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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에 있는 회사에 대해 법정수당을 추가 지급해도 '추가로'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민사부(재판장 강경구․채동수․이상완 판사)는 창원 한국공작기계(주) 노동자 8명이 회사를 상대로 냈던 '(통상)임금'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9월 26일 판결했고, 2일 원고측이 판결문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1과 같이 원고 승소판결하면서 회사에 대해 노동자 한 명당 1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의 임금을 지급하고 소송비용을 모두 부담하도록 판결했다.

한국공작기계는 산별인 전국금속노동조합과 2012년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동자들은 2012~2014년 사이 단협에 따라 상여금을 제외한 통상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받아왔다.

한국공작기계는 2016년 7월 창원지법에 회생절차개시결정을 받았고, 법원은 관리인을 지정했다.

노동자들은 2015년 회사를 상대로 "기존 통상임금에다 상여금을 더하여 산정한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한 법정수당에서 이미 지급된 법정수당을 공제한 나머지 미지급 수당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는 "단체‧임금협약의 합의에 반하여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여 법정수당을 추가로 청구하는 것은, 회사에게 예측하지 못한 재정적 부담을 지워 그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정했다.

'신의칙' 적용 여부가 쟁점  

'신의칙' 적용 여부가 이 사건의 쟁점이다. 신의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는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하여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추상적 규범을 말한다.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하려면 상대방의 신의에 반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정의 관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정도의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통상임금의 신의칙과 관련해, 대법원 판례가 있다. 대법원은 2013년 12월 18일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제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는 올해 나온 판례에서 다소 변화가 있다. 대법원은 2019년 2월 14일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등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여 신의칙에 위반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했다.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법원.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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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작기계와 관련한 사건에, 항소심 재판부는 "어려운 경영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상 통상임금을 기초로 산정한 법정수당을 추가 지급함으로써 현재의 경영 상태에 더해 경영상의 중대한 위험이 가중된다거나 추가로 기업의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소송제기와 1심 판결 선고 무렵인 2015년의 한국공작기계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으로 볼 때, 원고들에게 이 사건에서 인정된 추가 법정수당을 충분히 지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는 회사가 법정관리(2016년)에 들어가기 전인 2015년에는 2012~2014년 사이 발생한 '추가 임금'을 지급할 수 있었던 것으로 재판부가 본 것이다.

재판부는 "한국공작기계가 회생절차에 이르게 된 원인은 해외매출채권 회수 불능과 회수 지연, 매출액 감소에 따른 누적 영업손실과 금융비용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보일 뿐, 소속 근로자들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것이라거나 그 외 근로자들의 책임으로 돌릴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3자 매각과 관련해, 재판부는 "한국공작기계를 제3자에게 매각할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국공작기계의 자산과 부채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인정된 추가 법정 수당이 매각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법정수당의 근거가 되는 과거의 연장‧야간‧휴일 근로로 생산한 부분의 이득은 이미 한국공작기계가 향유하였고, 원고들이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할 수 없다"며 "원고들의 청구가 정의와 형평 관념에 위배되는 정도가 중하고 명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노동자들을 대리했던 김두현 변호사(금속법률원)는 "통상임금 청구 때문에 직접 위기에 처할 정도가 아니라면, 경영 상태가 나쁘더라도 통상임금 청구를 신의칙으로 제한할 수 없다고 정면으로 판단한 사례"라며 "기업 경영 위기의 책임을 근로자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는 기존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조금 더 구체화한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태그:#부산고등법원, #통상임금, #한국공작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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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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