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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공감' 기획은 환경운동연합의 연속 강연 ‘먹입사(먹고, 입고, 사랑하는 것)’와 함께하며 11월 5일까지 일주일에 한 차례씩 이어집니다. [편집자말]
지난 10일,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홀에서 '인류세, 플라스틱 화석을 남길 것인가'란 주제로 EBS 최평순 PD가 강연을 했다.
 지난 10일, 서울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홀에서 "인류세, 플라스틱 화석을 남길 것인가"란 주제로 EBS 최평순 PD가 강연을 했다.
ⓒ 진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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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대멸종의 6번째 주인공은 인류다?' 이 질문을 입증한 프로그램이 있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3부작이다. '인류세'(Anthropocene)는 인류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준 현재의 지질학적 시기를 의미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의 용어다.

2009년 국제지질연합(IUGS) 산하의 국제층서위원회(ICS)는 인류세 연구를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인류세워킹그룹(AWG)'을 만들었다. 지난 5월 AWG는 20세기 중반을 인류세 시작으로 보자는 안을 통과시켰고 2021년에 국제층서위원회에 공식 제안할 예정이다. 

따라서 인류세는 아직 새로운 지질시대를 지칭하는 말로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인류세의 등장에 국제 사회가 주목하는 건, 인간의 잔혹한 미래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류세의 시작은 인간의 최후를 뜻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인류세에서 인간은 쇠퇴의 길을 걸을 것이란 게 학자들의 예측이다, 그리고 이때 대멸종 6번째가 일어나 지구의 주인이었던 인간이 사라질 것이란 거다.

현재는 '홀로세'(Holocene)이다. 약 1만 년 전 시작됐으며 가까운 미래를 포함한 현재의 지질 시대를 일컫는다. 홀로세에선 지구 대멸종 5번째가 일어났다. 6500만 년 전, 지구의 주인이었던 공룡을 포함한 76%의 종이 사라졌다. 인류세에서 학자들은 인간의 자연환경 파괴로 인간을 포함한 대멸종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렇다면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은 후세에 무엇을 남길까?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3부작을 연출한 최평순 피디(PD)는 '닭 뼈나 플라스틱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 이유를 설명한 게 <인류세> 1부 '닭들의 행성'과 2부 '플라스틱 화석'이다. 3부 '안드레의 바다'는 현재 지구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인도네시아의 붕긴섬(Pulan Bungin)을 통해 이야기한다.

인류의 차가운 미래는 인간이 자초한 결과다. 최 피디가 <인류세> 3부작을 제작하면서 현장에서 목격한 진실은 그렇다. 그는 지난 10일, 서울시 종로구 누하동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홀에서 열린 '인류세, 플라스틱 화석을 남길 것인가'란 공개 강연에서 이런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했다.

때론 현실이 더 잔혹하다. 이날 그는 인류세와 6번째 대멸종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지금 한 생물 종이 모든 생물 종을 멸종시키는 전대미문의 사건 앞에 놓여있다"라며 "인구가 줄지 않는 한, 인류는 멸망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46억 년 지구 역사를 뒤집은 인류세
 
 '인류세, 플라스틱 화석을 남길 것인가' 공개 강연 참석자들
  "인류세, 플라스틱 화석을 남길 것인가" 공개 강연 참석자들
ⓒ 진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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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Anthropocene)란 말은 어렵다. 과학적으로도 따져도 너무 광범위한 개념이고, 이 말을 아는 사람들도 적다. 프로그램을 만들 때도 '인면조는 아는데 인류세는 뭐냐', '환경과 관련된 세금이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안 알려졌지 해외에선 '4차 산업혁명'이란 말보다 잘 알려져 있다. '구글 트렌드'라고 검색어 순위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전 세계에서 구글 사용자가 어떤 단어를 많이 검색했는지 분석해주는 것이다. 여기에 '인류세'와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검색어 추이를 살펴보면, '인류세'가 월등히 높다. '4차 산업혁명'을 많이 검색한 나라는 동남아와 남아공,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이명박 정부 때 등장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로 이어지면서 정부 주도로 선점한 키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튼 인류세란 말을 시청자들이 잘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는 생각으로 <인류세> 3부작을 만들게 됐다. 궁극적으론 시청자들에게 소행성 충돌에 비견될 정도로 지구를 바꿔버린 인간, 46억 년 지구 역사를 뒤집은 인류세에 대한 과학적 접근으로 인간과 지구 관계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노벨화학상 수상자 폴 크뤼천(Paul Crutzen)이 지난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다. 재미있는 게 이 용어가 지질학적 단어인데, 폴 크뤼천은 대기학자라는 것이다. 어떻게 된 사연인지 그를 만나 직접 사연을 들었다.

폴 크뤼천이 말하길, 당시 한 학회에 참석했는데 학자들이 모두 '홀로세'(Holocene) 이야기만 하더란다. 그러나 그는 지금의 지구가 이전과 반드시 구분돼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따지듯이 '우리는 홀로세에 살고 있지 않다'라고 말했고, 주변에서 '그럼 무슨 세대냐'고 물었단다. 그때 마침 입에서 나온 말이 '인류세'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신보다 먼저 '인류세'란 낱말을 쓴 사람이 있었단다. 수소문해 연락하니 1명은 당시 활동을 안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이 단어의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의 허락을 받고 단어 사용의 저작권을 확보해 과학 저널에 '인류세'에 대해 기고했고, 이때부터 사용되게 됐다는 것이다.

<인류세> 3부작에 인류는 없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2부 '플라스틱 화석' 갈무리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2부 "플라스틱 화석" 갈무리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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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은 총 3부작이다. 1부 '닭들의 행성'에선 인류세 개념을 지질학적으로 소개한다. 제목을 '닭들의 행성'이라고 한 것은 전 세계 인구가 70억 명인데, 한해 도살되는 닭들은 약 650억 마리란 조사를 알게 돼 짓게 됐다.

닭은 새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인도네시아의 야생 새를 인간이 길들이고 기르면서 지금의 닭과 같은 모습이 됐다. 태초의 닭과 지금의 닭은 뼈의 크기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두 배 이상 커졌다. 인류가 한 종을 이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1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오늘날 우리가 공룡 뼈로 중생대를 판별하듯 후세는 닭 뼈로 인류세를 감별하게 될 것이란 메시지였다.

1부에선 인간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담았다. 여기서 한가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인도 델리의 불꽃 축제 현장을 찾아갔을 때다. 인도는 미세먼지가 심각하다. 불꽃 축제를 앞두고도 그랬다. 하늘이 노랬다. 스마트폰 앱으로 대기오염을 측정했다. PM2.5 230µg/m³ 수치가 떴다.

그리고 불꽃 축제가 열린 뒤에 다시 한번 측정했다. 하루 만에 PM2.5 2000µg/m³가 됐다. 수치를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믿을 수가 없어 화면을 캡처했다. 인간은 힘을 나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도 델리에 있는 쓰레기 매립지 3곳을 찾아갔다. 거긴, 인류세가 시작했음을 알리는 증거였다.

2부 '플라스틱 화석'은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다. 10년 전 대학생 시절에 '텀블러 라이프'라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플라스틱과 일회용 종이컵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시 누구나 종이컵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다. 텀블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었다.

때마침 스웨덴 코펜하겐에서 기후협약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이 겹쳐지면서 환경 다큐멘터리 '텀블러 라이프'를 만들게 됐고,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됐다. 그 후 EBS에 입사해 '하나뿐인 지구' 프로그램을 맡아 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던 게 2부 '플라스틱 화석'의 밑거름이 됐다.

2부 첫 장면에 바다거북이 해부 장면이 나온다. 이걸 촬영하러 부검하는 날에 맞춰서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에 갔다. 하지만 가면서 걱정했다. 과연 몇 번이나 해부하는 장면을 촬영해야 바다거북이 배에서 플라스틱이 나오는 걸 촬영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걱정과 달리 첫 방문 날 7마리의 바다 거북이를 해부했는데 6마리의 배에서 플라스틱이 나왔다. 촬영도 하루 만에 끝났다. 걱정과 달리 일은 술술 풀렸지만 아주 씁쓸한 경험이었다.

이런 경험은 또 있다. 북태평양의 쓰레기의 종착점 하와이 카밀로 해변에서 한국어가 적힌 쓰레기를 발견했을 때다. 이때도 혹시 못 발견하지 않을까 했는데, 촬영 10분 만에 한국어가 적힌 쓰레기를 발견했다. 무려 20년이나 된 쓰레기였다. 촬영은 예정대로 잘 됐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3부 '안드레의 바다'는 지구의 축소판인 인도네시아 붕긴섬(Pulan Bungin) 이야기다. 인구 초과밀 지역으로 쓰레기로 몸살을 겪고 있는 모습이 인류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집약해 놓은 듯했다. 이 섬을 발견한 것은 환경운동연합의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다. 여의도 1/10 크기의 섬에 집과 사람밖에 없는 모습이 현재 지구를 축소해놓은 것과 같았다. 섬을 소개한 홍선기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더 흥미로운 섬이었다. 그렇게 붕긴섬으로 갔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상상하며 붕긴섬에 갔다. 하지만 기대와 달랐다. 바다가 너무 탁해서 물속 촬영이 힘들 지경이었다. 가끔 자연 다큐멘터리들이 연출 논란이 되는데, 여긴 실제 모습이 더 처참했다. 촬영하면서도 마음이 안 좋았던 기억이 있다. 이상 '인류세 3부작'에 대해 짧게 설명한다.

플라스틱, 화석이 되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2부 '플라스틱 화석' 갈무리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2부 "플라스틱 화석" 갈무리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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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 주제인 플라스틱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겠다. 작년에 중국에서 쓰레기 수입을 안 하면서 대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중국은 지난 2017년부터 이듬해인 2018년도에 해외 쓰레기 반입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당시 우리나라 정부와 언론은 관심이 없었으나 영국의 BBC 등에선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다가 2018년 국내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자들이 아파트 등에서 내놓은 비닐과 플라스틱 등의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아 쌓이면서 문제가 됐다. 중국이 해외 쓰레기 반입을 하지 않으면서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자 입장에선 비닐과 플라스틱을 수거하는 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전엔 소각 비용이라도 벌었는데, 이것마저도 끊긴 뒤였다. 그렇게 아파트 공터 등에 쓰레기가 쌓이게 됐고, 그제야 언론이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환경부도 대책을 내놓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다. 경북 의성군에 있는 쓰레기 산을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이게 왜 생겼냐면, 재활용 쓰레기 수거업자들이 돈을 받아서 제대로 쓰레기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러지 않고 몰래 쓰레기를 버리고 도망가면서 생긴 것이다. 게다가 동남아 나라에서 지금은 쓰레기 수입을 하지 않으니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이다.

물론, 각 가정에선 분리수거를 잘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독일과 함께 세계에서 분리수거를 잘하는 나라다. 하지만 문제는 분리수거한 물품들이 재활용되지 않는 데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이다.

먼저, 제대로 분리수거가 되지 않는다. 페트(PET)병만 하더라도 라벨을 분리해서 버려야 재활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쓰레기나 다름없이 처리된다.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종이상자에 붙은 테이프도 떼어내야지 재활용되는데, 이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며, 규격이 달라 일반 쓰레기로 처리돼 소각되는 비율도 높다.

끝으로 강연을 정리하면 이렇다. 일부 학자는 인류세를 인류세라고 부르면 안 된다고 한다. 자본주의세라고 말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다. 결국에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이런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편하게 돈만 있으면 모든 걸 누리는 시대다. 이런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물론 절망적인 상황만 있는 건 아니다. 환경단체 등에서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 등을 꾸준히 하면서 변화가 생기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인터넷에선 바다거북이 코에 꽂힌 빨대를 뽑으면서 코피가 쏟아지는 영상이 바이럴(입소문)되면서 크게 화제가 돼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도 했다.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다. 우리 스스로 너무 심하게 자책할 필요는 없다. 환경 문제를 따지면, 우리 모두가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피해자이기도 하다. 예로 1950년 플라스틱이 처음 사용됐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을 재활용했다. 그런데 기업들이 광고를 통해 플라스틱 제품을 한 번 쓰고 버리고 일회용이라고 홍보하면서 대중들의 인식을 바꾼 것이다. 우리도 자본주의 시스템에 피해자란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류에게 희망이 잘 보이진 않는다. 이런 내용을 담아 오는 2021년에 <인류세 시즌2> 5부작을 내놓을 예정이다. 누군가는 너무 비관론적 관점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지구 공감 ②편은 오는 17일 열리는 베지닥터 이의철 사무국장의 '아직도 채식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란 주제의 강연이다.

태그:#인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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