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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시위, 한일관계, 미중 무역전쟁... 지금 아시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국가 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시시각각 변하는 동북아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토대로 하는 아시아 시민 연대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 참여사회 
  
 국가 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시시각각 변하는 동북아시아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토대로 하는 아시아 시민 연대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국가 간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시시각각 변하는 동북아시아의 현재를 들여다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토대로 하는 아시아 시민 연대의 가능성을 사유한다.
ⓒ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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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특별행정구의 '범죄인 송환조례' 추진으로 촉발된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약 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지난 9월 4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조례 추진을 완전히 철회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들의 저항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5대요구❶에서 단 하나도 뺄 수 없다"는 게 이 운동에 참여해온 시민 다수의 입장이며, 분노의 초점은 이미 법안이 아니라 경찰국가에 대한 분노,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요구로 옮겨졌다.

대규모 시위가 지속되면서 홍콩정부와 송환조례에 대한 반대 여론은 점점 높아졌다. 홍콩민의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지지율은 6월 초 43.3%에서 9월 초 25.4%까지 추락했다. 정부 신뢰도 역시 마찬가지다. 홍콩중문대학 전파·민의조사센터 리서치에 따르면 시위가 촉발하기 직전 45.6%였던 부정 여론은 9월 초 68.8%까지 치솟았다.
 
 8월 5일 파업 집회에 참여한 홍콩 노동자들
 8월 5일 파업 집회에 참여한 홍콩 노동자들
ⓒ ?工盟(직공맹 : 홍콩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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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초기부터 한국에서는 일부 정치인이나 정당 청년 모임 등에서 홍콩 시민을 지지한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그만큼 보편적 쟁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이 운동을 어떻게 봐야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단순히 '공산당 독재'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위인가, 아니면 중국이나 러시아 등의 관방언론들이 말하듯 미국 정부의 사주에 의해 일어난 가짜 민주화 시위인가?

물론 사주에 의한 것이란 말은 터무니없는 모함에 가깝다. 100만 명의 시위대가 모종의 음모에 의해 일어났다고 보는 건 문제를 이원대립적으로 보는 편협한 시각일 뿐이다.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사건은 복잡한 역사 모순들이 겹쳐져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는 홍콩 사회의 모순이 무엇인지, 오늘날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홍콩 청년들의 분노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명민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홍콩은 그저 각 논자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대입하는 하나의 조악한 예시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한국과 홍콩의 민주주의, 차이와 유사 

6월 경 홍콩에서 열린 한 광장 집회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와 한국 언론의 주목을 끈 바 있다. 또 조슈아 웡이나 홍콩 재야단체연합 민간인권전선(Civil Human Rights Front) 활동가들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87년 6월 항쟁이나 박근혜 퇴진 촛불 시위가 언급되기도 했다. 이는 한국인들이 홍콩 시위에 보다 관심을 갖게 하는 요소다.

하지만 나는 이런 논리로 덧씌워진 자부심에 동의하지 않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위상이나 '홍콩 시민들이 한국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배웠다'는 해석은 지나친 과장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몇 번 공연된 건 사실이지만, 시민 대다수는 이 노래를 알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리는 것도 아니다. 또, 현재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는 홍콩 시민들 스스로 만들어온 역사와 홍콩 사회가 지닌 모순들에서 기인하는 바가 훨씬 크지 한국에서 배운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저항 양식 측면에서 홍콩의 시위는 한국의 그것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우선 이 운동을 이끄는 민간인권전선의 소집권자는 31세의 동성애인권운동가 지미 샴이다. 한국의 사회운동에서라면 끄트머리에 서있었겠지만 홍콩 시민사회는 이 게이 활동가를 맨 앞에 내세웠다. 직공맹(职工盟)이 한국에선 종종 비난받기 일쑤였던 정치파업을 주도해온 점도 마찬가지다.

물론 오늘날 동아시아 각국의 현실들은 어느 하나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각각이 처한 현실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홍콩 당국이 시위 진압을 위해 벌이는 잔혹한 폭력은 불과 몇 년 전 우리가 용산과 평택에서 목도한 국가 폭력과 닮아있다. 굳이 최루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시위대를 향한 무수한 감시카메라, 시민들의 내분을 종용하는 각종 루머와 정부발 가짜뉴스까지 하나하나 닮아 있다. 40만 명에 달하는 동남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처지 역시 한국 사회의 그것과 닮아있다.

오늘날 동아시아 각국이 직면한 사회 모순은 확실히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냉전으로 얼룩진 '장기 20세기'라는 거대한 폭풍우를 공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는 75년째 두 나라로 분리된 채 끔찍한 전쟁을 겪었고, 중국은 양안 갈등과 홍콩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일본은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 등으로 역내 긴장을 높이고 있다. 지난날 한국 민주화운동은 '반공주의'에 의해 억압받았지만, 오늘날 홍콩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반공'라는 외양을 띄고 있다. 현재 홍콩 시위가 보통선거와 언론자유, 국가폭력에 맞선 저항을 지향하기에 연대할 수 있지만, 존재하는 차이들엔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고민이 든다.

따라서 우리가 이 역사적 모순의 복잡성을 사유하지 않은 채 간명하게 '독재 대 민주주의'의 구도로 이야기하게 되면 자칫 함정에 빠지기 쉽다. 심지어 미·중 무역분쟁이나 일국양제와 현실사회주의의 모순 등 홍콩을 벗어나 전 지구적 시각에서 봐야할 쟁점도 얽혀있다.

'대안적 동아시아'를 위해

세계 각국의 모순은 과거보다 더 촘촘하게 얽혀있다. 역사적 모순은 결코 하루아침에 극복될 수 없고, 일국적 시야만으로도 극복될 수 없다. 무엇보다 홍콩 시민들이 원하는 더 나은 민주주의는 중국 인민의 지지와 연대를 통과해야 진정으로 쟁취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내 여론은 관방언론의 선별적 보도와 애국주의로 인해 일부는 홍콩 시위에 격렬히 반대하고, 대부분은 무관심하다.

민주주의라는 외피 뒤에 숨겨진 모순에 다가가야 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도시로 낙인찍힌 '금융허브' 홍콩의 모순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법정최저임금은 한국보다 훨씬 낮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좁고 비싼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 홍콩 청년들의 삶은 어떤 모순에서 출발하는가? 식민지 시절 홍콩엔 민주주의가 있었는가? 이는 홍콩을 150년 간 식민 통치한 '대영제국'과 금융자본에 의해 발명된 것이었으며, 홍콩 민중들은 이 억압에 맞서 오랫동안 저항해왔다.

문제는 국가자본주의로 전락한 중국 정부 역시 가난한 이들을 향한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았고, 대륙의 갑부들은 개혁개방 이후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세탁하는 공간으로 홍콩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당연히 부동산 가격은 높아지고, 빈부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홍콩의 십대, 이십대 청년들이 분노를 멈추지 않고 격렬한 시위를 주도하는 이유다. 그들은 지금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빠져나갈 길이 거의 없다"고 여긴다.

우리가 홍콩 청년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것이 '몫 없는 자들의 반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국제연대는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우선은 동아시아에 그늘지어진 역사적 모순을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홍콩의 청년들, 중국대륙의 신세대 농민공(農民工)❷, 한국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들이 자본의 착취와 노동의 이동, 군사화가 야기하는 야만에 맞서 평등과 평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해야 한다. 바로 그때, 국경과 민족이 아닌 계급성과 가치를 중심으로, '대안적 동아시아'의 형상을 함께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홍콩 시위 웹선전 이미지?
 홍콩 시위 웹선전 이미지?
ⓒ 反送中 文宣谷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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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과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를 말함 
❷  중국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급 이주노동자를 일컫는 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홍명교님은 진보네트워크센터와 '동아시아 사회운동 공부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사회운동 공부모임(eastasia.nodong.net)’은 동아시아 현대사와 사회운동을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모임으로, 동아시아 담론의 실천적 의의와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9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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