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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이트리스트 - 파국의 날>
 <화이트리스트 - 파국의 날>
ⓒ 새파란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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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형형인 일본 경제보복을 다룬 소설이 나왔다.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배제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준비 작업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가를 다루는 박철현의 <화이트리스트 - 파국의 날>이다.
 
소설은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격분한 일본 총리 야스베가 한국의 기를 꺾고자 2019년 3월부터 경제산업성을 움직여 화이트리스트 작업을 진행하다가, 6월 30일 김정운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예상을 깨고 판문점에서 전격 회동한 것에 격분해 경제보복을 느닷없이 발표하는 과정을 담담한 필치로 보여준다.
 
오사카 G20 정상회담을 공들여 준비한 자기의 노고를 생각지도 않고 G20이 끝나자마자 전 세계의 이목을 판문점으로 돌려버린 김정운과 트럼프. 특히 트럼프에게 야스베는 질투와 분노가 뒤섞인 감정을 품는다.
 
하지만, 그런 심경을 트럼프한테 보여줄 수는 없다. 김정운한테도 마찬가지다. 만만한 쪽은 문재현 대통령뿐. 그래서 야스베는 은밀히 준비해왔던 경제보복을 이참에 터트려버린다. 2019년 하반기 동아시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일본 경제보복이 그렇게 나오게 됐노라고 소설은 이야기한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은 경제산업성 무역관리관인 히라오 야쓰시다. 그는 총리 지시를 받고 화이트리스트 실무작업을 담당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야스베의 계획을 저지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야스베의 계획이 일본에 해롭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 히라오와 친밀함을 유지하면서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절감케 만드는 인물이 있다. 한국 집권당인 민주당의 외곽 조직, 도쿄민주포럼에서 사무국장을 하는 서건우다. 두 남자의 조합은 야스베의 계획이 엉뚱한 데서 차질을 빚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두 남자의 '케미'가 야스베의 계획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박철현 소설 <화이트리스트>는 담담하게 들려준다.

일본 내 한국인들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
 
소설가 박철현이 누구인지 궁금해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데뷔작이므로 소설가 박철현을 검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그가 글을 써온 시간은 꽤 된다. 2001년 25세 나이로 일본에 건너간 뒤인 2003년부터 <오마이뉴스>에 글을 써왔다. <경향신문>에도 '박철현의 일기일회'라는 연재물을 기고했다.
 
소설 표지의 안쪽 날개에 적힌 작가 프로필에 "무척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지금은 인테리어업체 대표로 일하며 다섯 가족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다. 미와코씨와 함께 네 자녀의 가정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글도 쓰고 사업도 하는 분주한 가운데, 현재진행형인 국제분쟁을 소설로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자 어느 정도는 모험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사람들이 소설보다는 신문 기사를 통해 호기심을 풀기 마련이다. 그래서 관심의 뒷전으로 밀려나기 쉬운데도 그는 용감하게 소설을 내놓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지금 시국에서 특별한 강점이 될 만한 요소를 이 책은 담고 있다.
 
일본 정권의 경제보복이 지금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자국 내에서조차 지지받기 어려운 이유를 소설은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스토리 자체는 실제 사실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일본 총리를 둘러싼 의사결정 구조를 집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현 정권에 대한 지지가 오래 가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 점은 이 소설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작가가 18년간이나 일본에 거주했다는 점도 강점이다. 일본 땅에서 일본인과 결혼해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는 가운데서 꾸준히 글을 썼기 때문에, 한국 땅에서는 갖기 힘든 작가 특유의 관전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운명이 걸린 경제 한일전이 진행되는 지금, 작가와 유사한 입장에 놓인 일본 내 한국인들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를 이해하는 데도 소설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지금의 국면이 어느 누구의 승리도 아닌 공동의 승리로 귀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강력히 웅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소설의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자칫 놓치기 쉬운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 일본 일부러 나누고 그러지 마요"

이런 시각은 이 소설 '결단의 징조' 편에서 서건우의 딸 서유나가 아버지 친구인 히라오 무역관리관한테 던진 한마디에서도 드러난다. 유나의 한마디는, 자기 집을 방문한 히라오가 "넌 나중에 한국인 할 거야?"라고 물은 데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아버지는 한국인이지만 어머니가 일본인이고 또 본인이 현재 일본에 살고 있으니, 히라오는 유나가 어느 쪽 정체성을 더 좋아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던진 질문에 유나는 '되게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에이, 아저씨 되게 구식이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한국, 일본 일부러 나누고 그러지 마요. 우리 반 애들 트와이스 앨범도 사고 킹앤프리도 좋아하고 그래요."
 
유나가 킹앤프리로 발음한 킹앤프린스(King & Prince)는 2015년 데뷔한 일본 남자 아이돌 그룹이다. 히라오가 어떤 실무작업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유나가 던진 한마디 '한국, 일본 일부러 나누고 그러지 마요'는 히라오에게 두고두고 생각거리가 된다. 이 한마디는 나중에 히라오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소설에서 서건우의 딸 유나의 한마디가 갖는 비중은 서건우의 프로필이 작가 자신의 프로필과 유사하다는 사실에서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자신과 비슷한 인물로 설정된 서건우와 그 가족을 통해 자기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철현씨의 아내 미와코와 네 아이들.
 박철현씨의 아내 미와코와 네 아이들.
ⓒ 박철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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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2001년 도일해서 미와코와 결혼했다. 서건우도 2001년 일본에 갔고, 부인 이름은 미치코다. 아이 숫자는 다르다. 작가는 네 명이고, 서건우는 세 명이다. 작가는 '결단의 징조' 편에서 히라오를 대접하는 미치코를 가리켜 "중년의 미인형 여성"이라며 칭찬 아니 '자랑'했다. 서건우 가족에 대한 작가의 이 같은 애정을 고려할 때, "한국, 일본 일부러 나누고 그러지 마요"는 작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작가는 지금 상황이 어느 한쪽만 승리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승리로 귀결되는 논제로섬 게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 땅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이 지금 사태를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지를 생각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 책이 가진 의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쪽의 공동 승리로 귀결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희망은 결코 실현 불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어느 정도는 실현 가능하다. 이 점은 소설 속 야스베 총리를 둘러싼 의사결정 구조에서 표출된다.

일본회의 관계자들이 의사결정 좌우하는 거물로 등장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내각 결정을 이끌어내려는 야스베의 시도는 결국 성사되지만, 그 과정에서 적들을 만들어낸다. 히라오를 비롯한 실무 관료들마저도 '설마 진짜로 이런 일을 벌일까?'라며 의구심을 품게 되는 정도다. <화이트리스트> '갑론을박' 편은 실무작업 초기인 2019년 3월 15일의 경제산업성 분위기를 이렇게 보여준다.
 
경제산업성 무역관리부 대회의실은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관료 조직 일인자인 오카무라 슈헤이 사무차관이 기다랗게 놓인 회의 탁자의 가운데에 앉아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말이 안 되는데 ······"만 반복한다. 그의 오른편에 앉은 스즈키 야스히토 무역관리부 국장 역시 조심스럽게 그 의견에 동조한다. 가장 곤혹스러운 사람은 스즈키 국장 바로 옆에 앉은 히라오 무역관리관이다.
 
경제산업성 관료들은 야스베의 엄명을 따르기는 하지만, 그 지시가 너무 황당하다는 데 다들 공감한다. 일본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을 규제하는 게 아니라,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상품을 규제하겠다고 하니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조치가 당장에는 한국에 타격을 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일본에 불리할 수밖에 없을 거란 판단에, 이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동일한 정서가 <아사히신문> 말고 <아사니치신문>에 근무하는 우에무라 히로시 기자한테도 존재한다. 관광산업을 관장하는 미야자키 관광청장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사무를 담당하는 핫토리 총괄본부장도 야스베의 조치가 그저 황당하기만 하다.
  
정상적인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반대할 수밖에 없는 일을 야스베가 확신 있게 밀어붙이는 이유를, 이 소설은 야스베를 움직이는 또 다른 의사결정 구조에서 찾는다. 사석에서는 야스베를 '야스베군'으로 낮춰 부르는 신도 및 일본회의 관계자들이 야스베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거물들로 등장한다.
 
한국이 IMF 외환위기에 빠졌던 1997년,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와 '일본을 지키는 모임'의 통합으로 발족된 일본회의는 현존하는 일본 최대의 극우단체다. 교도통신 기자를 지낸 아오키 오사무의 <일본회의의 정체>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총 707명의 참의원·중의원 중에서 약 280명이 일본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일본 내각 개각 전인 8월 12일 방송된 <MBC 스페셜> '아베와 일본회의' 편에서는 각료 15명이 일본회의 소속이라고 보도했다.
 
 < MBC 스페셜 > '아베와 일본회의'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아베와 일본회의"편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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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베 총리와 조중일보, 자유애국당

이 정도로 막강한 일본회의는 신도교 종교들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군사대국화를 추구하고 있다. <화이트리스트>가 야스베와 신도 관계자들을 연결시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야스베가 손익계산을 합리적으로 하지 않고 뜬구름 잡는 정책을 펴는 것은 일본회의와 신도에 포진한 우익들이 그를 지원하며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야스베와의 대화에서 신도 지도자 시오자키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야마니시 회합' 편에 나오는 대목이다.
 
"한국은, 아니 조선은 우리 선조들이 항상 아껴온 나라일세. 내선일체의 정신을 함양해 왔던 곳이고, 65년 일한협정을 맺어 동생으로서 받아들인 나라일세.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형으로서 똑부러지게 꾸짖기도 해야 그게 바로 조선이 잘되는 것이야."
 
총리 임기가 네 번이나 이어지면서 독재자 성향이 고개를 드는 데다가 주변에서 이런 이들이 군국주의적 모험을 부추기다 보니, 소설 속의 야스베는 화이트리스트 정책이 잘못됐는지 잘됐는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런 지도자에 의해 일본이란 나라가 굴러가고 있음을 소설은 처량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야스베에게 힘이 되는 것은 그 같은 내부의 동지들만이 아니다. 화이트리스트 작전에 명분을 실어주고자 '한국이 일본산 전략물자를 수입해 북한 같은 불량국가에 넘겨주고 있다'고 발표해주는 황경원 자유애국당 대표, 야스베가 화이트리스트 조치를 발표하자 "한국이 이걸 어떻게 대응해?"라며 "문재현은 이제 끝났어, 파국이라고" 하며 환호하는 조중일보 전영재 논설위원 같은 한국인들도 야스베에게는 든든한 우군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며 야스베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고 있다.
 
히라오 무역관리관, 우에무라 기자, 미야자키 관광청장, 핫토리 총괄본부장은 '충신'이라 할 수 있다. 신도 지도자 시오자키, 황경원 애국당 대표, 전영재 논설위원 등은 내외의 '간신'이라 할 수 있다. 충신의 말은 안 듣고 간신의 말만 듣고 달려가는 야스베 총리, 그 결말은 뜻밖에도 제로섬이 아니라 논제로섬이 될 거라고 소설은 과감히 예언한다.

화이트리스트 - 파국의 날

박철현 (지은이),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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