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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위, 한일관계, 미중 무역전쟁... 지금 아시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국가 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시시각각 변하는 동북아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토대로 하는 아시아 시민 연대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 참여사회 

성폭력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를 향한 연대

1990년 11월 16일 전국 37개의 여성단체들이 모여 설립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가해자인 일본정부의 범죄인정과 사죄, 배상 등을 요구했다. 이는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의 피해자에 대한 가부장제적 편견을 바꾸며, 다시는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평화체제 실현을 통해 해결을 만드는 운동이었다.
 
정대협 운동이 해방 후 반세기를 지난 1990년대에 와서야 시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한국사회, 일본의 전범에 대해 불처벌했던 전후 국제사회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기생관광' 문제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운동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만나게 되면서 정대협 운동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결국 여성폭력을 조장하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저항이자 변화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연대가 가장 중심이 되는 운동방식이 되었다.

생존자와 생존자, 생존자와 여성운동이 연대하고 때로는 남북이 또 때로는 아시아연대로, 국제연대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아시아연대는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의미가 되었다. 
 
한일문제가 아니다, 아시아연대회의 개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연대회의 활동 모습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연대회의 활동 모습
ⓒ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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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은 일찍이 1992년에 다양한 국제 연대활동을 시작한다.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직접 참석하여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보편적인 '여성인권' 문제로 제기하며 국제여성연대를 시작하고, 8월 10~11일 서울에서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를 개최하였다. 아시아 각지의 여성단체 대표들을 초청하는 정대협의 초청장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강한 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아시아 지역의 여성들과 연대를 모색하게 되었다고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회의에 필리핀, 홍콩, 태국, 대만, 일본, 한국 등 6개 지역의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참석하였고, 한국의 생존자 김복동, 노청자 할머니의 증언을 청취하며 각국 현황 발표와 토론을 진행하였다. 1차 회의 당시는 코리아(남북)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아직 아시아 피해국들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활동이 제대로 시작되지 않을 때였다. 그렇기 때문에 1차 회의는 이후 각 지역에서 피해조사 활동과 피해자 발굴,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한 대응 활동 등을 시작하게 하는 동기로 작동했다.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제16차 아시아연대회의에 이르기까지 한국, 일본, 필리핀, 대만이 돌아가며 주최하였고, 코리아(남북),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중국, 대만, 네덜란드, 일본의 여성들이 참여하는 연대체로 역할을 해 왔다. 이를 통해 일본정부와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의 문제가 아닌 아시아 여성들의 문제이며, 전쟁 중 여성에게 가해진 보편적 여성인권 문제로 공론화하였다. 또한 상황이 각기 다른 아시아 피해자들과 여성운동의 경험이 연대회의를 통해 공유되었다. 토론과 결의를 통해 아시아 여성들이 함께 연대할 목소리, 공동행동을 결정하고, 대내외적으로 연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활동이 되었다. 

아시아연대회의의 주요 쟁점

아시아연대회의는 매 회의마다 해당 시기를 반영하는 주요 쟁점이 주제에 반영되어 토론이 이루어졌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의 문제부터 강제성,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일본 전범의 출입국 금지법안을 만들고 국제형사재판소를 설립하라고 세계에 촉구했다.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대응,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국제법정 개최 결정 등 중요 쟁점들이 아시아연대회의를 통해 토론되었고, 그 내용들이 이후 연대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지난 28년 동안 국제인권운동과 여성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연대회의 초기부터 용어 문제는 중심 토론주제였으며, 1993년부터 일본군 '위안부'와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를 사용하기로 결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1994년 이후에는 일본정부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주요쟁점으로 제기되었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정부에 '국민기금' 철회와 진상규명·국가배상 실현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8차 아시아연대회의 결정으로 2000년에 개최된 일본군 성노예 전범여성국제법정 판결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완성하지 못한 전범처벌을 완성하는 의미를 가졌고, 무력분쟁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인권기준을 만드는 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0년 중반 이후 아시아연대회의는 피해자들의 사망률 가속화 등의 상황에 직면하면서 피해자의 삶을 기록하고 전시, 교육하여 후세대에 계승하기 위한 기념관, 자료관 건립 활동들이 주요쟁점이 되었다. 2015년 12월 28일 한일정부가 일방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을 때 아시아연대 단체들과 피해자들은 극렬하게 한일합의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연대회의 활동 모습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시아연대회의 활동 모습
ⓒ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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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넘어 세계 성폭력 피해여성들과의 나비연대

28년의 아시아연대에도 불구하고 문제 해결은 지연되고 있고, 아시아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의 상황은 나빠졌다. 아시아연대는 2016년 서울에서 열린 제16차 아시아연대회의 이후에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공유하는 아시아연대를 넘어 정의연(정의기억연대, 정대협 후신)이 2012년부터 주력해 온 나비기금 활동을 통해 희망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나비기금은 콩고, 우간다, 나이지리아, 이라크, 코소보, 베트남으로 확산되어 날갯짓하며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을 막아내기 위한 활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간다와 코소보, 콩고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생존자들에 의해 엄마로, 희망으로 이야기되며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미군 '위안부' 생존자들 역시 김복동 언니의 용기에 힘입어 인권을 위해 싸우겠다고 힘을 내고 있다. '김복동평화상'은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여성활동가들을, '길원옥여성평화상'은 국내 여성인권·평화 활동가를 양성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송신도희망씨앗기금'은 일본의 청년대학생들의 인권 평화 활동을 지원·양성하고 있다. 
 
더 나아가 내년, 정대협 30주년을 맞이하며 정의연은 우간다에 김복동센터를 건립한다. 우간다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김복동의 역사를 통해 희망을 갖게 하고,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과 세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나비연대를 확산하려 한다. 희망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미향 님은 일본군성노예제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대표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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