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진 전주 KCC 감독

전창진 전주 KCC 감독 ⓒ 연합뉴스/KBL제공

 
전창진 전주 KCC 감독과 현주엽 창원 LG 감독은 나란히 올시즌 프로농구 개막을 앞두고 '화제의 인물'로 주목을 받았다. 전창진 감독은 2015년 KBL을 강타한 승부조작 파문에 휩싸여 한동안 농구계를 떠났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무려 4년 만에 농구계로 복귀했다. 현주엽 감독은 현역 지도자로는 드물게 TV 예능프로그램에 고정출연하며 '먹방의 달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감독들의 화제성에 비하여 정작 소속팀은 나란히 올시즌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되었다는 것도 기묘한 공통점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시즌 초반이지만 두 감독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전창진이 이끄는 KCC는 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4경기에서 벌써 3승(1패)을 수확하며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반면 현주엽 감독의 LG는 4연패 수렁에 빠지며 고양 오리온(3패)을 제치고 단독 최하위로 떨어지며 대조를 이뤘다.

두 감독의 역대 첫 맞대결이 열린 지난 11일 전주 경기에서는 양팀의 상반된 현 주소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KCC는 예상을 깨고 LG를 공수에서 완전히 압도하며 81-59로 완승을 거뒀다. 3쿼터까지 이미 30여점의 점수차가 벌어질만큼 일찌감치 승부가 갈린 일방적인 경기였다. 4쿼터에는 아예 외국인 선수들을 불러들이고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하는 여유를 보였을 정도였다.

시즌 초반 KCC의 사정은 결코 좋은 편이라고 할수 없다. 에이스 이정현이 농구월드컵 차출기간 부상을 안고 돌아와 정상 컨디션이 아닌데다 가드 유현준이 허벅지 부상으로 당분간 전열에서 이탈했다. 리온 윌리엄스-조이 도시의 외국인 선수진은 수비와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지만 공격력은 크게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이고, 하승진 은퇴 이후 확실한 토종 빅맨은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우승후보로 꼽히는 서울 SK를 개막전에서 연장접전 끝에 잡는 이변을 연출했고 원주 DB를 상대로도 석패했지만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KCC의 선전은 전창진 감독의 능력을 빼놓고 설명할수 없다는 평가가 많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수비 기복이 심하던 지난 시즌과 달리 올시즌의 KCC는 높이는 다소 낮아졌지만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빠른 농구로 팀컬러의 변화가 돋보인다. 이정현이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님에도 유현준, 김국찬, 송교창, 정창영 등 다른 국내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몫을 다해주며 공수에서 끈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현준이 부상으로 이탈하고 치른 첫 경기인 LG전에서 상대 공격의 핵인 김시래를 '깜짝 카드' 최승욱을 내세운 수비작전으로 완벽하게 봉쇄하며 낙승을 거둔 장면은 전창진 용병술의 백미로 꼽힌다.

선수 전원이 한발 더 뛰면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농구는 전창진 감독이 부산 KT를 이끌던 초기 시절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다. 전감독 역시 4년간의 공백에도 볼구하고 경기 흐름을 읽는 능력이나 전술적 감각에서 젊은 감독들에게 크게 뒤처지지 않아보인다.

전감독은 승부조작 의혹에서는 무혐의 판정을 받으며 합법적으로 농구계에 복귀했지만 아직 그를 바라보는 농구팬들의 시선이 우호적이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많은 팬들은 전창진 감독이 과거 행적에서 보여준 인성이나 태도 문제를 놓고 의구심을 품고 있다. KCC 구단 역시 전창진 감독 영입 과정에서 잡음이 많았던 데다, 지난 여름 오랫동안 팀에 기여한 하승진-전태풍과 결별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리빌딩으로 '레전드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비판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도덕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일단 초반의 경기력이나 팀성적만 놓고봤을 때는 KCC가 전창진을 영입하고 리빌딩을 선택한 것 자체는 지금까지 나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전감독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농구 감독으로서의 역량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평가도 조금씩 나온다.

 
 10일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창원 LG 세이커스와 원주 DB 프로미 경기. LG 현주엽 감독이 경기 중 자신에게 온 농구공을 들고 있다.

현주엽 감독 ⓒ 연합뉴스

 
반면 올해로 LG와의 계약 마지막 시즌을 맞이하는 현주엽 감독은 초반부터 위기에 봉착했다. 첫 경기였던 삼성전에서 연장접전 끝에 1점차로 석패하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이후 경기력이 오히려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최근 SK와 KCC전에서는 2경기 연속 20여점차로 대패했다.

간판스타 김종규의 원주 DB 이적으로 인한 공백이 큰 가운데 국내 선수와 외국인 선수들간의 부조화가 심각하다. 그나마 분전하던 가드 김시래마저 KCC전에서 꽁꽁 틀어막히자 LG는 종료 직전까지 힘 한 번 못쓰고 농락당했다. 답답했던 현감독은 이미 승부가 기운 4쿼터에 불필요하게 심판에 항의하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기도 했다. 풀리지 않은 팀 경기력에 감독부터가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다는 증거다.

현주엽 감독은 각종 미디어를 통하여 농구 해설위원과 예능에서의 활약 등으로 많은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던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 달리, 정작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벌써 올해로 감독 3년차가 되었는데도 자기만의 전술적 색깔이 보이지 않고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임기응변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은 개선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KCC전에서는 4년이나 현장을 떠나 있었던 전창진 감독과의 지략싸움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냉정하게 말해 두 감독의 역량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만했다.

설상가상으로 LG의 다음 상대는 우승후보로 꼽히는 원주 DB다. 녹취파동 끝에 현주엽 감독과 어색하게 결별했던 김종규가 FA 이적이후 창원을 처음 방문하는 경기이기에 더 얄궂은 시점이다. 분위기 반전이 시급한 현주엽 감독의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아직 시즌 초반이기에 평가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농구인이라면 농구로써 실력을 증명하는 게 가장 우선순위라는 점이다. 인고의 세월을 거쳤지만 농구로써 다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전창진 감독과, 방송으로 사랑받았지만 정작 본업인 농구에서는 체면을 구기고 있는 현주엽 감독의 엇갈린 행보는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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