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2012 시즌 여자프로농구의 신한은행 에스버드가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통합 6연패를 달성했을 때 이는 '불멸의 기록'이 될 것이라 예상한 스포츠 팬들이 적지 않았다. 매 시즌 많지 않은 구단들이 우승을 목표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한국의 프로 스포츠에서 특정팀이 5년 이상 독주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라는 대기록이 다시 작성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여자프로농구에서 신한은행의 자리를 물려 받은 우리은행 위비가 2012-2013 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통합 6연패 타이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은행은 과감한 투자로 스타 선수들을 끌어 모아 만든 전력이 아니라 2011-2012시즌까지만 해도 최하위에 허덕이던 팀이라 더욱 놀라운 반전이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독주도 영원할 순 없었다. 초유의 통합 7연패를 노리던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KB스타즈에 밀려 정규리그 2위에 머물렀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삼성생명 블루밍스를 만나 1승 뒤 연패를 당해 챔피언 결정전조차 나가지 못했다. 지난 시즌 여자프로농구 최대이변의 희생양이 된 우리은행은 이번 시즌 7년 만에 챔피언이 아닌 도전자의 입장에서 우승 탈환에 나선다.

2017년부터 주력 선수들 차례로 은퇴하며 통합 7연패 좌절
 
 여자농구의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스타 임영희는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이끌고 화려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여자농구의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스타 임영희는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이끌고 화려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박지수. 한국 농구에겐 정은순, 하은주 이후 등장한 이 반가운 정통 센터가 우리은행에게는 악몽의 이름이 됐다. 박지수의 프로 입단 이후 KB의 전력이 급상승했고 끝내 박지수가 이끄는 KB가 우리은행의 통합 7연패를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자프로농구의 발전과 재미를 위해서는 특정팀의 독주가 7시즌 동안 이어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우리은행의 통합 7연패가 무산된 것은 지난 시즌이지만 사실 '무적'을 자랑하던 우리은행의 전력에 균열이 간 것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은행은 2016-2017 시즌 존쿠엘 존스와 모니크 커리라는 막강한 외국인 듀오를 앞세워 정규리그 35경기 중 33경기에서 승리하며 여자프로농구 역대 최고승률 기록(.943)을 세웠다. 당시 우리은행은 원정경기 전적이 18승 무패였을 만큼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2016-2017 시즌이 끝난 후 토종빅맨 양지희와 백업센터 이선화가 나란히 은퇴를 선언했다. 4번 자리에 커다란 전력 공백이 생긴 우리은행은 FA 시장에서 신세계 쿨캣과 KEB하나은행의 프랜차이즈 스타 김정은을 영입했다. 김정은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파워 포워드 포지션을 잘 소화하면서 우리은행의 통합 6연패를 견인했다. 김정은 본인에게도 프로 데뷔 후 첫 챔프전 우승이었다.

우리은행은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에도 이은혜와 홍보람,박태은이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2년 사이에 1군에서 활용할 수 있는 5명의 선수가 로스터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리고 그 공백은 2018-2019 시즌의 실패로 이어졌다. 정규리그 KB와의 맞대결에서 1승5패로 뒤지며 정규리그 7연패가 좌절된 우리은행은 삼성생명과의 플레이오프에서도 넘치는 파워를 앞세운 김한별을 제어하지 못하고 1승 후 2연패를 당하며 챔프전 진출이 좌절됐다.

박지현-김소니아 등 신예들 성장에 달린 우리은행의 재도약
 
 비시즌 동안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재능을 뽐낸 박지현은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은행의 주전급 선수로 활약할 예정이다.

비시즌 동안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재능을 뽐낸 박지현은 이번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은행의 주전급 선수로 활약할 예정이다. ⓒ 우리은행 위비

 
우리은행에게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시즌이 끝난 후에 들려 왔다. 바로 2012-2013 시즌과 2013-2014 시즌 챔피언 결정전 MVP이자 통합 6연패의 주역이었던 임영희가 현역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임영희는 박혜진이나 김정은처럼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아니지만 위성우 감독의 농구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코트에서 완벽히 구현해 내는 선수로 팀 공헌도가 가장 높았다.

우리은행은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지난 2017-2018 시즌 신한은행에서 뛰었던 르샨다 그레이를 선택했다. 185cm의 신장을 가진 빅맨 그레이는 신한은행 시절 평균 21분을 소화하면서 14.46득점 10.37리바운드로 '더블더블 시즌'을 만들었을 만큼 골밑 장악 능력이 뛰어나다. 박혜진,김정은 등 우리은행의 베테랑 선수들과 호흡만 잘 맞는다면 한국에서 충분히 좋은 기억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즌 우리은행의 키를 쥐고 있는 선수는 단연 2년 차 시즌을 맞는 박지현이다. 4.8%의 확률로 우리은행에 지명된 박지현은 루키 시즌 15경기에 출전해 8득점3.73리바운드1.67어시스트로 가능성을 보인 바 있다. 특히 지난 7월 U-19월드컵에서는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26점을 몰아치기도 했다. 박지현이 풀타임으로 활약하면서 평균 20분 이상을 소화해 준다면 우리은행은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가능해진다.

뛰어난 투쟁심을 가진 혼혈 선수 김소니아의 성장도 지켜볼 부분이다. 지난 시즌 4년 만에 팀에 복귀한 김소니아는 5.69득점 6.7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에서 큰 역할을 해줬다. 비시즌에도 꾸준히 3X3 대회에 출전하며 기량을 갈고 닦은 김소니아는 이번 시즌에도 최은실과 번갈아 가며 우리은행의 페인트존을 지킬 예정이다. 지난 시즌엔 공을 향해 마냥 달려 들기만 하던 김소니아가 요령을 갖춘다면 팀에 훨씬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신한은행은 통합 7연패가 좌절된 이후 성적이 점점 하락하다가 급기야 지난 시즌엔 최하위로 추락하며 '몰락한 왕조'의 나쁜 점을 보여줬다. 지난 시즌 챔프전조차 나가지 못한 우리은행 역시 이번 시즌 전력을 잘 추스르지 못하면 신한은행이 보여준 몰락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위성우 감독은 팀의 추락을 가만히 지켜볼 지도자가 아니다. 몰락과 자존심 회복의 갈림길에 서 있는 우리은행의 이번 시즌이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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