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스페인의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세계 곳곳에서 펼쳐진 '직접 정치' 실험은 정치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때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밥 먹듯이 하는 일상의 한 부분임을 보여줬다.

노원에서도 대한민국 최초로, 표로만 취급되던 주민들이 자신이 선출한 정치인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협상하고 쟁취하는 새로운 정치방식을 선보인다. 오는 13일 열리는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입법과 주민요구안 실현을 위한' 노원주민대회>다.

학생, 택배기사, 택시 운전사, 노동조합 대표자, 정당인, 노점상, 주민, 종교인까지... 노원에서 그저 '평범한' 얼굴로 '평범한' 일상을 영위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외친다. '우리가 직접 정치하자!'고. - 기자말


"정치는 나의 생활을 바꿉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노동자입니다. 노동자에게 정치는 임금이고, 복지고, 노동조건인 거죠. 그래서 우리 삶에 정치는 꼭 필요합니다. 더는 터부시하지 말고, 우리가 정치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 들어요. 노원주민대회가 그 첫걸음입니다."

진보정치 20여 년 역사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몸을 대고, 돈을 대고, 표를 대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노동자가 직접 후보가 되기도 했지만, 대다수 노동자는 몸과 돈과 표를 대는 대상이 '노동자 후보'로 바뀌었을 뿐,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되진 못했다.

강창곤 보건의료노조 원자력의학원지부장은 "노동자가 지역 차원의 자기 조직을 가지고, 일상적으로 지역 의제에 개입해야 지역 선거에서도 계급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평했다.

강 지부장은 그러기 위해서 '지역 연대 강화'와 '노정 협의체 구성'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직위는 '노정 협의체 구성 요구'가 포함된 '노원지역 노동조합 공동요구안'을 정해 구청장, 국회의원과 협상하겠다는 계획이다.

다음은 강창곤 지부장과 일문일답.

"노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조합 만들어 국회의원과 교섭하고 싶어"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는 강창곤 지부장(오른쪽)
 노원주민대회 조직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는 강창곤 지부장(오른쪽)
ⓒ 김선필

관련사진보기

-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보건의료노조 원자력의학원지부장 강창곤입니다. 노원에 산 지는 20년 차고요, 현재 노원주민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 노원은 풀뿌리 활동이 발달한 동네라고요.
"네. 50여 개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정당, 노점상단체 등 여러 단체가 존재합니다. 그 단체들이 '노원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로 묶여 여러 사안에 함께 대응하고 있지요. 이번 노원주민대회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도전이에요. 기존 공동행동에 더해, 일반 주민과 청소년 모임, 택배 노동자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까지 망라되었죠. 거기다 우리의 요구를 직접 만들고 노원구의 정치인, 지자체에 직접 요구하는 건 처음입니다."

- 처음 있는 시도이다 보니 첫발을 떼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 민중당 노원구위원회가 제안해주셨을 때는, '너무 이상적이지 않나? 뜻은 좋지만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컸어요. '직접정치'는 모두가 좋은 거로 생각하지만, 대의정치에 익숙한 현실에서 참여를 끌어내는 게 쉽지 않잖아요. 촛불 이후에 여러 직접정치를 위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유의미한 결실을 보지는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반신반의였죠."

- 지금도 반신반의하시나요?
"
지금은 '실제로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조직위에 속한 사람들의 열정과 의지가 굉장하고, 주민들과 노동자들 반응도 뜨거워서 '이 사람들과 함께라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기대가 너무 커져서… 혹시나 실망하게 될까 봐 '첫술에 배부르랴' 하면서 욕심을 누르고 있습니다. (웃음)"

- 원자력의학원지부는 노원에서 가장 큰 노동조합이잖아요. 선거 때마다 여러 요구가 많았을 것 같은데.
"노동조합은 일상적으로 산별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노조로는 잘 뭉쳐지지만, 선거가 오면 지역색,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제각각 투표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급투표로 제대로 심판하지 못 하는 일이 십 수년간 반복되어왔어요.

노조를 하다 보면 정치권과 교류도 있습니다. 조합원이 모이는 자리가 있으면 많이들 참석하죠. 선거 때도 찾아오고요. 그런데 그때 뿐입니다. 열심히 하는 분들도 많지만… 항상 목마르고 허기졌어요.

노원주민대회는 노원주민, 노원의 일하는 사람들의 존재의미를 올려세우는 계기가 될 겁니다. 주민이 선거 때만 찾아뵙는 아쉬운 존재가 아니라, 더 나은 노원을 위해 항상 함께하고 고민을 나누는 존재임을 선포하는 자리니까요. 우리 투표로 선출된 구청장·국회의원 모두 더 이상 본인들 급할 때만 귀 기울이는 척하는 식으로는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 노동자가 정치의 주인이 되려면 '지역 중심성', '지역 통제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네. 우선은 지역 내 다양한 노동자들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봐요. 주민대회 조직위에 참여하면서 지역의 노조들, 다양한 형태의 노동에 우리(원자력의학원지부)가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습니다. 사실 병원 노동자의 특성상 병원 안에 갇혀있기 쉽거든요.

특히 택배 노동자들 7시간 공짜노동 문제. 너무 당연한 일인데 절박하게 싸워야만 하는 현실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티브로드 노동자 투쟁, 인덕대 청소노동자 투쟁 등 함께 힘 모아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공부하면서 알바하는 청년들, 노동조합에 속해있지 않은 노동자들, 노원에 거주하는 노동자를 어우르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주민대회를 거치면서 노원 내의 모든 일하는 사람이 하나의 노동조합을 구성해 구청, 노원 국회의원과 교섭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노원지역 노동조합 공동요구안' 핵심 요구인 '노정교섭 협의체'는 반드시 했으면 좋겠어요. 개별 사업장마다 각이한 요구도 존재하겠지만, 지역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어 함께 협의할 필요가 큽니다."

- 지역에서 진보정치 역사를 지켜보고 또 참여도 하셨을 거 같습니다.
"
민주노동당 때는 정말 희망찼죠. 처음엔 국회 앞에서 투쟁하면서 '저 안에 우리 편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단 한 명'이 소원이었는데 10명이나 들어갔으니, 너무나 희망이 컸습니다.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고요.

그런데 갈수록 서로 분열하고, 헤어지고, 당이 해산되기까지 했어요. 너무 아팠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며 진보정치는 끝났다고 생각했고 지금까지 정당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직접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예전 기억이 많이 나더라고요. 민주노동당 때 느꼈던 희망이 다시 느껴지고… 그래서 주민대회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의지가 높아졌지요."

- 어느 수준이 되면 '제대로 했다'고 평가 하실런지요?
"우리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지역 정치인이 주민요구안을 이행하는 정도에 따라 당락을 결정짓는 수준까지 우리 힘을 키워야 해요. 정치인들이 '주민대회에 가고 성실히 임했더니 당선되고, 주민대회 안 갔더니 떨어졌다' 하는 수준까지 우리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죠. 몇 년이 걸리더라도, 꼭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노원지역 노동조합 공동요구안>

■ 임금체불, 노조탄압, 노-노간 차별대우 등 노원구 내의 각종 부당노동행위사업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재 조치를 취한다.

■ 노정 교섭(노조와 구청) 협의체를 마련하여 관내 노동 현안에 대한 정기적 회의를 개최한다. 노원구 국회의원-시의원-구의원과 민주노조 대표들의 정례 협의체를 구성한다.

■ 노원구 내 생활임금 수준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공공기관은 물론 대학, 병원 등의 경비시설, 청소노동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시행한다.

■ 노원구 경비노동자, 청소노동자 에어컨 설치 및 휴게실 개선, 고용안정 보장계획을 적극 마련한다.

■ 모든 고등학교에 노동인권 교육을 지원한다.

■ 국회에서는 노동현장 내 만성적인 인력난, 고강도 육체 및 감정 노동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각종 법 제도 마련에 나선다.

■ 노원구에 노동담당 부서를 설치한다.
- 구정 노동 감수성 지표 마련과 정기적 평가
- 노동조합 설립지원 및 부당노동행위 신고센터 마련

■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 노동인권 보호 조례 등 서울시와 타 구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선도적 노동정책을 적극 수용한다.

■ 주민자치예산과 같이 노동권리예산(가)을 도입하고, 이에 투여할 예산규모, 내용, 방식에 대해 노정교섭에서 논의 결정한다.

■ 노동자 건강지원사업으로 노동 강도로 인한 대표적 질환(근골격계 등)에 대한 예방 및 치료를 지원하고, 관내 병원과 상생협약을 추진한다.

■ 노원구 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설립하여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한다.
  
노원구청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강창곤 지부장
 노원구청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강창곤 지부장
ⓒ 김선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현장언론 민플러스에 중복 연재 됩니다.


태그:#노원주민대회, #직접정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