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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윽!'

얼마 전 나는 페이스북을 열다가 신음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앱을 누르자마자, '생매장 당하는 돼지'와 '좁은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강제로 사육당하는 돼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돼지열병 사태가 발생한 후 나는 SNS 계정을 열 때마다 심한 불편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불편을 외면하기 위해 빨리 스크롤을 내려 이런 뉴스들을 건너뛰곤 한다.

하지만, 아주 잠깐 스쳐지나가듯 보았을 뿐인데도 고통 받는 동물의 모습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문득 사진 속 돼지들의 모습이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다.

채식을 하고, 동물을 착취한 물건들을 소비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사진을 통해 전달받은 동물들의 고통은 내게 죄책감을 유발했다. 속죄하고 싶은 마음에 코린 펠뤼숑의 <동물주의 선언>(책공장더불어, 2019)을 꺼내들었다. 이 책을 통해 나를 감싸고 있는 불편한 감정의 의미를 직면할 수 있었다.

연민

내가 동물들의 고통에 이토록 민감해진 것은 반려견 은이를 입양하면서부터다. 4년 전 민간유기동물보호소를 통해 은이를 만났을 때, 나는 많이 망설였다. 이미 감당하고 있는 일상의 무게에 낯선 생명체를 돌봐야 하는 책임감까지 더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애절하게 바라보는 은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고, 우리는 가족이 됐다.

은이는 몸짓과 눈빛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식구들이 자신만 남겨둔 채 외출하려 할 때는 금세 눈빛이 슬퍼졌고, "같이 가자" 말을 건네면 눈빛에 생기가 돌면서 작은 꼬리를 마구 흔들어 댄다. 같이 놀고 싶을 때, 혼자 조용히 쉬고 싶을 때, 몸이 불편할 때, 은이는 매번 다른 눈빛과 몸짓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했다.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나는 더 섬세하게 은이의 몸짓과 눈빛의 의미를 알아챌 수 있게 됐다.

은이와 가족이 되고 1년쯤 됐던 어느 날. 가족들과 동물원에 나들이를 갔던 나는 은이의 그 눈빛을 동물원 우리에 갇힌 동물들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한쪽 방향으로 계속 우리를 도는 원숭이의 눈빛에서 절망을, 멍하니 앉아 있는 사자의 눈에서 슬픔을 읽을 수 있었다. 코끼리의 다리 굵기가 다른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마도 운동을 하지 못해 한쪽 다리의 근육이 빠져나갔기 때문이었으리라.

동물들의 눈빛은 그들이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존재임을 명확히 깨닫게 했다. 반려동물만이 아니었다. 동물원에서 사는 동물들, 길가의 동물 등 주변의 모든 생명체들에게서 각자가 타고난 본성대로 살고자하는 욕구가 느껴졌다. <동물주의 선언>에서 코린 펠뤼숑은 이런 깨달음에서 '연민'이 생겨난다고 이야기 한다.
 
나와 타자를 구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동일시하는 연민은 타자를 외형에 따라 종, 종류, 공동체로 분류하지 않고 다 같은 생명체로 인식한다. (12쪽)
 
코린 펠뤼숑 저, 배지선 옮김 <동물주의 선언> (책공장더불어, 2019)
 코린 펠뤼숑 저, 배지선 옮김 <동물주의 선언> (책공장더불어, 2019)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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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

문제는 동물들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자, 마음이 아프고 불편한 일들이 많아졌다는 거였다. 여행지에서 유명한 수족관이나 동물원에 가도 즐겁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돌고래의 멋진 묘기를 보면서도 마음 한켠이 찝찝했다. 아이가 더 어렸을 때, 고래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수족관을 찾아다니고, 제주도의 한 해양센터에서 돌고래를 타고 수영을 하기도 했던 우리 가족의 추억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여행에서뿐만이 아니다. SNS와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나를 종종 메스껍게 했다. 개시장에 팔려나가는 강아지의 슬픈 눈빛, 학대받아 털이 빠지고 피가 나는 고양이의 피부, 공장식 축산 탓에 전염병이 돌 때마다 거의 산 채로 매장 당하는 가축들. '연민'의 마음으로 동물보호단체들을 SNS에 링크해두었지만, 이들이 전하는 소식은 보고 싶지 않았다.

펠뤼숑은 이런 심리상태를 콕 집어서 이렇게 설명한다.
 
너무나 끔찍해서 설마 이것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폭력이 동물들에게 매일 자행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려면 연민을 억압해야 한다. 동물과 인간은 둘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 동물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피와 살로 만들어진 연약한 생명이라는 인식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연민을 억누르지 않고는 현실을 수용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17쪽)

나아가 끔찍한 현실을 외면하고자 '연민을 억압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도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동물이 '감수성'을 지녔음을 알면서도 동물을 도덕적으로 배려하지 않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자신의 섬세함을 억압하는 법을 배운다. 자신과 인종, 종교, 국적, 젠더 등이 다른, 즉 자신과 비슷하지 않다고 간주하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냉정해진다. (15쪽)
 동물학대는 대개의 경우, 사람을 향한 폭력의 징후, 특히 가장 약한 사람, 즉 옛날에 노예라 불리던 사람들, 어린이, 여성, 장애인, 수감자를 향한 폭력의 징후이다. (19쪽)

 변화

나 역시 불편함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연민을 억압하고, 모른척 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회피하려 해도 한 번 본 동물의 고통스런 모습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가족에게는 끊임없이 '연민'을 상기시키는 반려견 은이가 있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이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기보다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섰고, 일상에서 '동물착취'의 흔적을 없애는 생활양식을 선택했다.

먼저, 화장품과 세제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으로 모두 교체했다. 제품에 'cruelty free' 인증마크가 있는지 살펴보고, 때로는 직접 제조사나 수입사에 전화해 물어보기도 했다. 옷이나 가방을 살 때도 동물의 가죽이나 털을 사용한 것은 구입하지 않았다.

계란 등 동물이 생산한 물건을 소비할 때도 '동물복지'를 실천한 제품인지 아닌지를 따졌다. 동물원과 수족관은 우리 가족의 여행 목록에서 제외됐다. 이런 것들을 실천하면서 우리 가족의 일상은 전보다 조금 불편해졌다. 하지만, 연민을 억지로 억압할 때 느끼는 불편한 마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펠뤼숑은 책에서 진정한 변화를 위해 방관하는 다수의 일상에서 동물을 배려하는 작은 불편들이 실천되어야 하며, 이런 불편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현재 동물착취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분노하기보다는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배려해, 그들이 대안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변화가 습관으로 정착되어야 다양한 분야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끌어가는 힘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잠깐의 변덕일 뿐 결과적으로 어떤 변화도 일어났다고 볼 수 없다. (115쪽)
  
연민의 감정을 되살리고, 불편함을 직면하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길은 불편하다. 하지만, 이번 돼지열병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연민을 억압한 채 생명체를 공장에서 찍어내듯 키워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폭력적인 것인지를.

<동물주의 선언>의 관점으로 본다면, '연민의 억압'은 결국 사람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지금 돼지열병 사태를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그 마음을 외면하지 말자. 억압된 연민을 깨우고, 불편을 감수하며, 변화를 실천하자.

동물을 착취한 물건들을 사지 않고, 비인도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육류와 가공물을 소비하지 않는 것 같은 일상의 작은 불편이 '습관'이 되어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 동물과 인간을 향한 폭력이 종식될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 (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동물주의 선언

코린 펠뤼숑 (지은이), 배지선 (옮긴이), 책공장더불어(2019)


태그:#동물권, #돼지열병, #동물복지, #생명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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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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