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가장 빛나던 할리우드를 향한 그의 연서다. 10번째 영화까지 만들고 은퇴를 선언한 감독의 아홉 번째 영화라는 점이 입소문의 시작이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캐스팅이 기대감을 더한다.

제목에서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가 떠오른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에 대한 오마주다. 이번 영화는 그의 지난 작품들 중에서는 유혈과 폭력이 적은 편에 속한다. 강력한 원톱 캐릭터보다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브로맨스가 주를 이룬다. 두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당시 할리우드 배경과 분위기가 조화롭게 그려진다.

시종일관 두 배우의 만담이 영화를 채우고, 꿈의 공장 할리우드 세트장에 벌어지는 고군분투를 에피소드처럼 늘어놓는다. 해가 지고 있는 할리우드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밝고 경쾌하고 때로는 자조적인 위트를 가미해 1969년의 할리우드를 재현했다.

질투 나도록 끈끈한 우정
   
1969년 할리우드에는 퇴물이 된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스턴트 배우이자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가 있다. 다혈질에 옹졸한 성격의 '릭'과 전쟁 영웅이자 뚝심 있는 '클리프'는 공생관계다. 하지만 현실은 점차 사라져가는 할리우드의 영광처럼 두 사람은 좀처럼 빛을 보지 못한다.

릭은 술에 절어 있거나 연습한 티가 나지 않게 대사도 까먹는다. 나이 탓인지 열정이 사라진 탓인지 회생의 기회는 자꾸 멀어져 간다. 게다가 점점 귀가 얇아진다. '마빈 슈바르츠(알 파치노)'가 정곡을 찌르는 평가를 할 때 괜찮은 척했지만 내심 자존심이 상했다. '악당 역을 계속하는 순간, 한 이미지에 고정되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정확한 지적처럼 들린다. 하지만 릭은 그걸 인정하는 꼴이 될까 조바심이 난다. 이번 기회에 이탈리아로 날아가 '스파게티 웨스턴'을 찍어보란 제안에도 솔깃해진다. 어쩌면 옆집에 이사 온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친해져 기회를 잡을지도 모른다고 들뜨기도 한다.
   
반면 릭의 심복처럼 보이지만 비상한 존재감을 갖는 '클리프'는 젠틀한 보디가드 같다. 사실 이 둘의 우정이 내심 부러웠다. 스턴트맨으로 먹고사는 클리프는 불안정한 상태다. 하지만 돈이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저 릭의 곁에서 돕고 맥주나 마시면 그만이다. 퇴물이 되어가고 있는 배우일지라도 언제나 최고라고 말해주는 단 한 명이 있다는 것, 얼마나 낭만적인가.

클리프가 기르는 반려견은 신호를 주기 전까지는 먹이를 먹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그와 릭의 관계 같다. '브랜디'란 이름의 핏불 테리어는 영화제 출품 영화 중 가장 멋진 연기를 뽐낸 개에게 주는 '팜 도그' 상(Palm dog)을 수상하기도 했다. 브랜디의 활약은 모든 것이 터지는 혼돈의 결말부에 진가를 발휘한다.

성공한 덕후의 이유 있는 복수혈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실제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을 재구성했다. 때문에 검색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결말을 타란티노 식으로 어떻게 그려냈는지가 최대 관건이다. 희대의 살인마 집단인 '찰스 맨슨 패밀리'에 대한 묘사도 많지 않다. 덧붙이자면 사건의 당사자보다 옆집을 주목하도록 카메라를 비틀었다. 옆집은 바로 배우 '릭 달튼'의 집이다.

영화의 배경인 1969년은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격변기였다. 197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의 활기는 막을 내린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 대사에 나오는 인물 하나까지도 허투루 등장시키지 않는다. 모든 대사와 인물 이름, 장소, 소품은 이스터 에그로 활용된다. 옛날 옛적 할리우드의 문화, 역사, 배경을 많이 아는 만큼 웃고 이해할 수도 있다. 타란티노가 사랑한 1969년 할리우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3일간의 시점을 빌어 자신만의 복수극을 펼친다.

영화적 허용, 시네마틱 리얼리티
   
이 영화는 타란티노 감독이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쏟아부은 작품으로 보인다. 영화 속에 영화를 보거나 찍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특히 매체 특성상 허용되는 판타지의 최정점은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극장에 가는 장면이다.

배우라면 공감되는 장면일 것이다. 몰래 객석에 숨어들어 관객의 반응을 살피는 행위 말이다. 스크린에 상영되는 영화는 마고 로비가 찍은 영상이 아닌, 실제 샤론 테이트가 찍은 <렉킹 크류>의 한 장면이다. 이는 샤론 테이트를 향한 일종의 존경의 표시 중 하나로 보인다.

영화의 세 배우는 영화 속에서도 배우를 연기했다.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는 극에서 빠져나올 때 심한 공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만큼 배우도 위안이 필요하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다분히 배우를 위한 영화기도 하다. 할리우드 공장을 운영하던 그때 그시절, 스태프와 배우 모두에게 바치는 헌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