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실질적으로 개봉한 한국영화는 194편, 이중 독립예술영화는 114편이었습니다(2018년 영진위 통계 기준). 1년 극장 관객 수 2억 명을 돌파했음에도 한국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은 언제부턴가 100만 명 언저리입니다. 잘 만든 독립영화라도 1만 관객 모으기도 어렵다는 호소가 나옵니다. 대기업 투자배급사 중심 산업시스템에서 한국 독립예술영화 정책이 소외돼 온 것도 사실입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몇 차례에 걸쳐 국내 독립영화 각계의 목소리를 싣고 함께 실질적 대안 마련을 고민하려 합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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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작사 아토(ATO)의 김지혜(좌)-제정주 대표(우)

영화제작사 아토(ATO)의 김지혜(좌)-제정주 대표(우) ⓒ 아토 제공

 
한국예술종합학교 기획 전공 출신 PD 4명의 만남이 이렇게 이어질 줄 누구도 예상 못 했다. 프로듀서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한 이들이 차린 제작사 '아토(ATO)'. <우리들>을 시작으로 최근 5만 관객을 동원한 <우리집>까지 지난 5년간 제작한 5편의 작품 중 4편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그 때문일까. '따로 또 같이'를 기치로 삼아 서로 협업하거나 때론 각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제정주, 김지혜, 김순모, 이진희를 향해 "너흰 그래도 돈 벌었잖아?"라며 다른 영화인들이 농담과 부러움이 함께 섞인 말을 건넨다고. "잘 아시는 분들이 참..."이라며 기자를 맞이한 아토의 제정주 대표가 한숨 쉬며 말한다. 수익은 수익이지만 그 역시 미미한 탓에 스태프들이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발표한 2018년 한국 독립영화·독립영화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영화 프로듀서의 월평균 월급은 85만 수준. 이마저도 최소 5만 6천 원, 최대 250만 원으로 그 편차가 매우 크다. 설문에 응한 독립영화인들이 전체 독립예술영화계를 아우르는 표본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한국독립영화 20여 년 역사에서 첫 실태조사기에 나름의 의미가 있다. 현재 저예산 및 독립영화진영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제작자'의 생각은 어떨까. 아토 김지혜, 제정주 대표와 만남을 청한 이유다.

두 사람 모두 한국영화 제작사 명가인 명필름 출신이며, 각각 상업영화와 저예산 영화 피디를 두루 경험했다. "우리야 이제 몇 년인데 시네마달, 인디스토리 등 독립영화를 오래 하신 제작사 선배들 말고 우리가 인터뷰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김지혜 대표가 운을 뗐다.

널뛰듯 바뀌는 독립예술영화 정책, 그리고 지난 10년 보수 정권의 블랙리스트 정국에서 선배 그룹은 그야말로 버텨왔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나름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젊은 그룹 제작자들 역시 정책적으로 제안할 게 있어 보였고, 이들의 현실 인식이 궁금한 상황이다. 선배 그룹 제작자들이 인터뷰를 완곡히 거절하면서 든 이유 역시 젊은 독립영화 제작자의 생각을 먼저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수익 나도 차기작 재투자가 어려워 
 
 영화 <우리집>의 촬영 현장. 윤가은 감독과 배우 김나연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영화 <우리집>의 촬영 현장. 윤가은 감독과 배우 김나연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 롯데엔터테인먼트

 
"100억 원대 예산의 영화를 하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는 영화를 하자는 거다."

김지혜 대표의 생각은 분명했다. "한 번도 아토의 영화가 비상업영화라고 생각하며 작업하진 않았다. 몇 백만 관객이 들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걸 하자는 거지 기본적으로 상업영화라 생각하고 임했다"고 운을 뗐다.

"2001년부터 영화 일을 했는데 2000년 중반부턴가 영화계의 냉각기가 온 것 같더라. 내로라하는 제작사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우리가 참 불안정한 산업에 들어와 있구나 싶어 한예종에 입학한 거다. 아토를 이루는 4명 모두 비슷한 고민이 있었다. 선배들이 분명 산업적으로 일궈놓은 게 있는데 이젠 피디들이 연대해서 다른 방향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사실 <무한도전>을 보면서도 왜 우리 영화인 선배들은 연대하지 않고 각개로 하고 있나 생각하던 차였다." (김지혜 대표)

이는 곧 한국독립영화와 상업영화를 통틀어 제작자의 역할이 축소되고 희미해지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연결돼 있었다. "1세대, 2세대 제작자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선 거의 그렇게 족보로 호명되진 않는 것 같다"며 제정주 대표 역시 "아토 작품이 독립영화로 호명되는 걸 부정하진 않지만 갈수록 독립영화를 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줄고 있는 것 같다. 저 역시 필요하다면 목소리를 내야겠다 생각한다"는 말부터 했다. 

"아토 작품이 모두 제작비가 1억에서 4억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제작비를 투자받는 다양한 경우를 접할 수 있었다. 아예 영진위 지원만 받거나 여러 기관의 기금, 대기업과의 협업한 경험도 있다. 이후 영화들도 10억 미만의 저예산 영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업영화와 절대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들>이 5만, <우리집>도 그 정도 관객이 들어서 회사가 잘 운영된다고 보시는데 안정적 회사 운영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나마 여러 피디가 함께 하니 작품을 꾸준히 낼 수는 있었지. 작품의 기획 개발이 편당 3년 정도 걸리는데 그 기간엔 우리도 각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결국 (국가나 민간) 지원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회사가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차기작 재투자를 할 수 있는데 그게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를 보면 1만 관객 이상 든 독립영화가 손에 꼽힐 정도다. 그나마 (CJ 계열인) CGV아트하우스나 엣나인필름 정도다. 시네마달, 인디스토리, 진진 등 순수 독립영화 제작사들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살아남은 아이> <소공녀> 등도 그렇게 좋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2만 명 정도였다. 몇 년 전까지 독립영화 화제작들이 거둔 성취에 비하면 너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김군>이 만 명 넘겼다고 파티했잖나. 좋은 일이지만 씁쓸했다. 우리 서로 그 과정을 너무 잘 아니까." (제정주 대표)


2009년 다큐 <워낭소리>의 200만 돌파, 같은해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독립영화 극영화 부문 최초로 9만을 돌파하는 등 양적 성과를 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1만 관객 돌파가 어려운 현실이다. 김지혜, 제정주 대표 모두 최근 성과를 내고 있는 <우리집> <벌새>의 5만, 10만 돌파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더 바람이 불어 20만, 30만까지 가야 그만큼 독립영화 관객층도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영진위 지원과 민간의 관심 여전히 부족"

영진위는 올해 기획, 개발 부문 지원에 비중을 두는 등 정책 변화를 꾀했다. 이와중에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크린 상한제를 골자로 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가장 취약한 부문이 기획 쪽이긴 해서 작가를 키우려는 영진위의 행보는 찬성한다. 산업군에서 제일 약자는 아무래도 시나리오 작가"라며 김지혜 대표는 "분장, 미술, 기술 스태프보다도 열악하다. 좋은 작가들이 드라마 쪽으로 넘어가서 돌아오지 않는 일도 많은데 우리에겐 마이너스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정책들이 대부분 특정 사건이 발생한 뒤 급하게 하달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정책이 마무리되면 평가하고 보완하는 식으로 꾸준히 개선돼서 장기적으로 길게 보고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표준근로계약서 문제도 <국제시장> 때 나온 얘긴데 그때 (영진위에서) 촬영감독부터 막내까지 모아놓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도 자문위원으로 합류했었다. 임금 등 불균형이 너무 심해서 최저시급을 적용하게 된 건데 막내 스태프에 맞추다 보니 직군별로 분위기가 안 좋아지더라. 그때 느낀 게 정책이 1단계, 2단계, 3단계 이렇게 가는 게 아니라 누군가 안타깝게 사망하거나 사건이 발생한 뒤 급하게 위에서 떨어지는구나 싶었다. 기본적인 정책도 1년 혹은 6개월 단위더라. 표준근로계약이나 임금 정책도 기간을 충분히 갖고 토론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김지혜 대표) 

"1년을 지원한 뒤 성과를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보고 지원하는 게 맞다고 본다. 보수 정권 때 블랙리스트 문제 등으로 독립영화 지원 정책이 잘 진행 안 됐잖나. 수익이 안 난다 혹은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독립영화 펀드도 그때 없어졌다. 영진위에서 이제 좀 바꿔보려 혁신안을 짜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보수 정권 때 무너진 정책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차근히 하겠지만 현장에서 이건 좀 아니라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영진위가 기획 개발을 중점 사업으로 둬서 시나리오 지원을 5단계로 나눠서 하는데 여기에 독립영화는 여전히 소외돼 있다. 독립영화라고 기획 개발 과정이 없겠나. 모든 이야기의 씨앗이 여기서 나오는 건데 배제도 있는 거지. 기성 작가와 신인 작가 구분하지 않겠다는 건 좋은데 왜 여기에 독립영화 기획 개발 지원은 없는지 안타깝다. 서울독립영화제 측에서 하나 만들긴 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하다. 영진위에서 해야 한다고 본다." (제정주 대표) 


제 대표는 이어 제작지원금과 배급 등 유통에 있어서 공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4대 메이저 투자배급사 외 신생 투자배급사가 여러 곳 생겨 영화계에선 규모가 크고 작은 다양한 작품이 제작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잠시 하긴 했다. 제정주 대표는 "신규 투자배급사 역시 독립영화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라며 "겨우 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배급사를 잡지 못해 결국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외장 하드로 들어가고 마는 독립영화가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악순환이다. 1년에 만들어지는 독립영화가 100편(장편 기준)이 넘는데 개봉하는 건 정말 소수다. 유통 플랫폼도 없다시피 하다. 영진위의 제작지원, 개봉지원, 해외마케팅 지원을 다 받을 수 있다면 영화 하나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그걸 다 받는 사례는 전무하다. 그만큼 공적 기금이 아니면 독립영화 제작이 어렵다는 것이다. 막상 만들어져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해도 해외배급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잘 알려지지 못한다. 아토야 여러 피디가 있으니 이런저런 정보를 알게 되는데 (피디가 없거나 경험이 부족한) 창작자들은 해외 진출이 어려운 거다.

영진위가 많이 고민하기에 마냥 탓할 수는 없고, 대기업은 관심이 없거나 지원을 줄이고 있다. 그나마 CGV 아트하우스가 있었기에 독립영화 대표작들이 소개된 게 있었는데 이젠 그것조차 축소하거나 안 하는 분위기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CGV 통한다고 아주 대단한 조건도 아니다. 그나마 알릴 수 있으니 줄 서서 기다리는 거지. 이젠 축소한다고 하니 또 다른 기업이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독립영화 투자, 배급을) 쉽게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신규 투자배급사들은 뭔가 공격적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들도 돈 될 만한 영화를 찾느라 기존 투배사와 별다른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제정주 대표)

 
 영화 <용순> 스틸컷

영화 <용순>의 한 장면. ⓒ 아토(ATO)

 
스크린 상한제? "보다 섬세한 정책 필요"

황금 시간대(오후 1시 ~ 오후 11시)에 특정 영화 비중을 50% 이상 넘지 못하게 규제하는 스크린 상한제에 대해서 두 대표는 "전문적으로 알진 못한다"면서도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김지혜 대표는 "CJ, 롯데 등이 극장도 운영하고 투자와 배급도 하는데 이들이 정말 수익을 제대로 내고 있는 건지 궁금하긴 하다"며 "국가의 정책 지원이 없으면 대기업은 수익이 악화되는 이상 언제든 발을 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제정주 대표가 구체적으로 생각을 밝혔다. 

"지난해 <살아남은 아이>(CGV아트하우스 배급)를 하면서 '전국 CGV아트하우스 20관에서만 개봉할래 아니면 일반관에도 할래?'라는 얘길 들었다. 독립영화를 찾는 관객이 주로 가는 지역이 있다는 거였다. 일반 극장에도 개봉하면 그곳 관객 수가 떨어지고 매출이 떨어져서 (점장들) 항의가 있으니 구분해서 하자는 거였다. 우리 같은 사례가 많다. 아트하우스 관 등에서 한국독립영화끼리만 경쟁하는 게 아니라 수입 예술 영화들과도 경쟁하게 되는데 다들 배제당할까 항의도 못 하더라. 그나마 CGV가 독립예술영화 전용 20여 관이 있고 롯데시네마나 메가박스는 매우 미미하다. 그곳 프로그램들은 또 CGV 눈치를 보며 작품을 배정하니 연쇄 현상이 일어나는 거지. 

상업영화관에서 독립영화 예고편이나 광고가 나오는 걸 본 적 없을 것이다. 예고편을 극장에서 트는 것도 돈이 들어가니 독립영화관에서만 튼다. 반대로 독립영화관에선 상업영화 광고가 나오기도 한다. <우리집>의 경우 롯데시네마 아르떼(롯데의 독립예술영화관 브랜드)에서 배급했지만 관객층을 일반 대중으로 좀 더 확장한 것 같더라. 좌석점유율이 좀 나오니까 극장도 그나마 열어준 것 같다. 

모든 영화가 적어도 개봉한 뒤 2주까진 스크린 수를 유지해야 한다. 적어도 고른 상영시간을 배정받을 권리가 있다. 독립영화는 좀 더 배정받는 방식도 있을 것이다. 극장 광고도 저예산, 독립영화는 좀 할인해주든가. 개봉관을 열어주는 것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극장 측에선) 작품의 예매율을 보고 정한다는데 광고 노출 등 대중에게 보이는 빈도 자체가 다른데 그게 무슨 의미 있나? 광고가 자주 보이는 상업영화가 예매율이 높을 수밖에." 


이 지점에서 제 대표는 "스크린 상한제든 뭐든 정치인이 법안을 발의할 때 좀 더 자세히 알고 준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섬세한 법안 발의했으면 하는, 그리고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제작자와 창작자도 돌아봐야 할 것들

제작한 대부분의 영화가 수익을 낸 아토의 지향점은 분명해 보인다. 예산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져 가는 한국영화계에서 저예산으로 다양한 영화를 '꾸준히' 만들고 싶은 것. 앞서 제정주 대표가 언급했듯 CJ ENM, 롯데컬처웍스, NEW, 쇼박스 메이저 4강의 영화투자배급사 구조가 최근 깨지고 있긴 하다. 네이버의 스튜디오N, (주)메리크리스마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등이 대규모 자본력을 바탕으로 출범했지만, 그 에너지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으로 흐르고 있지는 않다는 게 독립영화계 시각이다.

"신규 투자배급사가 생겼다고 하니 좀 더 새로운 걸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그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그룹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빚을 내서 영화하는 거지. 저예산 영화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우린 보고 있다. 아토의 여섯 번째 영화는 제작비가 적은데 아이돌 배우가 캐스팅됐다. 독립영화가 우울하거나 현실감이 강하다는 인상이 있는데 우리끼린 (그걸 벗어나려)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제정주 대표)

김지혜 대표는 "(관객들 구미가) 당기지 않는 영화를 하지 않게 제작자나 창작자들 역시 반성할 지점이 있다고 본다"며 "예술인을 지원하는 복지는 프랑스 같은 나라보다 약하지만 창작자들이 일단 작품을 만들겠다고 결심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지원해주는 곳이 꽤 있다"고 전제하며 제작사 입장에서 한국독립영화 시스템의 열악한 지점을 꼽았다. 

"PGK(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 위원을 하면서 여러 안건을 구체적으로 살피는데 2001년 설립 초기 때 있던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더라. 사실 52시간 근로는 제가 2004년 명필름에서 일할 때 나름 지켜졌던 것이다. 이제야 영화계에 확대돼 해보려 하는데 근로시간에 있어서 갑인 제작사의 역할, 을의 역할이 있잖나. 이런 것에 대한 개념이 잘 안 잡혀 있어 보인다. 각자 가져가야 할 것만 생각하고 공생 개념이 부족한데 직업 교육이 필요한 지점 같다. 

스태프도 제작사도 서로 피해자라는 생각이 강하다. 다행인 건 노조가 생기고 직업군 별로 조합이 생겨서 각자가 조합별로 활동하게 됐다. 좀 더 나아가 이들이 함께 얘기할 협의체가 필요해 보인다. 제작사가 스태프와 협의해 해결하는 게 아닌 제작사, 투자사, 스태프까지 한 자리에서 얘기할 수 있는 협의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엔 정기적으로 만나서 협의하는 그룹이 있다더라. 현재 국가에서 해주는 것만으로는 서로가 아쉬운 게 있으니 같이 모여서 (정책을 만들어) 제안해보자는 거다. 영화계 종사하는 그 누구도 영화계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싸울 때도 있겠지. 각 집단마다 생각은 다르니 싸우면서 합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지혜 대표)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살아남은 아이 스틸컷 ⓒ CGV아트하우스, 엣나인필름

 
"한국독립영화는 현 시스템에서 공정 경쟁 불가능"
 
독립영화계를 포함한 영화계 전반에서 함께 논의할 때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건 무엇일까. 두 대표는 한국독립영화가 현재 환경에선 이미 산업적으로 도태되기 쉬운 구조임을 지적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구도는 물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과연 상업영화, 예술영화, 독립영화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스템인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제정주 대표는 "경쟁이 불가능한 환경"이라 단언했다. 그는 "CGV 아트하우스나 롯데시네마 아르떼 등 대기업과 협업해서 영화가 잘 된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니다"라고 심경을 전했다.

"이렇게 비유하면 한 소리 들을 수 있겠지만 독립영화를 지원하는 걸 일종의 복지라고 본다면 생존 경쟁만 하라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모든 영화를 포용해서 지원할 순 없기에 단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지원이 필수라면 계획을 섬세하게 짜야지. 모든 독립영화가 극장 개봉할 필요는 없다. 온라인 플랫폼도 여러 방식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다고 본다. 지역을 다니면서 공동체 상영을 하다 보면 관객들 수요가 꽤 있다. 우리가 그런 관객을 찾지 못하는 거지. <우리들> 때도 공동체 상영을 꽤 했다. 그런 사업을 보편적으로 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수익은 극장 수익, IPTV나 온라인 플랫폼 등의 부가 수익, 해외 수익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국독립영화는 극장에서도 쉽지 않고, 부가 시장에서도 노출이 잘 안 된다. 보다 혜택이 고르게 갔으면 좋겠다. 독립영화 쪽에서 가장 시급한 건 사실 자금이다. 제작지원금이지. 영진위가 애를 많이 쓰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건 맞다. 아토 영화가 지난 4년간 많게는 제작비가 4억, 지원금을 못 받았을 땐 1억 정도였다. 이렇게 운영하는고 있는데 어디에서 연락 와서 (적은 제작비로 영화를 만드는) 노하우를 알려달라더라. 이건 노하우가 아니라 누군가의 뼈와 살을 깎아서 만드는 거다." (제정주 대표)


적은 예산이기에 촬영 회차를 줄이고, 스태프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며 감독과 피디는 1인 다역을 해내는 상황이다. 노하우라면 이게 노하우일 터. 제정주 대표는 "이 방식을 계속 할 순 없다. 적정한 제작비 형성이 안 되고 있기에 이러고 있는 것이지 누군가에게 권할 수 없는 방식"임을 강조했다. 게다가 52시간 근로, 표준계약서 적용 등으로 상업영화 평균 제작비가 증가했고, 노동 이슈에 목소리 냈던 한국독립영화계 역시 이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다. "지원금이 늘어나든 독립영화 쪽도 분명 제작비는 현실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혜 대표는 제작사 입장에서 의견을 피력했다. "제작사, 작가, 피디도 상생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수익 배분율을 조정하거나 인센티브제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통상적인 업계 배분율인 6(투자사):4(제작사)만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취지다.

"정책 부문은 실무진들께서 고민하시겠지만, 이번에 <우리집>을 투자배급한 롯데시네마 아르떼 방식이 나름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투자사라고 무조건 60프로를 가져간 게 아니라 우리가 영진위 지원금을 받아온 부분을 인정해서 우리 지분을 60프로로 인정한 것이지. 제작사를 배려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메가박스도 (독립영화에 한해) 배급수수료를 낮추는 식으로 한다더라. 미국 등에선 저예산 예술영화 등 작품에 따라서 수익배분 고집하지 않고 아닌 인센티브를 적용한다고 알고 있다. 고정된 프로덕션 비용을 지급하며, 수익이 나면 성공 보수를 주는 식이다.

무조건 지분을 가져간다면 예산이 가뜩이나 작은데 제작 직군에선 페이를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상황을 고려해야지 통상 수익 배분율만 고집하는 관행은 깨져야 하지 않을까. 보다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물론 이런 논의는 누가 먼저 총대를 메냐의 문제기도 하다." (김지혜 대표)


두 사람의 고민은 곧 한국독립영화, 저예산 영화의 다양성을 산업과 경쟁 논리로 파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 맞닿아 있었다. 제정주 대표는 인터뷰 말미 "아토 역시 향후 3년 정도까진 지금의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며 "활로를 함께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 바람에 다시금 영화계가 제대로 응답해야 할 때가 아닐까.

☞ 이어지는 기사  : "10년 동안 초토화..." 한 독립영화지기의 뼈아픈 조언  http://omn.kr/1l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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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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