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러시아 고려인역사관에서 해설사 설명을 듣는 학생들
 러시아 고려인역사관에서 해설사 설명을 듣는 학생들
ⓒ 허경진

관련사진보기

 
"화물차 안은 어두웠다. 사람들은 밤이 깊어갈수록 심해지는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왼쪽에서 곡성이 울리며 시신이 옮겨지고 있었다. 다음날도 곡성이 울렸다. 이번에는 어린 아이가 죽었다. 몸 약한 노인과 아이가 고생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거였다."

연해주 고려인들 강제이주 참상을 다룬 소설 <아리랑>(조정래/1995년 초판 발행)한 대목이다.

소설 속 참상은 허구가 아니다. 이방인 고려인들의 현실이었다. 1937년 8월 21일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0만 조선인 강제 이주를 결정한 뒤, 곧바로 총칼을 앞세워 고려인들을 동토의 땅 중앙아시아로 몰아냈다.

공식적인 이유는 조선 사람들의 일본 첩자행위 방지와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농업인력 공급이었다. 강제 이주를 명령한 것은 스탈린이다.

이러한 수난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러시아 우수리스크 '고려인 문화센터' 1층에 있는 '고려인 역사관'이다.

15일 오전 과천중학교와 과천문원중학교 학생 26명과 함께 '고려인 역사관'을 방문했다. 경기도교육청과 경기도청이 함께 진행하는 '응답하라 1919,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아래 역사원정대)' 3박4일 연해주 역사체험에 참여한 학생들이다.

역사원정대는 지난 14일 부터 탐방을 시작했다. 역사원정을 책임지고 있는 왕지선 경기도교육청 장학사는 '글로벌 역사 인재를 기르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굶주림과 죽음, 공포의 시베리아 횡단열차
 
 강제이주 설명을 들으며 숙연해진 학생들
 강제이주 설명을 들으며 숙연해진 학생들
ⓒ 허경진

관련사진보기

 
쉴 새 없이 재잘대던 아이들이 하나둘 입을 닫기 시작했다. 여행가이드겸 역사해설사가 강제이주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침묵이 흐르면서 숙연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해설사 설명만 또렷하게 귀에 꽂혔다.

'고려인 역사관'이 기억하는 강제 이주 진짜 이유는 '스탈린의 강력한 중앙집권 야욕', 즉 독재야욕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민족의식과 정치의식이 높은 한인들을 경계해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시켰다. 그 과정에서 많은 한인 민족주의자들이 숙청됐다. 

당시 중앙아시아에 버려진 한인은 17만여 명. 무심한 기차는 카자흐스탄에 9만5256명, 우즈베키스탄에 7만6525명을 쏟아 놓았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안은 굶주림과 공포, 죽음뿐이었다. 그 안에서 고려인들은 40여 일을 견뎌야 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의 삶은 땅굴을 파고 엄동설한을 견뎌야 할 정도로 비참했다. 배움의 길은 막혀 있었다. 국가기관 취업 같은 사회진출 길 또한 막혀 있었다. 거주이전의 자유도 없었다.

버려진 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는 사망자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주 첫해에 7000여 명이, 그 이듬해에도 4800여 명이 생을 등졌다.

고려인들에게는 비탄에 젖어 있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비탄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척박한 땅을 한인들은 단 3년 만에 옥토로 바꿔 놓았다. 그 덕에 중앙아시아 농업은 크게 발전한다.

고려인역사관에서 만난 소설 <아리랑>
 
 고려인역사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 <아리랑>
 고려인역사관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소설 <아리랑>
ⓒ 이민선

관련사진보기

 
소련이 해체된 후인 1993년 4월, 러시아 의회가 강제이주의 과오를 시인하면서 고려인명예회복 법안을 채택하면서 한인들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고려인들은 연해주로 재이주를 시작했다. 현재 5만여 명의 고려인이 연해주에 살고 있고, 그 중 3만여 명 정도가 재이주해 정착한 사람들이라 한다.

이렇듯 고단하고 억울한 이방인의 삶, 특히 강제 이주의 역사를 '고려인 역사관'은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이를 소설 형식으로 기록한 대하소설 <아리랑>이 고려역사관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처참한 강제 이주 역사를 알게 된 아이들. 기분이 어떠냐고 슬쩍 묻자 한 학생이 "강제로 내쫓기다니, 정말 마음이 아파요"라고 혼잣말 하듯 답했다. 그 옆에 있던 학생은 "슬프지만, 이런 역사를 알게 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고려역사관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 아들 벌 중학생들 재잘거림이 없었다면 무척이나 무거웠을 것이다.

[이전 기사] "러시아에 있는 우리 역사를 눈으로 확인해 벅차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궁금한 게 많아 '기자' 합니다. 르포 <소년들의 섬>, 교육에세이 <날아라 꿈의학교>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