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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수도 카르툼 하수처리가 되지 않아 물이 고이는 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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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자의 위생법

대부분의 배낭여행자들은 숙소를 구할 때 부킹닷컴, 호스텔월드 등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는데, 수단 숙소 정보는 기존에 사용하던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정보가 전혀 없으니 무작정 부딪혀 보는 수밖에.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나라 수단이라고 해서 베개와 이부자리의 생김새가 다르지는 않으리라.

밤 늦게 수도 카르툼에 도착했다. 낯선 나라의 밤거리는 꽤 무서울 때가 많다. 에티오피아 국경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미나알베리 터미널 인근에서, 물어물어 발품을 팔아 겨우 숙소를 구했다. 무거운 배낭을 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집트에서 지낸 두 달 동안 비는커녕 구름 한 점 보기 어려웠는데, 같은 사하라 사막의 나일강변 도시라도 기후가 부쩍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카르툼은 광역 인구 500만 명이 사는 수단의 수도인데, 주요 도로 이외는 포장이 되지 않은 흙길이 대부분이었다. 하수 처리가 잘 되지 않는지 비가 올 때마다 금세 곳곳이 물웅덩이로 변했고 악취가 나는 곳이 많았다.

하루 350수단파운드(한화 약 7000원) 가격의 숙소는 정전이 잦았고, 깜박깜박 전깃불이 다시 켜지면 어김없이 놀라서 달아나는 '바선생님' 들을 만났다. 나보다 조금 일찍 아프리카 종단을 시작한 여행자 손동현씨는 화들짝 놀라게 하는 그 이름을 입에 담기 싫은지 바퀴벌레를 순화해 '바선생님'이라 불렀다. 모기도 꽤 많아서, 말라리아에 걸리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됐다.

대한민국 질병관리본부는 '위생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으로 가는 자국민에게 황열, 콜레라, 장티푸스, 간염, 파상풍, 말라리아 예방을 권고한다. 볼리비아와 탄자니아처럼 황열 예방접종 증명서가 없으면 입국이 불가능한 나라도 있다.

백신 주사 한 번만 맞으면 평생 유효한 황열 예방과 달리 말라리아 예방에는 지속적인 약 복용이 필요하다. 페루에서 만난 여행자 친구에게 사후 말라리아약을 선물 받아 놓긴 했지만 부디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그걸 먹을 일은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밤마다 방 안의 모기들과 한참 숨바꼭질을 하고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수단에도 이집트처럼 어느 거리에나, 목마른 누구나 마실 수 있게 가득 채워진 물항아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물로 손발을 씻고 머리도 식히고 마시기도 한다. 항아리 옆에 놓인 물바가지 하나를 수 십 명이 돌아가며 사용했다.

어린 시절, 고국의 산천(山川) 약수터에서 누구나가 함께 쓰던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물바가지가 떠올랐다. 보름달마냥 둥그렇고 넉넉한 물항아리는 사하라 사막과 아라비아 지역에서 나눔과 환대의 상징이며, 물은 생명처럼 소중하지만, 나는 배탈과 감염, 풍토병에 면역력이 약한 외국인 여행자라서 생수는 꼭꼭 사서 마시기로 했다.

물과 음식을 통한 불특정 다수와의 접촉, 쓰레기와 물웅덩이, 바퀴벌레와 모기는 꼭 더럽거나 위험한 것일까. 모든 오물을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분리해 처리하는 '개발국'들의 시스템,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뒤덮인 세계는 과연 깨끗하고 건강한 것일까. 비위생적이고 열악해 보이는 환경 속에서 하루 하루의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씁쓸하고 복잡했다.

개발되고 현대화되었다는 나라들에서는 위생을 너무 강조하다 오히려 사람들의 면역력이 떨어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몸에는 만 가지가 넘는 세균이 공생한다던가. 세균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다른 환경에서 살던 나에게 조금 비위생적으로 보일지라도 현지 사람들에게는 생활이므로, 더러워하거나 무서워하지 말고,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바지런히 움직여 낯선 세균들에 맞서 면역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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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탱크를 나르는 카르툼의 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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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툼에서 만난 친절한 수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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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나라에서 산의 나라로, 에티오피아로 가는 길

수단에 있는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사전(事前) 비자를 받은 뒤 곧바로 수단을 뜨려했는데, 카르툼에 도착한 다음 날인 수요일은 수단의 정기 휴일이었다. 하루를 쉬고 목요일 오전 아홉 시에 대사관으로 갔다. 고압적이고 덩치 큰 대사관 담당 경찰은 오늘은 이미 업무 시간이 끝났고, 금, 토, 일요일은 휴무라며 월요일 새벽 여섯 시에 다시 오라고 말했다. 새벽 여섯 시라니, 세상에.

수단 관공서와 주수단 에티오피아 대사관의 휴무일은 달랐고, 새벽 일찍 줄을 서서 당일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 비자 신청이 불가능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한 행정 절차였지만, 따를 수밖에 없다.

며칠을 기다리다 월요일 새벽 다섯 시에 숙소를 나와 여섯 시에 마침내 비자 신청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지는 긴 기다림. 오후 네 시까지 네 번의 창구 절차 끝에 드디어 40달러 짜리 스티커를 여권에 붙였다. 에티오피아 비자 한 장을 받느라 무려 닷새가 걸렸다.

다음 날 새벽 일찍, 수단 남부 에티오피아 국경 마을 갈라밧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역시나 두 시간 늦게 출발한 버스는 추적추적 비 내리는 밤 국경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짐을 꺼내지도 않고, 모든 승객이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종종 걸음으로 진흙탕을 지나 천막 숙소를 찾아갔다.

북부의 와디할파 국경보다 10파운드가 비싼 50파운드(900원) 숙소였지만 전등도 수도도 화장실도 없었다. 항아리에 떨어진 빗물로 겨우 양치를 했다. 울타리 옆에서 엉거주춤 오줌을 누고, 분명 빈대가 살고 있을 듯한 낡은 나무 침대에 젖은 몸을 뉘였다. 어둠 속에서, 먼저 도착해 잠든 사람들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후두둑 후두둑 천막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처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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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수도 카르툼 에티오피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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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 파운드와 에티오피아 비르를 바꿔주는 국경 환전상이 천막 아래 잠든 사람들을 깨웠다. 다행히 환전 수수료는 크지 않았다. 다른 승객들의 도움 덕에 밤 사이 버스 짐칸에 실려 있던 배낭을 무사히 찾을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국경은 바삐 오가는 수단과 에티오피아 사람들로 분주했다. 질퍽 질퍽 진흙탕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

이집트에서 수단으로 오는 페리의 비자 담당관이 카르툼에 가냐고 묻더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쓰리 데이스 Three days'라고 적힌 도장을 찍어주었는데, 설마 150달러나 하는 수단 비자가 그 도장 하나 때문에 3일 짜리가 되었을 줄이야. 수단 비자와 체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했고 에티오피아 비자를 받느라 부득이하게 체류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나는 이집트에 이어 또다시 불법체류자, '미등록 체류자'가 되었다.

수단 갈라밧 국경에도 이집트 아스완 국경처럼 여권을 전자 처리하는 컴퓨터가 없었지만, 담당 경찰은 도장을 꼼꼼히 확인하고 벌금 640파운드(12000원)를 요구했다. 도시의 관공서에 돌아가서 서류를 떼 오라고 하거나, 유치장에 가두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며 시무룩, 울상을 지은 채 벌금을 물고 서둘러 에티오피아로 가는 '우정의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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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갈라밧 국경의 천막 숙소. 하루 비용은 50수단 파운드(약 900원). 이른 아침 숙소에 온 국경 환전상이 수단 파운드를 에티오피아 비르로 바꿔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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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 남부 갈라밧 마을과 에티오피아 북부 메테마 마을을 잇는 국경의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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