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로야구 기아 타이거즈가 새로운 감독으로 메이저리그 출신의 맷 윌리엄스를 선임하면서 야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윌리엄스 신임감독은 현역 시절 김병현의 팀 동료로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함께한 멤버로도 국내 팬들에게 친숙하다. 한국 프로야구가 외국인 감독(엄밀히 말하면 미국인 감독 한정, 재일교포-감독대행 제외)을 영입한 것은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감독-트레이 힐만 전 SK 감독에 이어 3번째다.

KBO에서 외국인 감독에게 문호를 개방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최초의 외국인 감독인 로이스터가 롯데 지휘봉을 잡은 것이 2007년이고, 그 뒤를 이은 힐만 감독이 2017년 SK의 지휘봉을 잡기까지 무려 10년이 걸렸다. 경쟁 종목인 축구나 농구보다도 뒤늦은 시점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3년, 힐만 감독은 겨우 2년만 한국에서 머물렀을 뿐 재계약은 모두 불발됐다.

하지만 짧은 역사와 달리 의외로 효과는 만점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암흑기를 보내던 롯데의 지휘봉을 잡자마자 구단 역사상 최초로 3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을 이끌며 부산의 야구 열기를 중흥시켰다는 찬사를 받았다. 비록 우승을 차지하지 못하며 단기전에 약하다는 이유로 구단이 재계약을 포기했지만 롯데 팬들 중에는 아직도 로이스터 시절을 롯데 야구의 최고 황금기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힐만 감독은 2018년 SK를 무려 8시즌 만에 정상으로 이끌며 외국인 감독으로서는 최초의 KBO 우승이라는 명예로운 역사를 남겼다. 힐만 감독이 우승 직후 SK와 재계약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간 것은 오로지 가족 문제 때문이었다. 올 시즌 SK가 염경엽 감독 체제에서 내내 1위를 질주하다가 역대급 역주행을 저지르며 플레이오프에서 허무하게 탈락하자 힐만 감독의 리더십은 더욱 재평가받고 있다.

로이스터-힐만 감독 시절을 합쳐 소속팀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100%(5/5)였다. 화끈한 공격야구와 팬 친화적인 행보로 구단의 흥행 및 이미지 개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두 감독 모두 충분히 성공적인 영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유다.

무엇보다 두 외국인 감독의 성공이 KBO에 미친 긍정적인 효과는, 한국야구에서도 '메이저리그식 리더십'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초창기부터 일본 야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감독들의 리더십이나 훈련방식 등도 마찬가지였다. 감독들의 권위주의적 리더십, 선수 혹사, 상명하복과 서열을 강조하는 수직적 팀문화 등은 한국야구의 오랜 폐해로 지적받곤 했다.

한국야구의 전통적 이해관계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외국인 감독들은 객관적인 시각에서 선수들을 평가하며 팀 내에 새롭고 건강한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 또한 일방적인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수평적으로 선수-팬들과 소통하고, 감독 개인이 모든 것을 장악하기보다 철저한 시스템과 원칙하에서 절제된 권한을 행사하는 메이저리그 스타일의 리더십은 '한국야구도 잘 모르는 외국인 지도자가 뭘할수 있겠냐.'는 막연한 고정관념에 얽매여있던 국내 야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윌리엄스 감독의 등장이 여러모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는 그가 맡게 된 팀이 바로 기아 타이거즈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기아는 전신인 해태 시절을 포함하여 KBO 역사에서 유일하게 두 자릿수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국내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기아는 해태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최근에도 여전히 타 구단에 비하여 보수적인 성향과 순혈주의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역대 사령탑도 김응용-김성한-서정환-선동열-김기태 등 좋게 말하면 '강성 이미지', 나쁘게 말하면 '꼰대형' 지도자들이 주로 이 팀을 거쳐 가며 좋은 성적을 올린 시절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사령탑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둘러싼 크고 작은 잡음도 많았다.

팬들의 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감독들이 버텨내기 쉽지 않은 팀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단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인 선동열 감독이나, 팀에 우승을 선사한 조범현-김기태 감독도 팬들이 등을 돌리며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기아와 별다른 연결고리가 없는 외부 인사를 감독으로 선임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을 정도인데, 하물며 '구단 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는 것은 이 팀의 역사를 아는 팬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파격이라고 할만하다. 구단이 윌리엄스 감독을 영입하며 밝힌 선임 배경으로 '데이터 분석 및 활용', '포지션 전문성 강화', '프로 선수로서 의식 함양', '팀워크 중시' 등을 추진할 적임자로 꼽은 것은 주목할만하다.

어찌 보면 신임감독 등장할 때마다 의례적인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그간 기아 역대 감독의 이미지와는 조금 차이가 있다. 구단이 윌윌리엄스 감독 영입을 통하여 시도하고 있는 것이 한마디로 '타이거즈의 팀문화' 자체를 혁신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윌리엄스 감독이 기아에서 달성할 수 있는 '성공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일단 '3년 내에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팀'을 목표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기아는 해태 시절인 80-90년대에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밥 먹듯이 하며 '왕조'로 불렸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2009년과 2017년 정상에 올랐으나 우승전력을 오래 이어가지 못했고 성적의 기복도 심했다. 현재의 기아는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로 다시 리빌딩과 세대교체가 필요한 상황이다. 잠재력 있는 젊은 선수단을 물려받고 시작했던 로이스터나 힐만과는 또 상황이 다르다. 결국 윌리엄스 감독은 기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연속성 있는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윌리엄스 감독의 최대 장점은 역시 화려한 경력이다. 윌리엄스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만 올스타 5회, 골든글러브 4회, 홈런왕, 월드시리즈 우승 등에 빛나는 스타 출신 감독이다. 선수 시절 경력은 초라했던 로이스터와 힐만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외국인 감독은 물론이고 한국프로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윌리엄스보다 더 위대한 선수 경력을 보유한 인물은 없다. 지도자로서도 메이저리그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이 주는 믿음은 일부러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도 개성 강한 기아 선수단을 장악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로이스터나 힐만이 그러했듯이 친화력이나 인품 등도 벌써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화려한 과거가 곧 현재의 성공까지 장담하는 것은 아니다. 로이스터와 힐만의 성공은 외국인 감독 본인의 능력도 있지만 주변의 지원과 믿음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외국인 감독이라도 리더십이 다 똑같은 유형도 아니다. 아직 KBO 역사에 외국인 감독의 표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최소한 로이스터나 힐만 정도'는 해야 한다는 무조건적인 비교는 오히려 윌리엄스 감독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팬들도 윌리엄스 감독이 한국야구에 적응하고 자신만의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인내가 필요하다. 또한 감독 개인이 모든 전권을 휘두를 수 없는 현대야구에서 윌리엄스 개인만 지나치게 부각하기보다, 기아 구단 자체가 외국인 감독을 어떻게 활용하고 지원하며 '함께 시스템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는지'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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