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책을 읽기가 버거운 순간이 간혹 온다.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늘상 책만 읽을 순 없는 노릇이다. 지겨울 때도 있으며, 쳐다보고 싶지 않은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독서를 통해 영감을 받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지만 그냥 만사가 다 귀찮을 때 있지 않은가. 난 그럴 때 스릴러 소설을 읽곤 한다. 요근래 독서에 무기력했던 시기, 그 때 난 <29초>를 읽기로 작정 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삭제하고 싶은 이름이 하나쯤은 있다"
 
29초 호의를 베푼 댓가치고 너무 크다고 해야할지, 혹은 위험하다고 해야할까. 29초 간의 통화 속 주인공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을까. 나라면?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 29초 호의를 베푼 댓가치고 너무 크다고 해야할지, 혹은 위험하다고 해야할까. 29초 간의 통화 속 주인공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했을까. 나라면? 당신이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상상해 보게 된다.
ⓒ 이의성

관련사진보기

 
주인공 세라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30대 여성으로, 힘겨운 삶 속에서 늘 고군분투한다. 상사인 교수의 일상적인 성희롱과 괴롭힘에 시달리지만 부당한 상황에서 나름 명확히 선을 그으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점차 교묘해지고 악랄해지는 괴롭힘 속에서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우연히 한 여자아이를 구하게 되고 그 아이의 아버지 '볼코프'는 그녀에게 요상한 제안을 한다. 그가 건네준 휴대폰 속 번호로 전화를 걸어 '없애고 싶은 사람 이름'을 말하면 그 대상을 없애주겠노라고.

법과 질서, 그리고 양심과 상식이 우리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적도 있었다. 젊은 날의 나는 그러했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때 믿었던 그것들이 얼마나 연약한 것이었는지 잘 안다. 맞서 싸우기보단 피하고 도망치는 방편을 선택해왔을 30대 여성들은 특히나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평범한 직장인들, 특히나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겪었을 법한 무언의 폭력과 일상적인 괴롭힘을 잘 묘사하고 있다. 처음엔 가볍게, 그리고 점차 그 강도를 높여 거세지게 되는 일상적인 폭력에 대해 말이다.

불쾌하면서도 매력적인, 그러나 낯선 이로부터의 제안이었기에 주인공 세라는 이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러나 계속 여운이 남는다. 뇌리에 박힌 그 낯선 이의 말이 쉬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기회일까, 시험일까.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과연 우린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재미로 읽는 스릴러 소설임에도 한 번쯤 상상해 볼 법한 상황과 함께 독자에게 고민해 볼만한 여지를 준다.
▲ 기회일까, 시험일까. 욕망과 도덕 사이에서 과연 우린 어떤 선택을 내려야 할지, 재미로 읽는 스릴러 소설임에도 한 번쯤 상상해 볼 법한 상황과 함께 독자에게 고민해 볼만한 여지를 준다.
ⓒ michael by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주인공 세라에게 주어진 것처럼, 우리에게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증거도 뭣도 남기지 않은 채 한 사람의 생사를 박탈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 누군가를 죽여선 안된다는 건 알지만 그 사람이 죽도록 미운 사람이라면? 죽여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이따금 우린 상상이라도 하게 되지 않나. '저 사람만 없으면 내 인생이', '저 사람만 없다면 내 위치가', '저 사람만 없다면 내 행복이 조금은 더' 따위와 같은 상상 말이다.

생명의 존엄에 대해 언뜻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혹은, 정정당당한 대결이 불가능한 저열한 인간과 마주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나는 주인공 세라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지, 혹은 다른 선택을 했었을지 상상해보며 나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점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휘몰아치는 재미부터 먼저 만끽할 수 있겠다.

서두에 언급한대로 독서에 무기력한 때가 온다면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순식간에, 그리고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개발이나 정보의 취득 등 독서를 하는 수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이유는 사실 재미 그 자체가 아닐까. 독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오히려 독서를 멀리 하는 건 아닐런지.

세계문학 한 권만이 독서가 아니라, 얄팍한 잡지 한 권, 만화와 삽화 가득한 책 한 권 모두 똑같은 독서라는 점에서 책을 너무 어렵게 생각말고 그저 읽는 재미 자체에 빠져볼 수 있길. 이 책 역시 그 방편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참고 하길 바란다.

29초

T. M. 로건 (지은이), 천화영 (옮긴이), arte(아르테)(2019)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립 출판사, 그리고 독서모임을 운영합니다. 책을 매개로 한 모든 활동을 지향합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