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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같으면 똥통 같은데서 책을 읽고 싶겠어요?"

초등학교 3학년 큰 아들과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설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들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은 황당했다. 독서에는 별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어떻게든 책을 읽히려고 온갖 논리로 설명하고 설득했건만 아이는 단호하다. '책 읽기 싫으니까 하다하다 장소 핑계를 대는구나', '농부가 밭을 탓하면 이미 글러먹은게지' 하고 반 포기하려는데...

"도서실이 좀 넓었으면 좋겠어요. 누울수도 있었으면 좋겠고, 뒹굴뒹굴... 헤헤... 컴퓨터도 할 수 있으면 좋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책보다가 좀 자유롭게요. 지금은 너무 좁고 불편해요. 친구들하고 같이 앉을 수가 없어요. 도저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안들어요."

아이가 설명하는 나름의 이유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그도 그럴것이,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시골의 작은학교인데다 시설이 오래되고 부족해 교육 환경이 상당히 낙후하다. 비좁은 도서실은 책을 쌓아둔 공간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마저도 부족해 많은 책들이 각 교실에 분산되어 있는 상태다.

"맞다 맞아. 엄마라도 너희 학교 도서실에서는 책 읽을 생각이 안들 것 같아. 도서실을 멋지게 바꾸면 책 읽을거야?"

"당연하죠. 늘 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공간 혁신으로 교육을 바꾸자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표지 .
▲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표지 .
ⓒ 창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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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사람의 심리와 정서, 상호관계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형태가 경직되면 운영하는 방식은 경직되고, 형태가 다양하고 개방적이면 운영방식도 훨씬 유연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는 거의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한 노래 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네모난 건물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네모난 교실, 네모난 책상, 네모난 의자, 네모난 운동장, 네모난 놀이터... 네모난 곳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웃지 못할 헤프닝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곳이 학교라는 공간 아닐까. 표준화되고 획일화 된 학교 교육과정은 아이들에게 네모난 모양 말고 다른 모양을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단순히 공간을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교육을 바꾸는 이야기다. 건축가, 교사, 놀이터  디자이너 등이 공동집필한 책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는 학교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꽃피우는 공간이 되기 위해 바꾸고 혁신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제시한다.
 
"아이들은 교문에서 시작해 운동장, 중앙 현관, 계단과 복도를 지나 교실에 다다른다. 아이들이 학교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학습, 운동, 휴식 등 어른들이 정한 목적에 따라 공간을 이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생활 패턴에 따라 공간에 기능과 역할을 부여하며 유연하게 공간을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교 공간은 마치 이러한 움직임에 맞춰서 변화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기체 같다." (14쪽)

학교 공간은 아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파놉티콘'이 아니라 아이들이 다양하게 관계를 맺고 배우며 성장하는 삶터가 되어야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아이들을 학교 공간 변화의 중심에 놓았을 때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혁신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은 본질적으로 교육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 이전에 오랫동안 교육을 지배해왔던 낡은 사고와 관행들을 혁파해 나가는 것이다.

건물 이전에 사람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교육의 주인이 학생이라면 당연히 학교 공간의 주인도 학생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로, 아이들의 생각을 반영하여, 아이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학교 공간을 바꿔 나가는 것은 그 자체로 창의적이고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는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의 '꿈을 담은 교실' '꿈을 담은 놀이터', 광주 극락초등학교의 '어디든 놀이터 사업', 순천의 '기적의 놀이터', 도서실을 북까페처럼 변화시키기, 교무실과 교장실을 열린 구조로 바꾼 사례, 딱딱한 교문과 학교 외벽을 바꾼 사례 등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교실, 도서관, 운동장, 놀이터, 복도, 현관, 교문 등 아이들의 숨결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아이들의 시각에서 탈바꿈할 수 있다.

다른 각도, 새로운 시선에서 관찰하고 사유하면 하나의 용도만 갖고 있던 익숙한 공간도 다양한 의미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아이들을 중심에 놓는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공간 주권'을 되돌려 준다는 의미다. 학교 공간의 주인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적 사고로 교육에 접근하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디자인'이란 문제의 본질을 포착하고 거기에 새로운 조화와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행동을 환기시키며 우리의 삶과 사회를 좀 더 행복하게 바꿔나가는 것이다. 

학교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학교를 새롭게 디자인한다는 의미다. 디자인을 '문제의 발견과 과제 해결'이라고 정의한다면, 외형적인 결과물도 중요하겠거니와 그보다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예컨대, 학교 공간의 변화는 건축물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있지 않고, 구성원 스스로가 학교 공간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참여하므로 성장하는 과정을 중요시한다.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조응하지 못하는 공교육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과 분리된 '고립된 섬'이 아닌 마을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학교의 상을 재정립해야 한다. 학교 혁신은 학교 담장안의 노력만으로 달성하기는 어렵다.

학교의 변화를 위해서는 학교 구성원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마을주민, 교육청과 지자체 등 지역사회가 협력하고 협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의 자원을 연계하고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의논하면서 학교 수준에서는 대응하기 힘든 문제들을 협력의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학교 공간 혁신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학교의 변화는 개별 실 단위의 내부 공간을 바꾸는데에만 한정되어서는 안된다. 변화의 궁극적인 지향은 마을을 향해 열린 학교, 그리고 학교를 품은 마을이 되는 것에 맞추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라는 경계를 허물고 마을과 어떻게 소통하고 협력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학교를 지역사회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과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 큰 그림을 그리는 것도 필요하다." (224쪽)

학교와 마을이 함께 크는 공간 만들기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학교는 더 이상 학교만의 학교가 아니다. 지역 교육력 강화의 측면에서 본다면 '지역 속의 학교'는 지역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구유출로 점점 더 고령화, 과소화되고 있는 농촌 시골의 현실에서 학교의 위상은 더욱 중요하다. 내가 사는 마을의, 내 아이들이 다니는 작은학교인 영광군 묘량중앙초등학교가 그렇다.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의 노력으로 학생수와 정주인구가 늘어나면서 폐교 위기를 넘겼으나 학교 앞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들이 있다. 산적한 숙제들은 많지만 우리는 먼저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주민들이 협력하는 학교 공간 바꾸기 사업을 추진해 볼 계획이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하면서 아이가 행복한 학교, 누구나 오고 싶어지는 학교, 살고 싶어지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이다.

고민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명쾌해지는 느낌이다. 학교 공간을 바꾸는 것의 교육적 가치와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다양하게 제시된 사례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곧 이 책을 함께 읽은 마을의 다른 학부모들과 작은 토론회를 열 것이다. 충분히 가치있는 일을 함께 도모하는 과정이 행복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실립니다.


학교 공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 가고 싶은 학교 만들기 프로젝트

홍경숙, 편해문, 배성호, 이승곤, 김태은, 이영범 (지은이), 창비교육(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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