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여자배구 대표팀, 황금세대 눗사라(왼쪽)-신세대 찻추온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 황금세대 눗사라(왼쪽)-신세대 찻추온 ⓒ 박진철


  
태국 여자배구가 한국을 꺾고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비상 처방을 감행했다.

태국 배구협회는 최근 올 시즌 태국 리그를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공식명칭 대륙별 예선전)' 이후에 개막하기로 결정했다.

태국 스포츠 전문 매체인 'SMM SPORT'도 최근 보도를 통해 "2019-2020시즌 태국 리그는 2020년 1월 18일 개막하는 걸로 확정됐다.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자배구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은 내년 1월 초 태국 나콘랏차시마에 있는 꼬랏 찻차이 홀에서 열린다. 꼬랏 찻차이 홀은 5000석 규모의 경기장이다. 지난해 6월 '2018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대회 한국-태국 경기가 열렸던 곳이다.

이번 결정으로 올 시즌 태국 리그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이 종료된 이후인 2020년 1월 18일 개막해서 3월 29일까지 진행된다.

태국 리그가 다음해 1월 중순에 개막하는 건 초유의 일이다. 그동안 통상적으로 매년 10월 또는 11월 초에 개막을 해왔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주력하는 '동남아시안 게임(SEA GAMES)'이 12월에 개최될 경우에도 대회가 끝난 직후 곧바로 리그를 개막했었다. 올해 필리핀에서 개최되는 '2019 동남아시안 게임'의 배구 경기는 11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열린다.

한국, 태국 등 아시아 국가가 여자배구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2020년 1월 7일부터 12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 한다. 오로지 우승 팀에만 본선 티켓이 주어진다. 이미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한 중국과 일본(개최국 자격)은 이 대회에서 출전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과 태국이 마지막 남은 본선 티켓 한 장을 놓고 '끝장 승부'를 벌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태국이 리그 개막을 최장기간 연기한 것은 도쿄 올림픽 출전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태국 배구계의 지상 목표는 '사상 최초 올림픽 출전'이다. 그 열망 또한 '사상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국 여자배구는 현재 세계랭킹 14위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세계 강팀을 뜬금없이 격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계적인 '도깨비 팀'이다.

그럼에도 태국은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배구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단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 여자배구 인기가 국민 스포츠나 다름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태국은 56년 동안 올림픽 무대를 밟아보지 못한 데 대해 한이 맺혀 있다.

특히 이번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은 '황금 세대' 선수들의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도전이다. 대회도 자국 홈구장에서 열린다. 국제배구 단체 관계자들도 한국보다 태국이 올림픽에 진출하기를 원하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국이 국제대회 등을 자주 개최하면서 아시아 배구계에 투자를 대대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심판진과 경기 운영 측면에서 한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

56년 만에 최초 올림픽 진출... 태국 열망 '상상을 초월하다'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경기장'... 태국 나콘랏차시마 '꼬랏 찻차이 홀' (2018 VNL 한국-태국전, 2018.6.5)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경기장'... 태국 나콘랏차시마 '꼬랏 찻차이 홀' (2018 VNL 한국-태국전, 2018.6.5) ⓒ 국제배구연맹

 
태국이 자국 리그를 통째로 연기하는 비상 처방을 내린 이유는 명약관화하다. 태국 대표팀 선수들의 체력, 컨디션, 경기력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 올리고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는 태국 대표팀 선수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현재 태국 대표팀은 노장인 '황금 세대'가 주축이고, 젊은 세대가 무섭게 성장하면서 신구 조화를 이룬 상태다.

문제는 황금 세대인 센터 쁠름짓(1983년·180cm), 세터 눗사라(1985년·169cm), 레프트 오누마(1986년·175cm), 윌라반(1984년·174cm), 라이트 말리까(1987년·178cm)가 대부분 30대 중반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여기에 레프트 아차라뽄(1995년·178cm), 찻추온(1999년·178cm), 라이트 삠삐차야(1998년·178cm), 센터 탓다오(1994년·184cm), 세터 뽄뿐(1993년·170cm) 등 젊은 세대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현재 황금 세대 선수들은 체력과 부상 관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젊은 선수들도 그동안 많은 국제대회를 연달아 치르면서 부상과 체력 저하로 고전을 해왔다.

태국은 이번에 리그를 연기하면서 대표팀 선수들이 리그 경기에서 체력 저하와 부상을 당할 우려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아울러 긴 기간 동안 오로지 대표팀 훈련과 조직력 다지기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V리그에서 많은 경기를 뛰는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기량과 몸 상태도 치밀하게 분석할 것으로 보인다. 

태국은 또 11월 28일부터 12월 10일까지 열리는 2019 동남아시안 게임에서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을 상대로 실전 경기 감각을 끌어올린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최상의 경기력과 컨디션으로 한국을 상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고 터키 리그, 중단 기간 '한국 V리그의 2배'

태국이 유별나긴 하지만, 다른 국가들도 만만치 않다. 전 세계 여자배구 리그가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대륙별 예선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최고 여자배구 리그인 터키 리그도 도쿄 올림픽 유럽지역 예선전을 앞두고 12월 1일부터 2020년 1월 18일까지 무려 50여 일 동안 리그를 중단한다. 리그 중단 기간이 한국 V리그의 2배에 달한다.

터키 대표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내년 1월 초 유럽지역 예선전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다. 네덜란드, 폴란드, 독일, 벨기에 등 유럽 강호들과 올림픽 본선 티켓 한 장을 놓고 혈전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김연경 소속팀인 에자즈바쉬와 바크프방크 2팀은 12월 3일부터 8일까지 중국에서 열리는 '2019 클럽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한다는 점이다. 또한 에자즈바쉬, 바프크방크, 페네르바체 3팀은 12월 17~19일 사이에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1경기를 치른다.

일정대로라면, 김연경은 클럽 세계선수권 대회가 끝나면 유럽 챔피언스리그 1경기를 위해 중국에서 터키로 갔다가 곧바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대표팀 소집훈련에 참여해야 한다. 한국 나이로 32살인 김연경에게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다.

중국, 올림픽 금메달 위해 '리그 2개월 축소' 파격

중국의 '올림픽 총력전'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중국 여자배구는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이미 확보했음에도 금메달을 따기 위해 올 시즌 중국 리그 일정을 대폭 축소해 버렸다.

지난 시즌 중국 리그는 2018년 11월 8일 개막해서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포함해 2019년 3월 9일에 모든 일정을 마쳤다. 그러나 올 시즌 중국 리그는 11월 2일 개막해서 포스트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포함해 2020년 1월 21일에 모든 일정을 종료한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리그 일정을 무려 2달이나 앞당겨 끝낸다. 대표팀의 올림픽 준비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소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중국 남자배구 리그는 아예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 이후인 2020년 1월 19일에 정규리그를 개막한다. 태국 리그와 똑같은 조치를 취한 것이다.

반면, 한국 V리그는 여자배구의 경우 10월 19일 개막해서 2020년 4월 4일까지 6개월 동안 빡빡한 일정을 치른다.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앞두고 12월 20일부터 2020년 1월 13일까지 25일 동안 리그 경기를 중단한다. 그러나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준비하는 대표팀 소집훈련 기간은 2주도 채 안 될 전망이다.

자만과 방심 '최대 적'... "올림픽 티켓 실패시 후폭풍 상상 초월"

동남아시아 배구 사정에 밝은 한 배구 관계자는 1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태국의 도발적인 올림픽 준비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태국의 조치는 한국을 꺾기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전에 들어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객관적인 전력은 한국이 태국보다 다소 앞서는 건 사실"이라며 "그러나 마지막 올림픽 티켓이 걸린 중요한 대회는 전력 이외의 변수가 작동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태국에서 대회가 열리는 것도 부담이다. 우리가 꼭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든 이기겠지 하는 자만과 방심"이라며 "대한배구협회는 태국 대표팀의 움직임을 철저히 관찰하고, V리그를 운영하는 한국배구연맹(KOVO)과 프로 구단들도 대표팀 선수 관리와 운영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고언했다. 

또 다른 배구 관계자도 "최근 여자배구 인기와 뜨거운 관심도로 볼 때, 올림픽 티켓에 실패할 경우 그 후폭풍은 배구계 전체에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며 "국민적 기대가 높은 상황에서 실패할 때의 파장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각별한 대비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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