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2019 월드컵 '행복 배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2019 월드컵 '행복 배구' ⓒ 국제배구연맹

 
여자배구 대표팀이 2019 월드컵을 끝으로 올해 국제대회를 모두 마감했다. 5개월 동안 빡빡하게 달려 온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월드컵 대회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얼굴 표정은 한없이 밝았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많은 소득을 얻었기 때문이다.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지난달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뜨거운 포옹들이 연신 이어졌다. 공항까지 마중 나간 수많은 팬들도 대표팀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지난달 14일부터 29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2019 여자배구 월드컵' 대회에서 6승 5패(승점 18점)를 기록하며, 12개 참가국 중 6위를 차지했다. 성적과 내용 모두 직전 대회인 2015 월드컵보다 초과 달성했다. 

한국은 2015 월드컵에서 5승 6패(승점 16점)로 6위를 기록했다. 이번 2019 월드컵은 세계 강팀이 더 많이 출전했음에도 승수와 승점을 더 쌓았다.

2015 월드컵은 한국보다 세계랭킹이 낮은 나라가 도미니카, 쿠바, 아르헨티나, 페루, 케냐, 알제리로 6팀이나 됐다. 실제로 한국은 이들 6개국 중 쿠바에게 패하고, 나머지 5개국에 승리를 거두면서 최종 5승 6패를 기록했다. 한국보다 세계랭킹이 높은 국가에는 1승도 거두지 못했다. 특히 숙명의 라이벌 일본에게도 0-3 완패를 당했다.

2019 월드컵은 한국보다 세계랭킹이 낮은 나라가 도미니카, 아르헨티나, 카메룬, 케냐로 4팀밖에 없었다. 대륙별 구성을 살펴봐도 유럽 강호가 2팀에서 3팀으로 늘어났다. 북중미, 남미, 아프리카 대륙도 2015 월드컵보다 강팀들이 출전했다.

또한 이번 대회는 김연경을 러시아, 네덜란드, 케냐전 3경기에 휴식 제공 차원에서 통째로 출전시키지 않았다. 2015 월드컵에서는 전 경기에 출전했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훨씬 알차고 풍성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한일전에서 3-1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9월 24일에는 비록 1.5군이지만 '세계랭킹 1위' 세르비아를 3-1로 꺾었다. 급기야 같은달 28일 세계랭킹 4위 '브라질 1군'마저 격침시면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세계랭킹 3위 미국 1군과 경기에서도 1-3으로 패했지만, 내용면에선 선전했다. 한국도 세계적 강팀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해법을 확인한 순간들이었다. 아울러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 획득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주장 김연경은 귀국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렇게 잘할 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하다 보니 잘돼서 욕심이 났다. 메달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는 어느 팀을 만나도 이길 것 같은 느낌과 자신감이 생겼다"며 "도쿄 올림픽에 가게 된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확 달라진' 한국 여자배구... "어느 팀도 이길 자신감 생겼다"

사실 성적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따로 있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배구 스타일이 이전과 크게 달라졌고, 전반적인 경기력과 수준도 한 단계 상승했다는 점이다.

대표팀은 이번 월드컵에서 경기를 거듭할수록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공격과 수비 조직력도 이전보다 좋아졌다. 찬스 상황에서 2단 연결과 득점 과정이 더 빠르고 다양하고 정교해졌다. 경기 패턴 측면에서도 윙 공격수들의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이 대폭 늘어났고 품질도 좋아졌다. 센터의 중앙 속공이나 이동 공격도 계속 늘려갔다.

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대목이 그런 '공격 다변화'였다.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정상권에 근접하기 위해서다. 승기를 잡아놓고도 연속 실점으로 역전패를 당하는 패턴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최우선 보완 과제'였다. 때문에 중요한 순간(클러치 상황)에도 파이프 공격과 센터 공격을 적극 활용하고,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는 측면은 매우 긍정적이다. 또한 대표팀의 서브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까다롭고 다양했다. 더 연구하고 개발해서 세계 최고 서브 군단으로 경쟁력을 갖출 필요성이 생겼다.

대표팀 선수들이 도쿄 올림픽 출전이라는 최고 목표를 위해 똘똘 뭉친 응집력도 돋보였다. 서로 믿고 의지하고 도와주는 단결력, 선진 배구에 녹아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려는 자세가 대표팀을 하나로 만들었다.

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올해 국제대회를 통해 지난해보다 기량이 크게 늘었다. 역대급 살인적인 국제대회를 치르면서도 선수들의 얼굴 표정이 밝았던 핵심 이유이다.

공격 삼각편대, 드디어 '정상 가동'
 
 '세계랭킹 4위' 브라질 1군 격침시킨,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2019 여자배구 월드컵 (2019.9.28)

'세계랭킹 4위' 브라질 1군 격침시킨,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2019 여자배구 월드컵 (2019.9.28) ⓒ 국제배구연맹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팀 선수 14명은 기량 향상과 함께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해 냈다. 김연경은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특히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상황에서 종결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김연경의 진가는 한일전, 세르비아전, 브라질전 등 중요한 승부처에서 잘 드러났다. 한일전 3세트 막판, 두 번의 역전 위기 국면에서 강력한 파이프 공격을 연거푸 성공시켰다. 그리고 23~25득점까지 내리 3연속 득점으로 세트의 마침표를 찍었다. 세르비아전에서도 4세트 19-19 동점 상황에서 25-23으로 승리할 때까지 혼자서 내리 6연속 득점을 올렸다. 브라질전에서도 25득점으로 양 팀 통틀어 최다 득점을 올렸다. 분수령이었던 3세트에서 막판 블로킹과 끝내기 득점으로 승부의 쐐기를 박았다.

경기력과 컨디션도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2단 연결된 어려운 볼을 대각선으로 상대 코트에 꽂는 경우도 종종 나왔다. 수비에서도 리베로 못지않은 서브 리시브와 디그(상대팀 공격을 걷어올리는 것)를 선보였고, 2단 연결도 안정적이고 정확했다. 팀 전체를 뭉치게 만드는 리더십과 친화력도 그가 가진 큰 장점이다.

김희진은 '라이트 공격수다운 라이트'로 거듭났다. 이는 한국 여자배구의 최대 취약 포지션이 정상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때문에 라바리니호의 역작으로 손꼽힌다. 레프트 포지션도 이재영이 공격과 수비에서 맹활약하면서 공격 루트가 더욱 다양해졌다.

공격 삼각편대가 제대로 갖춰졌다는 점은 이번 월드컵의 커다란 성과다. 이재영은 월드컵 득점 부문에서 한국 선수 중 가장 많은 143득점(전체 10위)을 기록했다. 김희진도 거의 대등한 139득점(전체 12위)을 올렸다. 김연경은 경기 출전 수가 더 적었음에도 136득점(전체 14위)를 기록했다. 김연경 의존도를 줄이면서 김연경의 클러치 능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한 셈이다.

세터·리베로 업그레이드... 교체 멤버도 부활 '주전 경쟁'

센터진은 김수지가 국제대회 경쟁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양효진과 박은진도 스피드 배구 적응도를 높였다. 특히 '신예 센터' 박은진(20세·187cm)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중앙 속공과 이공 공격이 날카로워졌다. 센터진의 속공 빈도와 성공률만 더 끌어올린다면, 한국은 스피드 배구의 완전체를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세터진도 이다영, 염혜선의 토스워크와 스피드 배구 운영 능력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리베로는 김해란, 오지영이 세계 정상급의 실력을 뽐냈다. 김해란은 월드컵 디그 부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전성기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다.

박정아, 이소영, 강소휘, 하혜진도 교체 멤버로 들어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박정아는 마지막 미국전에서 팀 내 최다 득점(15득점)을 올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쐈다. 경쟁 포지션인 이재영, 김희진과 '협력적 주전 경쟁'을 할 가능성이 생겼다.

이소영도 투입될 때마다 좋은 수비 능력을 선보였다. 강소휘는 강력한 스파이크 서브로 상대팀을 긴장시켰다. 미국전 3세트 승리는 강소휘의 활기찬 공격과 연속된 강서브가 큰 기여를 했다. 하혜진도 케냐전에서 팀 내 최다 득점(9득점)을 올리며 기염을 토했다.

이번 월드컵은 어느 한 선수만 치켜세울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성장한 대회였다. 최대 수확을 거둔 당사자는 '팀 대한민국'이었다. 

한일전, 일본 인기 드라마 능가... 국내 시청률도 '대박'
 
 여자배구 한일전, '1만 2000명' 만원 관중 열기... 2019 여자배구 월드컵, 요코하마 아레나 경기장 (2019.9.16)

여자배구 한일전, '1만 2000명' 만원 관중 열기... 2019 여자배구 월드컵, 요코하마 아레나 경기장 (2019.9.16) ⓒ 국제배구연맹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의 뜨거운 선전은 대회가 열린 일본과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도 큰 관심과 감동을 안겨 주었다.

특히 한일전은 일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모았다. 일본의 주요 지상파 방송사인 '후지TV'는 이번 월드컵 대회 일본 팀의 전 경기를 생중계했다. 일본 시청률 전문 조사기관인 '비디오 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여자배구 월드컵 한일전의 시청률은 12.3%로 조사됐다. 

이는 후지TV가 한 주간(9월 16일~22일)에 방영한 모든 프로그램 중에서 최고 시청률이다. 인기 드라마를 능가했다. 또한 2019 여자배구 월드컵 대회 전 경기를 통틀어 최고 시청률이었다. 2위는 대회 마지막 경기인 일본-네덜란드전(9월 29일)의 12.1%였다.

관중과 언론의 열기도 가히 '올림픽 본선'급이었다. 한일전이 열린 요코하마 아레나는 1만 2000명의 만원 관중이 가득 들어찼다. 한일전에 패한 일본 대표팀의 나카다 쿠미 감독은 쏟아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국내에서도 여자배구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한 케이블TV 방송사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채널 인지도와 보급률이 낮은 점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흡족한 성과를 거두었다.

SPOTV 관계자는 1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한국 팀 전 경기의 평균시청률이 기대 이상이었다"며 "한국-브라질전은 오전 11시 취약 시간대 경기였음에도 당일 오후에 열린 프로야구 최고 시청률 경기만큼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한일전은 재방송을 수차례 실시하고 있음에도 재방송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며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감명 깊고 수준 높은 경기를 펼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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