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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다합(Dahab)에서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OpenWater)부터 다이브마스터(DM)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의 과정입니다. 물 공포증이 있었던 필자가 2018년 12월 27일부터 2월 19일(55일)까지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 기자말

1. 중도 출수
  
의지의 한국인 그(왼쪽에서 세 번째)와 마하무드(그의 오른쪽) 등 나이트 다이빙 떠나기 전에 서로 의기투합했다.
 의지의 한국인 그(왼쪽에서 세 번째)와 마하무드(그의 오른쪽) 등 나이트 다이빙 떠나기 전에 서로 의기투합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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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 충고대로 이제는 다이빙하면서 사진 찍지 않아요. 아예 들고 가지도 않거든요. 좀 더 실력을 키워서 멋진 모습으로 찍으려고요."

붕붕 떴던 남자가 클래스 룸에 있는 내게 와서 말했다.

"그래그래 잘했어. 나도 물속 사진이 한 장도 없어. 어드밴스 교육 마지막 날 센터에서 찍어주긴 했는데 엉거주춤한 자세라 마음에 들지 않아. 좀 더 잘했을 때 찍으려고 아껴두고 있어."

그가 붕붕 뜰 때 그의 오른 손목에는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사진을 찍기도 했다. 나는 그의 손목에 매달린 카메라를 빼앗아서 던져버리고 싶었다. 마하무드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가면 블루홀에 가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친구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 하고 장비 세팅을 하러 내려가자 마하무드가 그를 알아보고는 내게 와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너 아니? 전에 붕붕 떴던 남자가 다시 왔어."

블루홀 다이빙 하던 날 나는 붕붕 떴던 그 남자를 그만 담당하기로 했다. 우리는 짝을 이루어 무사히 25m 수직 하강에 성공했다. 미리 호흡법을 가르쳤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사건은 몇 분 지나지 않아서 터졌다. 7분 정도 다이빙을 했을 때였다. 한 번 떠오른 그를 끄집어 내렸는데 웬걸, 또 떠올랐다. 어떻게 그 깊은 수심에서 그 몸무게와 웨이트로 뜰 수 있단 말인가.
 
블루홀 출수할 때.
 블루홀 출수할 때.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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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도 그를 잡으러 가다가 수면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래를 보니 한없는 깊은 물속이었다. 마하무드 팀은 저 멀리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 친구를 계속 호흡시켜 가라앉힐 즈음이면 마하무드 팀을 완전히 놓칠 것 같았다. 이 친구는 거의 패닉 상태였다. 빠른 결정을 해야 했다. 밖으로 나가느냐 마하무드를 따라가느냐.

BCD에 공기를 넣고 다이빙 12분 만에 출수했다. 나와서 보니 그의 호흡기가 찢어져 있었다. 자꾸 물이 들어왔는데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줄 알고 호흡기만 깨물었다고 했다. 호흡기가 잘못되면 보조호흡기로 교체하면 되는데 그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그저 참기만 했다. 내게 미안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빠른 출수는 잘한 일이었다. 마하무드도 내 판단이 옳았다고 했다. 조금만 더 가서 떠올랐다면 산호초 군락이 많아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2. 의지의 한국인
 
블루홀에서 만난 즐거운 여행객.
 블루홀에서 만난 즐거운 여행객.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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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걱정하는 마하무드에게 그 친구가 했던 말을 해주었다. 그는 블루홀 사건 후에 다음날 귀국하기로 했는데 귀국 날짜를 미루었다. 자신이 기초 교육을 받았던 센터에서  호버링 등 스킬 교육을 신청해서 실력을 쌓았다.

블루홀에서 일찍 출수했던 그날 우리는 많은 대화를 했다. 그는 손을 떨고 있었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레귤레이터 주호흡기 스커트 부분이 찢어져서 물을 흡인한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제일 그를 괴롭힌 것은 자괴감이었던 것 같았다. 나 또한 그를 좀 더 잘 살피지 못한 미안함이 있었다.

나는 내 경우를 먼저 말했다. 물 공포증과 오픈워터 교육 첫날 5m 수심에서 올라왔던 일 등. 효과가 있었다. 그가 맞장구쳤다.

"저도 물 공포증이 있고 5m 수심에서 저만 올라왔다니까요? 가슴이 정말 답답했거든요."

"그렇지? 그래서 나는 호텔에 돌아가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아니? 내가 왜 이 짓거리를 할까, 내가 내 돈 내놓고 사서 뭔 고생이야. 당장 때려치우고 싶었다니깐?"

"저도 그랬다니깐요."
 
아름다운 다합의 물속.
 아름다운 다합의 물속.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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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처음으로 낄낄 거렸다. 그리고 내 실수담과 지금은 물속을 사랑하게 된 과정을 말했다. 그는 진지했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을 다 알 수 없어 그에 대한 미련은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남아 있었다.

만약 그가 이곳에서 물 공포증을 이기지 못하고 귀국한다면? 다이빙뿐만 아니라 다른 일을 했을 때에도 실력이 모자라는 상황이 닥치면 금세 포기하고 말지도 모른다. 매사에 포기하는 패배주의 심리 그리고 자기 합리화가 그를 잠식할지도 모른다(아, 이런 이유가 나를 이곳에서 견디게 하는 힘이기도 했다).

"일단 우리, 포기는 하지 말자. 늦게 가더라도 꾸준하면 목적지에 도착하더라. 나도 이렇게 견디잖아. 라이트하우스나 마쉬라바 같은 곳에서 좀 더 연습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충고를 했다. 생각 많은 그는 펀 다이빙에서 돌아오면 자신이 사용했던 장비세척을 하는데, 그곳에 오지 않았다. 며칠 뒤인 오늘에서야 나이트 다이빙을 간다고 내게 인사를 했던 것이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마하무드가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그 친구 버디는 나야!"

그 친구 버디는 마하무드였다. 나이트 다이빙이 끝난 뒤 까다로운 마하무드에게 실력이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다. 내가 칭찬받은 것처럼 가슴이 따뜻해졌다.

3. 열심히 하면 얻게 되는 것들
  
보트 다이빙 갔을 때의 가랄(왼쪽)과 이메드(오른쪽).
 보트 다이빙 갔을 때의 가랄(왼쪽)과 이메드(오른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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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연습한 결과 나도 칭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가이드인 가랄과 함께 나이트 다이빙을 다녀온 다음 날 가랄이 줄리아에게 가서 물었단다.

"도대체 노라(내 애칭)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일반적으로 다이빙 실력은 한꺼번에 확, 좋아진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며 줄리아가 말했다.

마하무드도 내게 놀란 적이 있다. 그와 센터 앞바다로 다이빙을 갔을 때였다. 출수했을 때 갑자기 내게 공기가 얼마 남았냐고 물었다. 60이라고 하자 그가 내 게이지를 직접 확인까지 했다. 다이빙 중간중간 공기 체크를 했을 때 늘 내가 그보다 공기를 많이 남기더란다. 펀 다이빙을 다녀온 어느 날 J도 내게 한 마디 했다.

"쌤, 이제 알겠어요. 쌤이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규만큼이나 잘하셔요."

시간과 노력이 쌓여 실력은 늘어갔지만 치러야 할 테스트는 호랑이가 나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것처럼 서 있었다.  
다합의 새벽거리.
 다합의 새벽거리.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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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태그:#스쿠버다이빙, #다이브마스터, #이집트 , #다합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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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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