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 포스터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 포스터 ⓒ 한국영화아카데미


가수를 꿈꾸는 평범한 여고생 이리샤(천우희 목소리)는 자신을 짝사랑하던 친구 진석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알 수 없는 존재에게 영혼을 빼앗기는 광경을 목격한다. 친구의 영혼을 되찾기 위해 뒤쫓던 이리샤는 우연히 '개구리'(심희섭 목소리)를 만나 함께 요정 세계로 떠난다.

요정 세계에서 이리샤는 인간의 영혼을 빼앗아 젊음을 유지하는 '마왕'(김준배 목소리)이 진석의 영혼을 가져갔고, 자신이 진짜 마왕의 딸인데 가짜 마왕의 저주에 걸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리샤는 개구리, 기타 요정 '로비'(김일우 목소리),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저주를 풀고 마왕으로부터 진석의 영혼을 구출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마왕의 딸 이리샤>는 <어쩌면 나는 장님인지도 모른다>(2002), <편지>(2003), <별별 이야기>(2005), <아빠가 필요해>(2005),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 등 단편 애니메이션을 연출하고 2014년 장편 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선보인 장형윤 감독의 신작이다. '순수 한국형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표방한 작품답게 요정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소재로 삼았다.

<마왕의 딸 이리샤>는 2016년 초고를 시작으로 약 2년여 간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연상케 하는,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소녀의 모험담인 <마왕의 딸 이리샤>는 괴테의 시 <마왕>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왕>은 북유럽에서 내려오는 요정 세계에 대한 설화를 괴테가 재해석한 작품으로 아픈 아들을 살리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리는 아버지와 그들을 쫓는 마왕의 모습을 그렸다. 슈베르트는 괴테의 시에 감명을 받아 긴박감 넘치는 피아노 연주로 말발굽 소리를 묘사한 동명의 가곡을 만들었다. <마왕의 딸 이리샤>는 도입부에 슈베르트의 <마왕>을 삽입하여 존경을 바친다.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이리샤와 개구리의 관계는 다른 작품에서도 흔히 접한 '공주와 개구리' 설정을 떠올리게 한다. 장형윤 감독은 그림형제가 쓴 동화 <개구리 왕자>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는 개구리를 공주로 삼은 이유를 "많은 동화에 등장해 익숙한 캐릭터지만, 특별한 일을 해내는 중요한 역할로 그려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올해 개봉한 순수 한국 애니메이션 <레드슈즈>를 연출한 홍성호 감독은 "장편 애니메이션 투자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람들이 알 만한 친숙한 것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바탕으로 한 <레드슈즈>처럼 <마왕의 딸 이리샤>는 괴테의 시 <마왕>과 그림형제의 <개구리 왕자>를 합쳤다. 이것은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척박한 현실을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단편에서 장편 데뷔까지 5년이 넘게 걸린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개봉 당시 4만3888명이란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이번에도 5년의 세월이 흘렀다. 투자가 쉽지 않았음을 쉬이 알 수 있다. 그는 <서울독립영화제 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은 보통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만드는 과정보단 (투자인) 펀딩 등으로 시간이 걸린다"고 힘겨움을 토로했다.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형윤 감독은 줄곧 의인화 등 변화를 활용하여 성장하는 인물을 다루었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선 꿈을 잃은 뮤지션이 얼룩소로 변한다. 그에게 북쪽마녀는 저항할 것인지, 안주할 것인지 질문한다.

<마왕의 딸 이리샤>는 평범한 여고생이던 이리샤가 요정 세계에 가서 공주로 변하여 모험을 떠난다. 그 속에서 이리샤의 성장통을 묘사하고 진정한 사랑을 묻는다. 장형윤 감독은 관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감정'이라고 밝힌다.

"영화 외적으로는 한 소녀의 모험극을 그리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가까운 친구를 잃는 감정 등 사춘기 때 많이 겪는 감정들을 담고 싶었다. 주변 지인들에 대한 감정을 다시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마왕의 딸 이리샤>는 새로움보단 익숙함이 가득하다. 또한, 한국적인 색채는 옅어졌고 보편적인 색채가 강하다. 옥탑방, 반지하, 월세 등 대한민국의 오늘날 풍경 속에서 꿈을 포기하고 희망을 잃은 88만 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렸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와 비교하면 변화가 크다.

<마왕의 딸 이리샤>은 한국이란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중반부턴 무국적의 판타지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 이름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요정 세계에 있을 법한 이름인 '이리샤'에서도 한국과 탈 한국의 묘한 공존이 감지된다. 장형윤 감독은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의 배경이었던 서울을 벗어나 요정 세계에서 한국형 판타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공간과 인물들에서 출발해 점차 판타지가 등장하는 형태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했다."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영화 <마왕의 딸 이리샤>의 한 장면 ⓒ 한국영화아카데미


문제는 시나리오의 품질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제작비 부족의 탓인지 이리샤의 과거, 진짜 마왕과 가짜 마왕의 사연 등 많은 부분을 생략한 상태로 전개한다. 당연히 개연성은 떨어지고 짜임새도 허술하다. 인물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더빙과 입 모양이 맞지 않는 등 기술적인 문제점도 노출한다. 거대한 공정을 거치는 애니메이션에선 예산 확보가 일정한 품질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감독은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이었다. 현재 그는 <부산행>(2016)과 <염력>(2018)에 이어 <반도>(2019)까지 실사 영화에 집중하는 중이다. 중간에 <서울역>(2016)이나 단편 <집으로>(2016)도 내놓았지만, 방점은 실사 영화에 찍혀 있다.

장형윤 감독도 차기작은 실사 영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한예종 전문사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 중인 그는 장편 애니메이션은 투자를 받아서 제작에 들어가는 경우가 쉽지 않아 그나마 빨리 만들 수 있는 '멜로' 실사 영화를 준비한다는 후문이다. 평단과 업계가 주목하던 두 감독이 모두 실사 영화로 진출한 점은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의 안타까운 현실을 방증한다. "국산 장편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 부탁한다"는 장형윤 감독의 말이 어느 때보다 마음에 와닿는다.
장형윤 천우희 심희섭 김일우 김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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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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