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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2월, 강지영씨는 어린 딸과 함께 거리에 있었다. 당시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지내려면 한부모 가족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영씨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2주 정도의 유예기간을 보내고 나서 지영씨는 시설을 떠나야 했다.
 2018년 12월, 강지영씨는 어린 딸과 함께 거리에 있었다. 당시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지내려면 한부모 가족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영씨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2주 정도의 유예기간을 보내고 나서 지영씨는 시설을 떠나야 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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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당시 35살의 강지영(가명)씨는 어린 딸과 함께 거리에 있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날, 세상은 온통 달콤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쫓겨나다시피 거리로 나온 두 모녀는 갈 곳이 없었다. 그 해에 바뀐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지내려면 한부모 가족 증명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지영씨는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오래 전에 어머니가 지영씨 앞으로 들어놓았던 적금이 그의 소득으로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2주 정도의 유예기간을 보낸 후 지영씨는 시설을 떠나야 했다. 두 모녀의 안정된 거처를 찾기에 유예기간은 너무나도 짧았다. 그는 그간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죽음을 처음으로 떠올렸다. 연말의 들뜬 불빛을 쏟아내는 밤거리에서 지영씨의 머릿속엔 몹쓸 생각들이 스쳐 갔다. 뉴스에서 본 동반자살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이해되었다.
  
미혼모가 되기로 한 후 사회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다

2016년 2월, 지영씨는 병원에서 임신 10주라는 진단을 받았다. 피임을 하고 있었고, 다낭성난소증후군으로 치료받고 있어서 임신이 어려운 상태였기에 충격은 컸다. 병원에서는 첫 진단을 받은 임산부치고는 아기가 많이 자라 있다면서 초음파 사진 대신 아기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심장 소리는 지영씨의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

아기 심장 소리를 들은 그에게 다른 선택은 불가능했다. 남자친구는 아기를 낳으려는 지영씨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초에 두 사람은 결혼을 전제로 만나지 않았다. 남자친구는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상처가 있었고, 그래서 또다시 그런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영씨 역시 결혼할 생각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시험 준비를 했던 4년의 기간까지 보태어 오랜 시간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했기에 은혜를 갚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험공부를 그만두고 취직을 한 것도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다. 위독한 순간은 넘겼지만,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요양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지영씨는 취업을 했고, 경력이 쌓여가면서 직장 일에 재미를 붙였다. 그는 결혼하면 해보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할 것이고, 부모님께 효도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영씨와 남자친구는 다퉜다. 둘 다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격한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남자친구의 한 마디가 지영씨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너 나에게 돈을 요구하려고 아이를 낳으려는 거니?"

경제적으로 지영씨보다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남자친구가 던진 말이기에 더 아팠다. 결국 지영씨는 혼자 아기를 낳아 기르기로 했다.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었다. 남자친구가 일하는 곳이 지영씨 직장의 협력업체였기에 더 그랬다. 출산예정일이 여름이라 불러오는 배를 옷으로 감출 수도 없을 터였다. 계산해 보니 일을 그만둬도 그간 저축한 돈으로 아기와 함께 1년 반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로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을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미래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한국의 미혼모에게는 더욱 그랬다.

친밀하다고 생각했던 대학 동창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온 것은 공감이 아닌 질타였다. 그 친구는 지영씨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기를 낳겠다는 선택이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한 번 이런 반응을 보고 나니 누구에게도 얘기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영씨는 가뜩이나 이해받기 어려운 자신의 상황을 가족들과 더더욱 나눌 수 없었다.

명랑한 성격의 직장여성이었던 지영씨는 순식간에 사회로부터 고립되었다. 보살핌이 필요한 임신부였지만, 교류할 단 한 사람조차 갖지 못한 채 월세 집에서 혼자 살았다. 그리고 무서운 정신적 위기가 찾아왔다. 지영씨는 온종일 잠만 자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불도 켜지 않았다. 사람 소리가 나면 이상하게 무서웠다. 정신을 차린 날이면 자신의 증상을 검색했다. 병원에 가서 진단받지 않았지만, 과호흡 증상으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는 분명 '공황장애'였다. 대인 공포, 강박, 불안 등 거의 모든 증상이 다 있었다. 어떤 날은 허리를 펼 수도 없었다. 잠을 깨면 닥쳐오는 괴로움 때문에 새우처럼 몸을 구부린 채 침대에 누워 하루를 보냈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려면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했다. 지영씨 주변에 단 한 사람이 없었다. 지영씨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미혼모를 돕는다는 모든 기관에 전화를 했다. 건강가정증진센터 등 수십 군데의 정부기관에 연락을 했지만,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도와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세상이 온통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려면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했다. 지영씨 주변에 단 한 사람이 없었다. 지영씨는 인터넷을 검색해서 미혼모를 돕는다는 모든 기관에 전화를 했다. 건강가정증진센터 등 수십 군데의 정부기관에 연락을 했지만,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도와 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세상이 온통 그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 이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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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돌봄 없는 사각지대에서 위기 겪는 미혼부모와 아기

그러는 가운데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냥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주 절박한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병원에서 아기를 낳으려면 반드시 보호자가 필요했다. 지영씨 주변엔 사람이 없었다. 만삭이 다 되어서 겨우 어머니에게 얘기했지만 늦게 알린 것 때문에 굉장히 화를 냈다. 아픈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엄마에겐 도움을 청할 수 없었고, 엄마의 반응이 그랬기 때문에 오빠에게도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무렵 오빠가 결혼을 했다. 그래서 더욱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결국 하나밖에 없는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도 하지 못했다.

지영씨는 출산 당일 보호자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서 미혼모를 돕는다는 모든 기관에 전화를 했다. 건강가정증진센터 등 수십 군데의 정부 기관에 연락을 했지만 매뉴얼이 없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민간단체인 미혼모 네트워크에 연락했는데, 그곳에도 그런 지원을 할 수 있는 공식적인 시스템은 없지만 전화 받은 분이 돕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지영씨는 기도했다. 제발 아기가 평일 낮에 태어나서 그분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결국 일요일 새벽 진통이 와서 그날 낮에 아기가 태어났다. 그분은 멀리서 택시를 타고 와주셨다. 이 이야기를 하며 지영씨는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그나마 나이가 있어서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10대, 20대에 이런 일을 겪는다면 정말 더 막막하겠지요. 실제로 저 역시 조마조마했어요. 만약 위급한 상황이 되어 제왕절개라도 했다면 병간호를 받아야 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출산 전부터 겪고 있던 지영씨의 정신적 위기는 출산 후에도 계속되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한 채로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온종일 아기를 돌봤다. 어려움을 터놓고 나눌 사람도, 잠깐의 휴식을 위해 아기를 맡길 사람도 없었다. 외출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자신의 상태를 직시할 힘조차 없었다.
  
지영씨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아기가 만 12개월이 되어서였다. 이때가 되면 모든 아기가 의무적으로 영유아 검진을 받게 되어 있다. 대근육, 소근육, 인지, 언어, 사회성 등 다섯 가지 영역의 발달 상태를 검사하는데, 지영씨의 딸은 소근육을 빼고 네 가지 영역이 모두 심각한 상태이니 '발달지연 심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이런 경우 발달장애일 가능성이 70% 이상이라 했고, 빨리 종합병원에서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서야 지영씨는 정신을 차렸다. '지금까지 세상이 무너질 듯 힘들어하는 동안 아기는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간의 모든 고통이 사치처럼 여겨졌다. 지영씨는 비로소 아기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면했다. 그간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씻기는 것을 제외하고 아기에게 해준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생후 1년 동안 주 양육자와 형성해야 하는 '애착'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장 헌신적인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아기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방치되어 홀로 누워서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의 위기는 아기에게 고스란히 정서적·신체적 공백을 남겼다. 아기는 주변을 관찰하지도 않았고, 잘 울지도 않았으며 낯가림도 전혀 없었다. 보통의 아기라면 돌 때쯤 옹알이도 하고 손뼉도 치고 조금씩 걷기도 하는데, 아이는 그 모든 자연스러운 것 중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낳아 기르기로 했으면 잘 길렀어야 하는데 태교부터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했나? 정말 엄마로서 아기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종합병원에 예약했지만 3개월 정도 지나서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아기의 위기 앞에서 지영씨는 자신의 병도 잊었다. 그때부터 아기에게 정말 큰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인지적인 면이 걱정되어서 쉴 새 없이 책을 읽어줬다. 아기는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3개월 후 검사를 받게 되었을 때는 언어나 인지면에서 정상 범주를 넘어섰다. 그러나 대근육 발달은 단기간에 가능한 것이 아니어서 아기는 종합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19개월 만에 처음 걸음마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아기는 어린이집에 맡겨도 될 만큼 자랐다. 병원치료도 어느 정도 끝나가니 지영씨도 취업해서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둘 때 했던 계산대로 모아둔 돈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영씨는 취업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아르바이트조차 구할 수 없었다. 아이가 계속 아팠다. 감기를 심하게 앓았고 천식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해 일하다가도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으로 달려가야 했다. 일터에 미안해 한 달 계약의 아르바이트도 포기했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했지만, 구하기도 어렵고 그렇게 일하다가도 아이가 아파 서둘러 일터를 떠나야 했다.
  
아이가 말도 하고 걸음도 걷게 되면서 한시름 놓고 있었는데, 차츰 다른 문제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생후 1년간의 정서적 공백이 너무나 컸던 모양이었다. 지영씨의 노력으로 언어발달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빠른 축에 속했지만, 딸은 목이 말라도 '엄마 물 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물 줄까'라고 지영씨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엄마가 고립된 동안 사람들의 일상 대화를 듣지 못했기에, 엄마의 말을 따라 할 줄만 알았던 것이다. 지영씨는 부랴부랴 아이를 놀이 치료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가끔 아스퍼거 증후군(사회성 발달장애) 같은 것은 일찍 알 수 없다며 검사를 받아보라는 얘기를 들으면, 그는 또다시 죄책감과 걱정의 늪에 빠져 정신적인 문제들을 잠깐씩 겪기도 한다.
  
모아둔 돈이 바닥이 나자 지영씨는 2018년 9월, 양육미혼모 보호시설에 들어갔다. 그러나 3개월만인 2018년 12월 법적인 문제로 그곳을 나와야 했다. 그러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임시거처에 머물던 지영씨는 2019년 2월 다시 지방에 있는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머니가 지영씨 앞으로 들어놓은 적금이 마침 만기가 되었고, 그 돈으로 지영씨는 작은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와서 손녀를 품에 안고 끝없는 눈물을 흘렸다.

약자들의 연대, 힘들면 손잡고 걷는다

여전히 형편은 어렵다. 아이는 수시로 감기, 폐렴, 천식을 앓고 정서적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지영씨의 정신적인 어려움 역시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지영씨는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느낀다. 미혼모 단체에서 하는 행사에도 참여하고 미혼부모·한부모 가정을 돕는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아래 아품)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제가 힘이 없다면 몸으로 뛰어 한두 사람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고, 힘이 있다면 법과 제도를 바꾸어 수천 명 수만 명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미혼부모와 한부모가정을 위해 당사자들이 만든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지영씨가 말했다.
 "제가 힘이 없다면 몸으로 뛰어 한두 사람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고, 힘이 있다면 법과 제도를 바꾸어 수천 명 수만 명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미혼부모와 한부모가정을 위해 당사자들이 만든 단체인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에서 일하게 되었다며 지영씨가 말했다.
ⓒ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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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에는 대통령직속기관인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에서 하는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아품'은 '아이 중심의 출생신고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출생신고를 부모 중심이 아닌 아이 중심으로 간소화하는 법을 만들어서, 미혼부모의 아이가 의료 서비스나 복지혜택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막고자 함이었다. 또한 미혼모 소송 관련법의 현실에 대해서도 당사자 중심의 개정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서 돌 때까지가 미혼부모에게는 가장 힘든 시기이다. 이 기간에 정보와 사람 지원이 안 되는 현실에 대한 개선방안도 마련 중이다.

"제가 힘이 없다면 몸으로 뛰어 한두 사람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고, 힘이 있다면 법과 제도를 바꾸어 수천 명, 수만 명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이 일을 하면서 제 생계를 위한 보수를 받아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저의 이런 마음을 '돈' 때문이라고 오해하게 될까 봐 걱정돼요."

본인의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되는 거냐는 질문에 지영씨는 '절대로 그럴 리는 없을 것이고,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단호히 대답했다.

법과 제도를 만들면서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일차적인 작업일 것이다. 당사자들이야말로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진정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험이 반영되어야 비로소 탁상행정에서 벗어나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행정이 펼쳐질 것이다.

"아기를 백일까지 키우고 나서, 그동안 못 뵈었던 편찮으신 아버지를 뵈러 고향에 내려갔어요. 오빠 결혼식에도 못 갔고, 아버지는 계속 조심하셔야 했기에 당연히 아기에 대해서는 오빠뿐 아니라 아버지께도 말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아기를 맡길 곳이 없었어요. 정부에서 지원하는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긴 했지만, 낮에만 가능했고 그것도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해서 도움을 받을 수 없었어요. 정말로 하루 맡길 곳이 없었죠. 24시간 어린이집도 알아봤지만, 하루만 맡아주는 것은 안 된다고 했어요. 결국 찾다 찾다가 마지막엔 베이비박스에 연락했어요. 그곳은 아기들을 받아주는 곳이니 하루 정도 맡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죠."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는 데는 예기치 못할 변수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는 미혼모 복지를 얘기하고 있지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쌀, 기저귀만이 아니다. 사람의 일은 법과 제도의 원칙적 테두리 안에서만 전개되지는 않는다. 특히나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나는 일은 더욱더 그렇다. 어린 아기일수록 하루하루의 생존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기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주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결국 강지영씨는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의 조건 없는 도움을 받았다.

"미혼모 단체에서 친해진 언니가 가까운 곳에 사는데, 이 언니도 공황장애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어요. 다급한 상황에서 저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해요. 엄마가 공황발작이 오는데, 그 옆에 아이가 홀로 방치된 상황은 정말 위험하니까요."

지영씨는 인터뷰 내내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 자기가 처한 어려움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할 줄을 모르는 그는, 또다시 '다른 사람들을 걱정하는 일'에 대한 계획들을 잔뜩 늘어놓으며 곱게 웃었다. 그 미소가 지켜진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희망'이란 말이 누구에게나 평범한 일상의 언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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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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