 활동도 하셨죠?
정덕: "스쿨미투 법률지원을 도왔어요. 또 저희가 파악한 스쿨미투가 있어난 95개 학교를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스쿨미투지도를 만들어 공개하고 있습니다. 서울시교육청 등에 후속조치 모니터 등도 하였죠. 스쿨미투에 조금이나마 함께 하면서 느낀 것인데 요즘 학교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하잖아요? 학생-교원-학부모가 평등한 관계라면 그런 교육이 효과가 있겠지만 지금처럼 비민주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의 학교현장에서 그런 교육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요.

스쿨미투 이후 1년 동안 후속조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서울시교육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했는데 비공개 처분이 나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어요. 교육청조차도 학생들의 인권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고 폭력근절에 대한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 제 모교에서도 스쿨미투가 일어나서 졸업생 성명을 쓰기도 했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파면되었었는데 그것이 가능한 것은 학생들도, 학부모도, 졸업생과 지역사회도 한 목소리로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정덕: "그런 지지가 정말 중요해요. 어떤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아야 하는데 공개를 안 하고 쉬쉬하려고 합니다. 문제가 재발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사립학교는 자신들 재단 안에서 다른 학교로 가해 교사들을 돌리고, 공립학교는 아예 학교에서 공론화 자체를 막아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건 학교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율이 굉장히 높은데 허투루 볼 수 없습니다. 통계만 봐도 명백한 아동학대 국가입니다. 저인구화는 출산율이 아니라 출생율을 따져야 합니다. 아이가 살기 정말 어려운 나라임을 엄마가 되고 나서 깨닫고 있어요."

정덕: "스쿨미투는 청소년운동의 새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자랑스러워해야죠. 학교 명예를 훼손한 건 학생들이 아니라 가해교사이고 방관한 학교들입니다. 하지만 교육청, 교육부가 제대로 후속조치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그것이 엉망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들을 지지하는 부모님을 찾는 것부터 쉽지가 않더라구요."

- 정치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으셨을까요?
정덕: "어린이집 급식비가 22년동안 1745원으로 동결되어 있습니다. 거주지역과 양육자의 직업에 따라 편차가 심합니다. 지원금을 많이 주는 지자체에 살거나 부모가 공무원이어서 공공기관 어린이집에 다닌다면 급식비가 많게는 6391원(서울시청어린이집)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보건복지부이 정한 표준 1745원으로 먹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투표권이 없고, 어린 아이를 키우는 대부분의 양육자들은 여력이 없으니 권리주장이 약해 그들을 위한 정책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만들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 차별로 이어지는 거죠. 1745원의 급식을 먹은 아이와 6391원의 급식을 먹고 자란 아이는 건강상태도 매우 다를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어린이, 청소년 관련한 법안들이 많이 이야기 되었던 것 같은데 그런 법안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정덕: "거의 통과되지 못하였어요. 일명 하준이법, 태호유찬이법, 그리고 민식이법 등 아이들 이름을 딴 법들입니다. 하준이법은 서울랜드의 주차장에서 주차된 차가 굴러 내려와서 아이가 세상을 떠난 뒤 만들어졌어요. 주자장에 경사로주의 경고문을 붙이고, 뒷바퀴 대는 쪽에 스토퍼 설치를 의무화 해달라는 내용의 법안인데 꽤 이슈가 되었음에도 아직 통과되지 못했어요.

인천 송도 축구통학차량 사고로 8살 태호와 유찬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음에 안전벨트를 안했다고 기사가 잘못 나갔는데 아이들 전원 안전벨트를 했었거든요. 허리만 두르는 2점식 안전벨트를 했는데 이건 사실상 어른이든 아이든 아무런 보호를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동통학차량은 운전자 1인과 보호자 1인이 있어야하는데 이 차량은 코치가 운전도 하고 하차지도를 하는 등 다른 보호자가 동승하지 않았어요.

축구클럽 운영자는 24세를 채용하고 보험은 30세 이상용으로 들어놔서 보험 적용도 받지 못했어요. '어린이통학버스'는 '학원법, 체육시설의 설치 이용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시설에서 어린이 탑승차량으로 이용되는 차량'이에요. 근데 축구클럽은 체육시설업에 해당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탔던 노란 차량은 법적으로 어린이통학버스가 아니었던 겁니다. 법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죠.

민식이법은 이번에 발의가 되었어요. 아이가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스쿨존, 어린이보호구역이었지만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가 의무인 것도 아니고 가해자에게 가중처벌 되는 것도 아니 었더라구요. 안전보호를 할 수 있는 조치를 의무화해달라는 것이 민식이법의 내용이에요. 하지만 이런 아이들 희생에 기댄 법들 뭐 하나 통과된 것이 없어요."

은숙: "국회의원의 구성상 전혀 이런 문제에 당사자성이 없어요. 이미 자녀가 대학도 졸업할 나이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어린이집 급식문제, 초중고 학내문제, 스쿨미투 이런 문제에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것을 활동하면서 많이 느낍니다."

- 정치하는 엄마들에서 이번에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 가입해주셨는데 정치하는 엄마들에게 차별금지법이란 무엇일까요?
정덕: "가입 제안이 왔을 때 운영위원들 모두 당연히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보니까 2007년부터 발의되고 무산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더라구요. 차별에 대하여 한 번 인식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아요.

얼마 전 저희 단체가 비영리단체 등록을 했는데 두 번 반려되었어요. '정치하는'이라는 이름과 정관상의 '정치세력화'라는 단어 때문이었어요. 정치한다고 하면 특별한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잖아요. 지난한 설득 끝에 '엄마들의 정치세력화'를 서울시청이 인정하고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마쳤지만 '정치'란 단어에 대한 터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어요.

차별금지법 또한 너무나 당연히 필요한 법입니다. 차별사유에서 덜어내려던 것들, 그런 요소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삶을 지울 수 있나요? 아니잖아요. 이제는 더 많은 삶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대통령이 말하는 진정한 포용국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은숙: "저는, 제가 사회적 약자 당사자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다수자가 소수자들의 소수자성에 같이 목소리를 내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이렇게 활동하는 것이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와 제 가족의 인권을 위해서에요. 이거는 정말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죠."

-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정덕: "모두가 공존하는 세상. 다르게 생긴 나무들이 뿌리가 얽혀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숲처럼요. 저는 '평등은 생존이다'라고 말했었는데 평등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지속하는 힘인 것 같아요.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은숙: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 소수자도 목소리 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정덕: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금까지 오래 걸렸지만 언젠가는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은숙: "이렇게 더딜 줄이야."

- 그러게요 이렇게 더딜 줄은 아무도 몰랐을거에요.
정덕: "내가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가? 정말 그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다 같이 살아야 하는 세상이잖아요."

-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을까요?
은숙: "저는 앞서 다 말씀드린 것 같아요."
정덕: "저는 연대하시는 단체의 이름을 쭉 보니 좋더라구요. 이렇게 많은 단체와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다니. 정치하는엄마들이 어떤 역할을 하겠다기 보다는 함께 하는 마음으로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오늘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내일의 나도, 내일의 아이들도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격월간 소식지 '(격)월간평등업'에도 실립니다.


태그:#정치하는엄마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차별금지법, #차별,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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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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