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공지능(AI) 기술로 인간의 얼굴을 합성한 '디지털 휴먼'을 탄생 시켜 모델 촬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 개발 중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한 업체는 수많은 인간의 얼굴을 촬영한 모습들을 합성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얼굴 사진을 만들고 이를 배포하는 것을 시작으로 AI 모델 에이전시 사업을 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얼굴은 결국 무수히 많은 얼굴 형태의 데이터를 사용한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얼굴을 일컫는 것이다. 원본이 드러나지 않아 초상권이 문제 되지 않는 매력적인 얼굴, 나는 그런 얼굴을 4년 전 한 영화에서 보았다. 

영화 <엑스 마키나>는 기계장치를 통해서 온 신이라는 뜻으로 지난 2015년 1월 개봉한 공상과학 영화다. 
   
주인공 칼렙(도널 글리슨)은 IT회사 블루북에 다니는 프로그래머로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벤트에 당첨돼, 천재 개발자이며 창업자인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이 사는 첩첩산중의 대저택에 초대받는다. 네이든은 칼렙에게 일주일간 놀기만 하다 가든지, 컴퓨터의 인지능력을 테스트하는 튜링 테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하든지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한다.

자신이 뽑혔다는 사실에 고무된 칼렙은 프로젝트 참여를 택하고 네이든은 이미 기초적인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라는 매혹적인 얼굴을 한 여성 인간 로봇을 소개한다. 
   
에이바는 인간의 얼굴과 인간의 손을 가졌으며 몸체는 기계적 요소가 겉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로봇 인간이다. 그는 유리로 된 방에 갇힌 상태로 칼렙을 만난다. 칼렙과 에이바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가까워지고 칼렙은 잔인한 술주정뱅이 천재인 네이든을 증오하게 된다. 결국 칼렙은 에이바의 탈출을 돕고, 탈출 과정에서 에이바는 네이든을 죽이고 건물 안에 갇혀 소리치는 칼렙을 무시한 채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전자 기계 장치였던 몸에 인조 피부를 씌워 인간의 몸으로 변신한 에이바가 멋진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붐비는 도시의 거리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바쁘게 거리를 오가는 군중 속에서 에이바를 찾을 수가 없다.

사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천재 개발자 네이든이 짜 놓은 각본이었다. 그가 죽는 것만을 빼고. 네이든은 인간과 구별할 수 없는 인조인간을 만들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희생자 칼렙이 필요했다. 
       
에이바와의 탈출 계획 과정을 네이든이 모두 관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칼렙은 네이든에게 묻는다. "당신은 내가 코딩을 잘해서 뽑은 게 아니라,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검색한 끝에 뽑았다"고. 칼렙은 가족이 없고 여자친구도 없고, 연민을 잘 느낀다. 칼렙은 데이터 분석에 따라 골라진 인물이었을 뿐이다.

영화가 뒷부분으로 향해 가면서 관객 역시 칼렙과 에이바의 감정에 이입되어, 에이바의 탈출을 기원하게 된다. 네이든이 살해를 당해도 불쌍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칼렙과 에이바의 해피 엔딩을 기대하기까지 하는데, 에이바가 건물에 갇힌 칼렙을 냉정하게 떠나고 인간의 세상으로 동화되어 들어갈 때야 묵직한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네이든이 창조한 에이바는 블루북이 수없이 많은 핸드폰을 해킹해서 얻은 데이터를 융합해 만든 결과물이다. 데이터 절도는 영화가 개봉되었던 2015년 이전부터 발생했고 <엑스 마키나>는 미래에 대한 경고였는지 모른다. 에이바는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에이바는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창조되어 인간보다 더 깊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한 모습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는 외계인은 외계 행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인공 지능이 스스로 발전한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