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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없는 아침. 사건은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됐다. 그날 둘째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아픈 아이가 더 피곤할 듯 해, 집에 데리고 있기로 했다. 큰 아이 등원 후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있어야 할 내 모습도 짠해서 멍하니 문만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한 이웃이 말을 걸어왔다.

​"요즘 엄마들은 얘(둘째)보다 더 어린데도 어린이집 보내더라고요. 애들은 엄마가 키워야 해. 그래야 잘 크잖아요. 안 그래요?"

아마도 그 이웃은 나를 24시간 아이를 돌보는 보기 드문 엄마로 추켜세워주고 싶으셨나보다. '요즘 엄마'들을 헐뜯으면서, 작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훈훈한 연대를 맺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후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낸 '요즘 엄마'가 바로 나였다. 어물쩍 상황을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그날만큼은 '요즘 엄마' 아닌 척 하기에 자존심 상했다. 

​"하하. 저희 애는 오늘 아파서 안 간 거예요. 원래 다녀요. 어린이집."

​융통성 없는 대꾸에, 순식간에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나는 아이를 안은 채 내렸다. 서둘러 내리면 도망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여유 있고 도도한 걸음으로.
 
"말도 못하는 애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어휴, 그 어린 것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어요. 물론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어린이집을 대신해 아이를 봐줄 사람은 없었어요.

니체는 말했다. 악행이라도 저지르라고. 나는 그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악행을 저질렀다. '애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보편적인 모성신화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 되려, '우리 아이는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녔다'며 반기를 들어버리는 나쁜 짓을 해버렸다. 자주 얼굴을 볼 이웃들 사이에서 모난 돌이 된 셈이다.

그럼에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아이를 돌봐줄 호의는 없으면서, '요즘 엄마'를 비난하던 수많은 이들의 세계가 미약하게나마 흔들리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악행으로 말미암아 후배 엄마들의 육아 무게가 덜어지길 바랐다.

나도, 후배 엄마들도 돌봄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돌봄을 받았다. 영아 보육 전문가가 아이를 6시간 정도 보살펴주시는 동안, 나는 세수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설거지와 청소도 할 수 있었다.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 나를 돌봐주신건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엄마도 돌봄이 필요하다. 나를 돌봐주신건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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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상 큰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 복직을 앞두고 17개월 된 큰 아이를 급히 어린이집에 적응시키면서 아이보다 내 커리어를 우선하는 나쁜 엄마라며 자책했다.

사실 죄책감을 갖기 시작한 건 어린이집 입소보다 한참 이전이었다. 임신 중 초코파이와 라면을 먹었을 때, 출산하자마자 아이에게 줄 젖량이 부족했을 때, 완전모유수유를 하지 못 하고 새벽에 분유를 먹였을 때, 처음 아이와 외식을 결심하고 식당에 간 날 혹여 주변에 민폐가 될까 봐 만화를 보여주었을 때 그리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까지.

양육자로서 어설픈 내 모습을 매 순간 검열했다. '엄마가 돼서 이유식도 직접 못 만들어 먹이는 거야?', '그동안 아이를 어떻게 훈육했기에, 애가 길바닥에 드러누우며 떼를 쓰는 거야?' 마음 속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나는 늘 죄인이 되고야 말았다.

모성'애(愛)'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지만, 내가 겪은 모성'희로애락(喜怒哀樂)'에 대한 얘기는 들을 기회가 없었다. 어미로서 갖추라던 자애로운 모성은 알고 있었으나, 노여워하고 슬퍼하는 모성은 잘못처럼 느껴졌다. 모두가 엄마로서 책임감만 얘기해줄 뿐이었다. 엄마가 스스로를 돌보고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는 얘기는 금기시했다.

나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육아 서적과 스치는 이웃들이 요구하는 기적에 가까운 엄마 역할에 한참 못 미쳤으니까 말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엘리베이터에서의 나의 소심한 반란은 결코 옳은 일로 여겨질 수 없었다. 그건 '악행'이었다.

아이 말고 엄마... 기자 출신 엄마들의 대범한 악행

그런데 나보다 더 과감한 악행을 저질러 준 저자들이 나타났다. 엄마 넷이 모여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들은 육아가 달콤하다고 얘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단짠단짠도 아니다. 육아는 단짜라짜라짠짠이었다. 아주 잠깐 달콤하지만, 나머지 시간은 짜디 짜고, 또 짜다며, 육아의 어려움을 시원하게 털어내주었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책 표지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책 표지
ⓒ 푸른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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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도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한 것처럼 희로애락이 공존한다는 걸 인정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사람이니까요.

이 책 속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는 그간 익히 들어온 육아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 아름다운 임신부의 D라인 이야기 말고, 다리가 치골에서 탈골한 듯 고통스러운 치골통. 둘째 출산 직전 유서를 쓸 수밖에 없던 이유. 극기훈련에 가까운 조리원 모유수유 정책과 출산하자마자 은근히 들이미는 조리원 산후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대한 반론.

육아에 대한 현실 조언만으로도 속이 후련했건만, 엄마로 살면서 겪게 되는 부조리함까지 낱낱이 드러내준다. 현실 육아에는 반드시 꼬인 실타래가 있기 마련이었다.

엄마는 커리어를 축소하려 하는데, 아빠 커리어는 끄떡없는 양육 현실. 조부모님의 시간이 또다른 헌신으로 강요되는 육아. ​엄마에게 단 한 가지 감정만을 요구하는 육아. 아이 용품에서부터 시작하는 서열 나누기. 산모가 쉬게 놔두지 않는 조리원.

꼬인 실타래를 푸는 방점은 '균형'이다. 육아에서 도망치라고 하지도 않고, 마냥 헌신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육아는 모든 걸 희생해 아이에게만 헌신해야 할 성질도 아니고, 부모의 삶만 중요해서 도망쳐야 할 대상이 아닌 거다. 다만,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독려하는 책이다.
 
2세를 맞이하기로 결정한 시기, 남편은 어떻게 하면 일을 늘려 돈을 더 많이 벌까 고민했고, 나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줄이고 애를 볼까 알아봤다. 남편은 커리어를 더 키워가는 방향으로, 나는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했다. 애 낳고 육아 지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우리는 방향을 틀었다. 함께 흔들리기로 했다.

학창시절부터 고민해온 진로와 적성의 결말을 보기 위해 일하는 엄마 되기, 어린이집 키즈노트에 아빠가 가입하기, 조부모님의 황혼육아 헌신에 상응하는 예의바른 용돈 드리기, 육아용품은 '있어빌리티'고 뭐고 엄마 편한 게 제일이라는 담담한 인정, 산후조리원에서 최대한 몸조리하고 오라는 배려, 어린이집을 믿기 위해 양육자가 해야 할 일들까지 나열해준다.

'아빠'가 실종된 유치원 안내장

아이 낳은 여성들의 이런 푸념이, 도시 괴담처럼 느껴지실지도 모른다. 마음이 갑갑하고 지친다고 털어놓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파헤쳐보면 사실은 별거 아닌 일인데도, 괜히 부풀려서 무시무시한 괴담으로 변형한 걸까? 엄마들이 예민한 건 아니냐 반문하실 수 있다. 하지만 지난주 금요일, 큰 아이 유치원 가방에는 괴담의 실체가 들어 있었다.
 
 유치원 10월 부모교육자료. 유치원 선생님들의 성 인지 감수성의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양육주체가 여전히 '엄마'임을 반증하는 자료다.
 유치원 10월 부모교육자료. 유치원 선생님들의 성 인지 감수성의 문제로 보이지 않았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양육주체가 여전히 "엄마"임을 반증하는 자료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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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가방 속에는 10월 부모교육자료가 반듯하게 접혀 들어가 있었다. 유인물의 제목은 분명 '부모' 교육이었다. 아빠와 엄마 모두를 대상으로 한 자녀 독서 지도 자료였다. 그런데 여기에 '아빠'는 단 한 글자도 없다. 책 읽어주는 '엄마', 그림 읽기를 도와주는 '엄마', 아이에게 책 읽어 달라고 요청하는 '엄마',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로 길러주는 '엄마'. 유치원 안내장에서 아빠가 실종됐다. 
 
아이는 부부가 같이 만들었는데 정작 애 키우는 건 엄마의 몫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회, 부성신화는 없지만 모성신화는 넘쳐나는 현실, 거기서 내 불행의 역사가 시작된 거였다. 아빠'도' 육아에 참여하는 시대라지만 '애는 아빠가 키워야지.' 같은 신화적 기준이 그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는다. 21세기에 접어들어도 남성의 육아 참여시간은 고작 하루 평균  6분(2016년 기준)이다.

아이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남편 옆에서, 직무유기를 한 듯한 기분 때문에 도무지 쉴 수가 없어 사소한 집안일이라도 했던 분들이 나 말고도 계실지 모른다. 나를 비롯해 위축된 엄마들을 위해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네 저자의 발랄한 악행이 필요하다. '애는 엄마가 키워야 잘 큰다'는 생각만이 옳은 것처럼 만연해, 이 와중에 상처받는 엄마들을 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악행 때문에 당장 불편할 수 있다. 흔들리는 가치관을 다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이것만이 옳아'라고 여기던 고정관념을 흔들리게 할 계기는 된다. 작은 고민이 연속되면 인류는 꼬인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고, 조금씩 진보해나간다. '대체 엄마를 돌봐주는 건 누구죠?'라고 씩씩하게 목소리 내 준 네 명의 저자의 악행이 반가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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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육아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육아에만 매몰되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 삶과 아이 삶의 균형, 아내와 남편 역할의 균등이 필요했다.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육아로부터 도망치는 것도, 육아에만 매몰되는 것도 아니었다. 부모 삶과 아이 삶의 균형, 아내와 남편 역할의 균등이 필요했다.
ⓒ 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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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dahyun0421)에도 실립니다.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 임신.출산.육아의 전지적 엄마 시점

홍현진, 최인성, 이주영, 봉주영 (지은이), 푸른향기(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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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