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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쿠데타의 핵심 관계자들 12.12 쿠데타에 이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까지 무력 진압하면서 차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한 12.12 핵심 관계자들의 모습. 이 가운데에는 상황이 완전히 끝난 13일 아침에 뒤늦게 합류한 장성들도 있으며 거사과정서 소외되었던 보안사 간부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 12.12 쿠데타의 핵심 관계자들 12.12 쿠데타에 이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까지 무력 진압하면서 차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한 12.12 핵심 관계자들의 모습. 이 가운데에는 상황이 완전히 끝난 13일 아침에 뒤늦게 합류한 장성들도 있으며 거사과정서 소외되었던 보안사 간부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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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행위는 혼자서도 가능하지만 반란이나 쿠데타는 조직과 집단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두환은 조직을 중시했다. 육사 11기 동기생 동창회인 북극성회 회장을 시작으로 군부 내에 사조직을 만들고 관리했다. 군부의 사조직은 악성 암세포와 같은 존재다.

전두환은 하나회와 오성회, 칠성회 등을 조직하고, 결국 이들과 함께 12ㆍ12와 5ㆍ17쿠데타를 감행했다. 그리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12ㆍ12 쿠데타의 총주모자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볼 때 쿠데타를 주동하는 주요인맥은 세칭 하나회와 9ㆍ9인맥으로 크게 대변될 수 있다.

하나회는 육사 11기 가운데 영남 출신들이 생도 시절 만든 오성회와 그들이 위관 시절에 회원을 추가해 만든 칠성회가 그 모체로, 집권자의 친위세력이면서 군부 내 정치 지하단체라고 보는 것이 현재의 통설이다.
  
 육사 생도 시절의 전두환(왼쪽)과 노태우
 육사 생도 시절의 전두환(왼쪽)과 노태우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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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회는 육사 11기의 전두환(용성), 노태우(관성), 김복동(여성), 박승하(웅성), 최성택(혜성)이 모여 만든 동향 출신 모임으로 진해 육사시절 유달리 응집력이 눈에 띄는 모임인데, 이들이 졸업 후 위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교유관계를 늘려 11기의 또 다른 영남 출신 손영길, 권익현, 정호용 등이 가세해 칠성회를 구성한다. (오성회의 박승하가 같이 졸업을 못해 탈락하고 3명이 가세해 7명이 된 것임)

이들은 61년 5ㆍ16 이후 줄곧 정국의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군사정권에서 일정 역할을 확보하기 위한 서클을 조직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급기야 63년 2월, 전두환(당시 소령)의 집에서 칠성회 멤버에 박갑용(대령 예편ㆍ전 수경사 30대대장). 남중수(대령 예편ㆍ전 에너지관리공단 감사), 노정기(소장 예편ㆍ전 필리핀 대사) 등 3명을 추가, 10명으로 하나회를 조직하기에 이른다.

하나회의 첫 번째 세력화는 63년 3월 18일, 육사 총동창회 모임인 북극성회 운영위원회에서 11기 운영위원인 노정기의 강력한 추천 발의로 노태우(당시 대위)가 북극성 회장에 선출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하나회는 63년 7월 6일 4대의혹 사건으로 육사 8기 그룹의 김종필계가 궁지에 몰리고 육사 5기의 김재춘(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부상하자 육사 총동창회의 이름을 빌려 육사 8기를 거세하려는 친위 쿠데타를 기도했으나 북극성회 운영위원회의 반대에 부딪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소위 7ㆍ6사건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회는 육사 출신 장교들 사이에 노출된다. 그러니까 하나회의 존재가 최초로 알려진 것이 지금부터 30년 전의 일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당시 방첩대장이 정승화(12ㆍ12 당시 육군참모총장ㆍ계엄사령관)다. (주석 2)

 
 1973년 4월 29일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 행위에 대한 선고에서 '윤필용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맨 오른쪽)이 재판 내용을 듣고 있다.
 1973년 4월 29일 육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 행위에 대한 선고에서 "윤필용 사건"의 당사자인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맨 오른쪽)이 재판 내용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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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는 다시 1973년 윤필용 사건에 연루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청와대를 비롯 권력 요직에 포진한 동향 선배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하나회가 전두환 중심의 사조직으로 12ㆍ12와 5ㆍ17의 주도세력이라면, '9ㆍ9인맥'은 노태우 정권기의 주도세력이다. 이 사조직은 노태우가 거쳐간 부천 9공수여단과 9사단 출신 인맥을 일컫는다.

하나회의 인맥을 보면 11기의 전두환ㆍ노태우ㆍ김복동ㆍ정호용ㆍ최성택ㆍ권익현ㆍ손영길ㆍ노정기ㆍ박갑룡 등이고, 12기의 박준병ㆍ박세직ㆍ안필준ㆍ최웅ㆍ황인수ㆍ임인식ㆍ정동철ㆍ이광근 등, 13기의 윤태균ㆍ정동호ㆍ정진태ㆍ신세기ㆍ최문규ㆍ오한규ㆍ조명기ㆍ우경윤ㆍ이우재 등, 14기의 이종구ㆍ이춘구ㆍ안무혁ㆍ장흥렬ㆍ문영일ㆍ장기하 등, 15기의 고명승ㆍ나중배ㆍ이대희ㆍ이진삼ㆍ민병동ㆍ김상구ㆍ이상수ㆍ권병식ㆍ박태진ㆍ김중영 등, 16기의 신말업ㆍ이필섭ㆍ장세동ㆍ최평욱ㆍ정순덕ㆍ정만길ㆍ양현두ㆍ최원규ㆍ이지윤 등, 17기의 김진영ㆍ허화평ㆍ허삼수ㆍ안현태ㆍ이현우ㆍ이병태ㆍ임인로ㆍ이문식ㆍ김태섭ㆍ강명오ㆍ이해룡 등, 18기의 조남풍ㆍ김재창ㆍ김정헌ㆍ구창회ㆍ이학봉ㆍ성환옥ㆍ배대웅ㆍ이사용ㆍ반준석 등 19기의 서완수ㆍ김상준ㆍ이택행ㆍ김택수ㆍ최부웅ㆍ최준식ㆍ최윤수ㆍ김정환ㆍ김진섭 등, 20기의 안병호ㆍ김종배ㆍ김길부ㆍ함덕선ㆍ장호경ㆍ김무응ㆍ안광렬ㆍ허청일 등이다.
  
 청년 장교 시절의 전두환.
 청년 장교 시절의 전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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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대부분 장성급 출신으로 군핵심과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에서 정부의 요직을 지내거나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이처럼 하나회 1세대로 불리는 11기부터 20기까지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 주요 요직을 골라 가며 독차지한 것으로 드러난다.

5공 이후 역대 육군참모총장을 보면 황영시, 정호용, 박희도, 이종구, 이진삼, 김진영 중에 황영시만 후원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하나회 회원이다. 또 5공 이후 보안사령관도 전두환, 노태우, 박준병, 안필준, 이종구, 고명승, 최평욱, 조남풍, 구창회, 서완수 등 전원이 하나회 회원이고, 수경사령관도 노태우, 박세직, 최세창, 이종구, 고명승, 권병식, 김진선, 안병호 등 10명이 전원 하나회 회원이다.

청와대 경호실장도 정동호,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 최석립 등 전원이 하나회 회원이고 5공 이후 육군 인사참모부장을 거쳐 간 15명 가운데 13명이 하나회 회원이다. (주석 3)


주석
2> 『광주매일 정사 5ㆍ18 특별취재반』, 『정사(正史) 5ㆍ18』상(上), 94~95쪽, 사회평론, 1995.
3> 앞의 책, 101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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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