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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역사청산이 없는 나라다. 과거 식민지 역사 청산이나 군사독재 청산은 물론이고 조선시대 봉건 질서를 청산한 적이 없다. 낡은 질서는 바로 가부장제 질서를 가리킨다. 더욱이 낡은 질서 속에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의 성 차별과 불평등 문제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매우 해묵은 숙제이다.

한국인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가부장제 봉건질서는 한국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그런 까닭에 한국사회 여성 평등지수는 부끄러울 정도로 매우 낮은 형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2017년 발표한 '성 격차지수(Gender Gap Index)'에서 조사대상국 144개 나라 가운데 118위에 머물렀다. 최하위권인 셈이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들로 하여금 성차별 의식에서 벗어나 성 평등 의식을 지니도록 노력하는 것은 시대의 소명이자 교사의 책무이다. 따라서 한국사회 대표적인 교육운동단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성 평등교육, 페미니즘 교육을 참교육의 하나로 적극 실천하고 있다.

성 평등교육을 학교현장에서 구현해 온 배이상헌 교사 역시 도덕교사로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성 평등 교육에 앞장서 온 배이상헌 교사를 오히려 성 비위를 저지른 교사로 몰아 세워 그 직위를 해제시켰다. 상을 주며 격려를 해도 모자랄 판에 교육청은 일부 학생과 부모 민원을 이유로 지난 7월 24일 전격 직위해제를 시킨 것이다.

문제는 교육청의 태도이다. 겉으론 피해자 중심주의에 선 것처럼 해당 교사를 직위해제 시켰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교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다. 일부 학생과 부모의 민원에만 의존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직위해제 처분을 내린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부 성 비위 대응 매뉴얼'대로 처리했다고 주장한다. 광주광역시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이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교육청이 정말로 '교육부 매뉴얼'대로 절차를 지켰는지 의아스럽다. 검찰개혁이 전 국민적 화두가 된 오늘날, 진정 공익을 추구하고 인권의 보루를 자처하는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교육청은 행정 처분 전에 해당 교사에게 문제가 된 수업과정에 대해 한 마디 사유도 듣지 않았다. 심지어 해당 교사의 항변조차 듣지 않았다. 7월 10일 배이상헌 교사를 갑자기 수업에서 배제시키는 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7월 24일 교육청은 직위해제를 시켰다. 직위해제 다음날 해당 중학교 '성희롱 성고충 심의위원회'에선 배이상헌 교사가 성비위교사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교육청은 해당 학교의 결정사항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직위해제 처분한 것이다. 

과연 '교육부 매뉴얼'의 절차를 지켰는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왜냐하면 '교육부 매뉴얼'에 따르면 학교장의 책임 아래 상황을 조사, 확인하게 되어 있다. 그런 다음 확인된 내용을 바탕으로 '성희롱 성고충 심의위원회'에서 '가해 교직원에 대한 조치사항을 심의하고 결정한다'('교육부 매뉴얼' 60쪽)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학교가 결정을 내리기 전날 교육청은 전격 직위해제시킨 것이다. 

교육청은 어떤 의미에선 교사의 교육권, 바로 교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이다. 그런데 이번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광주광역시 교육청의 태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정 반대로 역주행한 것이다. 과연 진보교육감 시대 교육청이 맞는지 뜨악할 뿐이다.

졸지에 배이상헌 교사는 '성 비위' 교사로 내몰리고 씻기 힘든 오명을 뒤집어썼다. 학교현장에서 항상 참교육 실천에 앞장서 온 교사로서 정신적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을 것이다. 어쩌면 지나온 삶을 송두리째 부정당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추잡한 성 비위교사로 낙인찍히는 극심한 모멸감으로 고통이 너무 컸을 것이다. 경찰조사나 법정다툼으로 배이상헌 교사가 범죄혐의를 보이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것도 아닌데 헌법에 보장된 무죄추정의 원칙은 온데간데없었다.

교육청의 태도가 너무 경직되다 못해 축자적 해석에 갇힌 느낌이다. 한 마디로 행정편의주의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듯하다. 성 비위를 대처하는 '교육부 대응 매뉴얼'대로 했으니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는 투다. 그러나 '교육부 매뉴얼'을 제대로 지켰는지 의심스럽다. 더구나 평생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교육활동을 실천한 교사의 삶을 무참히 무질러버렸다. 이런 모습은 교육청의 존재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감을 갖게 한다. 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제시해 본다.

첫째, 이번 광주광역시 교육청의 행정처분은 매우 경직된 처사로 비록 의도하진 않았을지라도 학교 현장에 성 평등교육을 펼치려는 교사들 모두에게 은근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성 평등 교육을 나서서 열심히 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열정과 의지를 단박에 꺾어버리는 잘못을 범했다.

교육청이 범한 가장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참교육에 열정을 갖고 수업자료를 찾아가며 수업연구와 수업설계에 열정을 쏟는 교사를 격려하고 돕기보다 오히려 그 뜨거운 열정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되어버렸다.

이는 교육청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물음에 직면하게 만든다. 더구나 진보교육감 시대 아닌가? 그것도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찬연한 역사를 간직한 빛고을 광주에서 벌어진 일이라니! 아무리 고개를 돌려 다시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둘째, 교육청의 이번 처사는 교육청이 교사의 교육활동을 돕고 보호하는 보루로서 기능하기보다 일부 부모와 학생의 민원에 좌우되는 민원처리기구로 비춰졌다. 다시 말해 교육청의 역할이 외부의 힘에 의해 규정되는 비주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교육청이 존재하는 근본 이유는 교사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주고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성 평등 교육에 앞장선 교사의 교육권을 지켜주기는커녕 나서서 침해했다. 나아가 성 평등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의 학습권마저 지켜주지 못했다. '교육부 성 비위 대응 매뉴얼'에 함몰돼 교육청의 존립 이유를 몰각한 것이다.

비록 일부 학생과 부모의 민원이 성 비위 사건으로 접수된 것이라 하더라도 교육청은 위헌소지가 다분한 '교육부 성 비위 매뉴얼'을 금과옥조처럼 따를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 사안을 균형 있게 쳐다보고 판단을 내리는 주체적인 태도를 견지했어야 옳았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교육청이 왜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셋째, 배이상헌 교사가 중학생들에게 보여준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2010)는 성차별로 고통당하는 가부장제 현실을 거꾸로 '가모장제' 현실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10분짜리 단편 영화로 남성과 여성의 처지를 맞바꾸어 현실의 부조리를 생각해 보게 하는 빼어난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폭행을 당한 남자주인공은 절규한다. 그동안 형제들이 노력해 애써 깨트리려 한 '가모장제' 사회가 혐오스러울 정도로 너무 싫다고 절규한다.

비록 일부 장면에서 가슴 노출이나 성기 관련 욕설이 나오지만 이는 문제될 게 없다. 영화 전체의 맥락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가 던지는 강렬한 메시지를 영상으로 전달하는 소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단편영화는 포르노도 아니고 야한 영화도 아니다. 그 장면을 보고 야하다고 느낀다면 그런 생각 자체가 이상하지 않은가?

마치 아이에게 젖을 물린 젊은 엄마의 드러난 젖가슴을 보고 어떤 사람이 성적으로 흥분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야말로 관념의 허구이고 경직된 행정의 극치이다. 만삭인 임산부의 벗은 몸은 생명을 잉태한 모성을 느끼게 할 뿐 포르노물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마찬가지이다. 배이상헌 교사가 아이들에게 생각할 수업자료로서 제시한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는 영화 전체의 흐름 상 충분히 그 장면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페미니즘 교육을 추구하는 여성단체나 전교조에서 추천하는 성 평등 교육 자료로서 수작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전 세계적으로 13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우리나라에서도 25만을 넘긴 페미니즘 영화이다.

직위해제 처분을 내린 교육청 관료들이 과연 이 영화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고 그런 처분을 내렸는지 의아하기 그지없다. 내 생각엔 교육청 관료들이 교사만큼은 아니더라도 문제가 된 영화에 대해 공부를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로지 교사 위에 군림하려는 못된 관행! 바로 상급기관이랍시고 성평등 교육에 열정을 쏟는 교사를 겁박이나 하는 그런 교육청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요컨대 광주광역시 교육청은 자신의 행정처분이 지극히 졸속이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좁쌀만큼이나 옹졸한 태도였음을 인정하고 하루빨리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를 취소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배이상헌 교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처받은 선생님을 위로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학교 현장에서 성 평등 교육이 더욱더 잘 전개될 수 있도록 더 좋은 영상자료를 발굴하고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장학활동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청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본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 주주통신원들의 온라인 매체인 <한겨레 온>에 게재하였으며 일부 내용은 수정하거나 추가하여 기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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