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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체질'은 성격이나 취미 등 가장 자기다운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문구가 요새 은근히 인기다. 이 문장을 수려하게 적은 캘리그라피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동명의 책까지 등장했다. 이 문장이 원래는 티베트의 속담이라는데 한국의 현대인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과연 격언이든 노래든 욕이든 잘만 만들면 시대를 거슬러 흥하는 것이다. 한 문장에 걱정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들어간 이 속담이 히트해서 놀랐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참 많구나.

'걱정인' 체질을 타고 났다
 
 이불에 실수 했으니 집을 나가야 하는 걸까... 진지하게 걱정하던 다섯살
 이불에 실수 했으니 집을 나가야 하는 걸까... 진지하게 걱정하던 다섯살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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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기를 나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다섯 살 아이가 이불에 실수를 했다고 치자. 그러면 씩 웃고 까부는 아이가 있고, 순순히 자백하는 아이가 있다. 나는 매타작이 걱정된 나머지 이불을 돌돌 말아 방구석에 숨기고 그늘진 얼굴로 '가출을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쪽이었다. 태양인, 태음인처럼 애초에 '걱정인' 체질을 타고 났다.

할머니가 키워주시던 유년시절에는 엄마가 나를 영영 찾으러오지 않을까 혼자 전전긍긍했다. 전학을 가던 때에는 나와 놀아주는 친구가 아무도 없을까 봐, 학기 말에는 친한 친구들과 떨어지게 될까 봐, 내 쪽지에 친구가 답을 안 해서... 걱정거리는 무궁무진했고 나이가 들수록 방대해졌다.

어려서는 친구나 숙제가 걱정이었다면 머리가 크고 나서부터는 가정불화, 진로, 취업처럼 묵직한 것들이 머리를 차지했다. 자신이 걱정하는 체질인지 판단이 잘 안 된다면 진료기록과 잔병을 되새겨 보면 된다. 나의 경우는 일단 유구한 불면의 역사부터 짚어야 할 것이다.

1994년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당시 우리 반에는 공포소설을 돌려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친구에게 한 권 빌려와서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배를 깔고 읽다가, 나중에는 정좌하고 읽다가, 종내는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말았다. 우연히 본 단편 소설에서 죽음의 개념을 이해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뜬눈으로 아침을 맞았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걱정 불면'이다. 

수면장애만큼이나 프로걱정러에게 흔한 잔병은 과민성 대장증후군과 역류성 식도염이다. 걱정은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긴장을 유발한다. 긴장이 쌓이면 사람의 몸은 아우성을 친다. 어깨가 철갑처럼 딱딱해지고, 장이 민감해지거나 위산이 역류한다. 여기서 더 심해지면 탈모가 오거나 소화기에 궤양이 생긴다. 전부 내 얘기다.

서른이 되던 해에는 십이지장궤양으로 6개월간 허연 음식만 먹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게 남들은 겪지 않는 대단한 곤경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고만고만하게 가난하고, 고만고만하게 연애했다. 다만 걱정이 비대했을 뿐. 

걱정이 너무 많아서 십이지장궤양
 
 나는 꽤 괜찮은 20대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십이지장궤양 판정 받던 날 엄마가 울었다
 나는 꽤 괜찮은 20대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십이지장궤양 판정 받던 날 엄마가 울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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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봄. 심각한 십이지장궤양이라고, 무조건적인 치료가 우선이라는 통보를 받던 날 하필 엄마가 옆에 있었다. 엄마는 내 앞에서 조금 울었다. 아마 날 보내고는 많이 울었을 것이다. 평소에도 엄마는 "우리 딸은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만 한다. 나는 어미가 돼 가지고 자식 걱정만 시키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딸의 20대를 탁하게 칠해놨다고 자책할 엄마를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간혹 엄마에게 생활비를 부치고 월세를 내주긴 했지만 나는 늘 내가 우선이었다. 훌쩍 포르투갈로 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아무 대책 없이 사표도 던져봤다. 내 20대는 꽤 괜찮았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여러 모로 나와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바닥에 머리만 대면 잘 수 있는 사람. 붙잡고 있어도 해결 안 되는 걱정은 아예 접어두는 사람. 살면서 소화기가 아픈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튼튼한 사람. 그런 사람의 생을 가장 가까이에서 관찰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걱정거리가 생겨도 에라 모르겠다, 하고 돌아 눕더니 금세 도롱도롱 코를 골았다. 아아, 그 산뜻한 삶의 태도라니. 

나도 남편처럼 살아보겠다고 결심했다. 비대한 걱정을 쳐내고 30대에는 간결하게 살리라. 걱정이 줄면 밤에 잘 자고 피부도 좋아지고 속 아파서 허여멀건 죽 따위 안 먹어도 될 것이다. 상상만 해도 삶의 질이 급상승하는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의식적으로 걱정 회로를 꺼버렸다. 이사 갈 돈이 없어도, 상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아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애써 태평하게 굴었다. 생각할 시간을 줄이고 몸을 최대한 바쁘게 만들었다. 늦도록 일을 하고 집에 가면 빵과 과자를 구워댔다. 자꾸 바깥 약속을 잡았다. 모임에 나가면 많이 말하고 크게 웃었다. 결국 십이지장궤양이 재발했다.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 하시더니 물었다.

"요새 무슨 일 있어요?"
"아뇨. 다 괜찮은데..."
"완치한 지 2년도 안 돼서 다시 재발해오면 어떡해요. 이거 스트레슨데 지금."


차마 걱정이 너무 많은 것이 걱정이라서 걱정을 없애느라 무리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얌전하게 처방전을 받아들고 나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걱정이는 걱정을 먹으며 사는 것이로구나. 수면마취의 여운이 잔잔하게 남아 몽롱한 의식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내 안의 걱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내 인생에서 걱정만 도려낼 수 없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 맘이 편해졌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걱정을 찾아 나섰다. 친한 친구를 만나면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했다. 동료 선배들과는 작가의 부당한 처우를 걱정했다.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좋아졌다. 
 
 하다 하다 걱정이 테마인 커뮤니티 공간까지 진출했다
 하다 하다 걱정이 테마인 커뮤니티 공간까지 진출했다
ⓒ 노워리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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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아예 걱정을 매개로 하는 커뮤니티 공간까지 발을 들이게 되었다. 기업 중역부터 뮤지션까지, 내 눈에는 그저 찬란하게 반짝이는 사람들도 '프로걱정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나날들이다. 결혼을 해서 걱정인 사람, 결혼을 하지 않아서 걱정인 사람, 직장을 나오고 싶은 사람, 직장을 들어가고 싶은 사람. 같은 단어로 다른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마에 내 천 자가 자주 새겨진다면, 남들에게는 쉬워 보이는 길이 내게는 어렵게 느껴진다면, 걱정거리가 생기면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면, 그로인해 잔잔한 통증에 자주 시달린다면 당신은 프로걱정러일 확률이 높다. 우리 같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무사태평형 인간이 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걱정이 체질임을 받아들이고, 다른 프로걱정러를 만나자. 늘어지게 한탄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자. 우리는 잔병치레가 잦을지언정 공감능력이 뛰어나니까.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런 걱정을 하는 이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은 적잖은 위안이 된다. 걱정 많은 삶에 가끔 찾아오는 위로의 순간은 소중하다. 오늘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프로걱정러들이여,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relaxed)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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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밤이 있는 한 낭만은 영원하다고 믿는 전직 라디오 작가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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