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은 2017년 연재를 시작한 '저질체력 미대언니의 쿰부 히말라야 기부트레킹'의 후속 글로 다시 이어 씁니다. - 기자말

​약속은 지켰지만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소신에게는 아직 3개의 패스가 남아있소이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있던가. 짓은 칼라파타르는 고쿄와 풍광이 다르지 않다며 쉬엄쉬엄하라고 꼬셨고, 우리는 꼬임에 넘어갔다.

나는 당연지사 꼬임에 넘어갔다. 3pass/2Ri 중 1pass 1Ri를 스킵 한 형석이의 맘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형석이도 체력적으로 무리가 오는 듯했다. 우리는 로부체 롯지에 다시 돌아왔다.

로부체 롯지는 단열 시공이 잘 되어 있어 다른 롯지보다 훨씬 따듯했다. 만사 허망한 이타의 왕 언니는 귀국이고 하산이고 이곳에 눌러앉아 인생의 의미를 되찾고 싶었다. 하지만 이타의 왕 언니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촐라 패스는 꼭 넘어야 할 장소라고 다짐했다. 칼라파타르를 패스한 것이 형석이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했다.

​히말라야 산의 날씨는 오후보다 오전이 더 맑다. 콘트라스트가 쨍한 날씨였지만 혹시 모르니 우리는 모모(만두) 도시락을 싸 들고 일찍 출발했다. 촐라 패스는 깎아지른 절벽 같은 눈길을 계속 걸어가야 한다. 크레바스도 곳곳에 숨어 있어 주의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아이젠을 끼고 가야 하는 길 같은데 짓과 앞선 다른 유럽 무리들은 그냥 전진만 했다. 심지어 팔다리가 젓가락처럼 얇은 유럽 남자아이는 발가락이 다 뚫려있는 운동화도 아니고 샌들도 아니고 양말도 아닌 정체 모를 신을 신고 계속 미끄러지며 네 발로 걷는 중이었다.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칼을 한줌 입에 넣고는 네발(?)로 걷는 폼이 흡사 타잔 같다.
 
    촐라패스
  촐라패스
ⓒ 한유사랑

관련사진보기

 
허망이고 삶의 의미고 빙판 절벽을 걷다 보니 모두 사치다. 아니, 아이젠이 없으면 모르지만 왜 어째서 그냥 걷는 것인가! 발을 조금만 잘못 딛어도 천 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인데 이게 뭐 하는 시추에이션이냐구.

"짓! 나는 그냥은 더 못 가겠어! 아이젠을 끼고 가야게쒀!"

앞선 짓에게 쩌렁쩌렁 외쳤다. 아 좀 진상스럽지만 어쩌겠는가, 여기서 죽을 순 없잖아? 짓은 어깨를 으쓱하며 뭐 이런 곳에서 아이젠을 끼려고 하냐는 듯이 날 쳐다봤다. 살짜쿵 짓의 눈빛을 피하고는 아이젠을 꺼내 신는 것을 도와달라 부탁했다. 가파른 빙벽에서 낑낑대며 아이젠을 끼고 나니 발에 모터를 단 것 같았다. 그냥 갈수 있다던 형석이도 곧 따라 신었다.

아이젠이 가방에 달려 있는데도 안 끼고 걷던 유럽 타잔은 여전히 얼굴을 땅으로 처박고 네 발로 눈벽을 헤치며 전진 중이었다. 저 친구는 왜 이렇게 낯이 익지 하고 있는데 형석이가 그 친구에게 소리쳤다.

"헤이 지저스! 유 햅투 체인지 유얼 슈즈!"

오! 그래 유럽 타잔은 예수님을 닮았구나! 머리칼과 눈을 계속 씹어먹던 타잔은 본인에게 하는 이야기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오케이"를 반복했다. 안 괜찮아 보여 타잔... 아이젠을 낀 우리는 뛰다시피 촐라 패스의 눈 절벽을 돌파했다. 이 정도면 뭐 괜찮은데! 하며 신나게 걷다 보니 눈앞에 돌벽이 서 있다. 드디어 다 왔나 보군.

"짓? 여기가 정상인가? 어디가 길이지?"

살짝 뒤처진 짓에게 소리쳐 물었다.

"거기 거기 위로 가 위로!"
'뭔 소리 하는 거래 이아쟈씨가.. 여기 벽이야 벽.'


​거의 직벽에 가까운 돌벽 위를 쳐다보니 사람들의 머리가 보인다. 아래를 보며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는데 들릴 리가 있나. 왓왓을 외치니 손짓을 한다. 올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뭐지... 저승에서 온 사자들인가. 왜 손짓을 하고 난리십니까 이 양반들아.

저승 양반네들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짓이 도착해 나를 재촉한다. 올라가란다. 뭐요? 뭐긴 뭐야 그냥 올라가란다. 루프, 하네스(기저귀 아님) 없이 이런 직벽을 오르라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지만 이제 와서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암벽등반을 하게될줄이야
  암벽등반을 하게될줄이야
ⓒ 한유사랑

관련사진보기

 
사실 히말라야를 생각하기 시작할 때부터 암벽을 탔다. 11m짜리 건물 외벽 클라이밍도 나가보고 산에서 루프를 이용해 암벽을 오르는 브리티시 락 클라이밍도 해봤으니깐 괜찮을 거라고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그래! 할 수 있어!'

할쑤있어! 할쑤있어! 입으로 구호를 외치고 무릎으로 기고 팔꿈치로 찍어가며 올라가는데 다리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전혀 1도 신이 나지 않은데? 나는 너무나 심각하고 진지한데? 웬걸 다리가 혼자 난리 부르스 쓰리 스텝이 났다.

"여길 어떻게 오르라는 겁니까! 이러다가 죽겠습니다! 이거 실화 맞습니까!"

이판사판 아무 말이나 되는대로 까악까악 소리를 내지르며 훌라춤을 추는 쓰리 스텝 다리로 스텝을 밟았다. 어찌어찌 베이스캠프보다 조금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촐라(5420m)의 정상에 올랐다. 촐라의 정상에서 촐라 비정상이 되어버린 내 멘탈과 아직 신이 난 쓰리 스텝스.(제발 진정해 좀 제발)

해발 5000m에서 암벽등반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그래도 올라는 왔다. 팔꿈치고 정강이고 멀쩡하지 않을 것 같지만 오르고 나니 살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이 암벽등반 코스를 미리 알았더라면 지레 겁을 집어먹고 더 떨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조금 진정된 훌라훌라 쓰리 스텝을 가지런히 돌 위에 모아 올리고는 차가워진 모모(만두)와 소시지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며 경치를 보는데 하늘이 심상치 않다.
  
    몰려드는 구름
  몰려드는 구름
ⓒ 한유사랑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