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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단체의 일정이 끝난 어느 늦은 밤, 버스와 지하철이 끊겨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은 나에게 유튜브 영상을 보느냐고 물었고, 나는 잘 보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내 대답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나보다. 기사님은 영상 이야기를 꺼내 놨다. 대선 후보로도 나온 적이 있는 어떤 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결혼하고 출산하면 얼마를 준다더라 등등.

그는 살면서 약속을 지킨 대통령도, 그래서 잘 살게 해준 대통령도 만난 적 없다면서 그이가 다시 대선 후보로 나오면 200% 지지할 것이라고 백미러로 나와 눈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평소 같으면 "네, 기사님.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사회를 위해 운동을 하고 있어요"라면서 기본소득의 판을 깔아봤겠지만 그의 말에 간간이 맞장구를 쳐주며 가만히 들었다. 그가 지지한다는 것을 내가 같이 지지하긴 어렵겠지만, 그가 말하는 것 역시 가난하지 않게,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나오는 바람들이고 나또한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가난도, 아빠의 가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엔 집 앞 강가를 걷다가 잠시 멈췄야했다. 찬 공기가 느껴지던 그 밤, 누군가 다리 밑에서 이불 하나 덮고 자고 있었다. 당장의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눈물을 참았다.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불쌍하게 여기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면서도 눈가에 고이는 눈물과 가슴에 차오르는 분노와 좌절을 고르기 위해 애쓰며 걸었다. 그날은 '주거는 인권'이라고 외치던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세계 주거의 날'이었다.

10월 17일은 '세계 빈곤 철폐의 날'이다. 해마다 이 날이 되면 빈곤 문제와 해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나 역시 그런 집회와 행사장에 서 있곤 했다.
 
 사회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난은 죄'라고, 잘못이라고 더 구석으로 몰아낸다. 가난이 수치가 되고, 그 가난을 증빙해야만 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다.
 사회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난은 죄"라고, 잘못이라고 더 구석으로 몰아낸다. 가난이 수치가 되고, 그 가난을 증빙해야만 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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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의 가난도, 그리고 아빠의 가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부양할 수 없어 외면했던 지난 시간들은 이제 제법 오래돼 묵직한 돌덩이 같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선택하며 살고 있다. 아빠의 가난을 내가 책임지고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에게 착한 부모나 착한 자식이 되라고 요구하는 시스템에 문제 제기 하는 이들 사이에서 나도 같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 돌덩이에 눌리곤 한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죄책감을 느끼며 살아야 할까. 아등바등 살아가는 내 친구들을 왜 자꾸만 우는 걸까.

수년 전, 차라리 아빠가 일찍 죽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그를 부양할 수도 없고, 그 역시 자기 자신을 부양하며 살기 버거운 현실에 짓눌려서. 물론 그것은 나만을 생각한 이기적인 마음이었다. 나 편하자고 한 생각임을 알지만 울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빠가 가진 장애가 그에게 어떤 벽을 만드는지, 아빠가 가진 질병이 그에게 어떤 고통을 만드는지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에게 날아올 '의무'라는 것들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숨 좀 쉬며 나도 잘 살고 싶었다. 아빠가 큰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살기엔 나 혼자도 버거운 삶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책 제목처럼 엄마가 먹여 살렸다. 엄마는 이 사회에서 허락하는 노동할 수 있는 몸이었고, 그 몸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그녀는 한계를 넘어서며 나를 먹여 살리는 일을 해왔고, 그 결과 많이 아프다. 그녀가 해온 일들은 어떤 전문성으로도, 어떤 경력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사라졌고, 남은 것은 아픈 몸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아닌 엄마가 나와 동생, 그리고 우리 네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는 툭하면 집을 비웠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 무능력해보였다. 자주 사람들에게 속았다. 엄마와 이혼하고 아빠와 살 때에도, 아빠는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기 일쑤였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 분기별로 분담금을 내야 했는데, 고3이었던 나는 그 분담금을 기한 내 내지 못했고 그 일로 인해 졸업을 못 할까봐 전전긍긍 했다. 한 번도 대학을 가지 않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돈이 없어서 대학을 가지 못하게 됐다. 결국 대학을 포기한 채 수능을 보러 간 날, 돌아오는 길에서 구토를 했다. 모두들 졸업이라며 차려 입고 졸업식장에 왔을 때, 나 혼자 교복을 입고 졸업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빠와 살지 않게 되었지만 나를 엮는 가난은 계속 이어졌다.

가난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삼시 세끼를 잘 챙겨먹으면서 가난을 말하지 말라, 너는 너를 위한 취미 생활을 하잖아, 가난하지 않잖아 등등 가난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떤 특정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면서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가난을 나누는 것만 같다. 사회의 체계에 문제제기 하지 않고 개별 사람들에게서 '진짜 가난-가짜 가난'을 나누며 더 나은 삶의 모습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만 같다. '가난한 너의 잘못이다.' 사회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말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난은 죄'라고, 잘못이라고 더 구석으로 몰아낸다.

가난이 수치가 되고, 그 가난을 증빙해야만 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 문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선별적 복지체계는 스스로의 무능력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빌어야만 가난을 겨우 인정받는다. 가난 속에서 나올 수 있기보단 계속해서 빈곤함 속으로 더 들어갈 뿐이다. 가난해야만 인정되는 지원정책은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가난하지 않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같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허울뿐인 채 오늘도 누군가는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필요하다
 
 오준호 저서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의 표지
 오준호 저서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의 표지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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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사회에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기본소득당' 창당 운동을 시작했고, 얼마 전 엄마는 첫 정당 가입을 했다. 전국 곳곳에서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와 당신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개별적으로, 정기적으로, 현금으로 일정액을 지급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이다. 기본소득당은 모든 시민은 이 사회의 공통의 부에 대한 공통의 소유자이며, 인간의 존엄은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가치를 말하고 있다. 연령, 자산, 노동여부, 결혼여부 등과 같은 어떤 전제 없이, 내가 얼마나 가난하고 불쌍한지를 개인이 증명하지 않고도 보편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이 실현된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이 기본소득에서 핵심적으로 말하는 가치인데 이는 지금의 복지정책과는 다름을 보여준다. 기본소득당에서 이야기하는 '공통부'는 토지, 생태환경에서의 수익, 지식이나 빅데이터, 네트워크 등 인공적 공통자산에서 얻어지는 수익을 누가 얼마만큼 기여했는지 따질 수 없고 그로 인한 수익의 기여 또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이는 특정한 누군가의 성과로 귀속시킬 수 없는 수익이며 우리 모두의 몫으로서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보편적으로, 개별적으로 정의롭게 분배하자고 주장한다.
  
나는 기본소득이 내 삶을 200% 바꾸는 만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처절한가를 증명해내지 않아도 되는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진다면 당장 오늘을 버티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의 삶에서 불안을 조금씩 걷어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기본소득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들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나는 '아빠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비록 그렇더라도 나는 간절히 바란다.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으로 짓눌린 시간을 지내왔다면 가벼워질 수 있도록, 또 누군가는 가난으로 인해 원치도 않는 이런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삶의 모양들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도록 "모두의 것을 모두에게" 기본소득이 실현될 수 있기를.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대구 기본소득당 창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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